아이들이 에이즈로 죽어가고 있다

지난 1일은 제15회 세계에이즈의 날.

인류 최대의 재앙이라는 에이즈의 예방과 퇴치를 위해 전 세계가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이즈는 점점 확산되고 있다. 아프리카에 에이즈가 만연돼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중 감염율 세계 1위가 보츠와나(Botswana)라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본사 경북지사 문숙경 지사장이 뉴욕타임스 기자와 보츠와나 국립 대학 교수와 한팀을 이루어 에이즈로 인해 부모를 잃은 어린이 에이즈 보균자를 돌보고 있는 보츠와나 수도 하바르네(Gabarone)에 있는 고아원 오르판 센터(Orphane Centre)를 취재하고 돌아왔다. 이번호부터 보츠와나의 실상을 3회 연속 실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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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는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친척들이 맡아 돌보는 전통이 있다. 따라서 고아원은 마치 우리의 탁아소와 같은 개념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오르판 센터와 같은 고아원이 이 곳 외에도 몇 군데 더 외국 종교단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보츠와나는 남부 아프리카 내륙에 있는 나라로 짐바브웨, 남아프리카 공화국, 나미비아와 접경해 있으며 면적은 58만 2천㎢이다. 남한 면적의 약 5배인 셈이다. 인구는 160만이며 도시화율은 54 %다.

영어에 대한 문맹률은 69%이며 (이곳의 공용어는 영어와 Setswana 현지어이지만, 학교와 모든 관공서는 영어를 사용한다.) 1인당 국민소득은 2998달러이다.

1966년 11월 2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나 혹독한 식민지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독립 후 세계1위의 다이아몬드 생산과 관광사업, 쇠고기 수출 등으로 국가의 재정은 풍부한 편이다.

많은 수의 아프리카 국가가 부패한 독재 정권인 것과는 달리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보기 드문 민주 국가로서 모범을 보이는 나라이다. 모든 교육은 무상이며, 모든 대학생은 정부에서 장학금과 용돈까지 받고 있다. 넓은 국토와 많은 자원, 민주적 국가 체제 그리고 정부의 교육에 대한 전면적 지원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나라는 상당히 희망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나라의 장래는 에이즈 때문에 몹시 암울하다, 생산력 있는 인구의 39%가 에이즈환자이고, 임신 가능한 여성의 50% 이상이 에이즈 환자이다. 뉴욕타임스 에이즈 특별취재 기자인 필립 힐쯔(philip hilts)와 풀리쳐상 수상자이기도 한 보츠와나 국립대학 언론학과의 미국인 교수 버나드 힌트(Burnard Hynt)와 함께 이 나라의 수도인 하바로네에 있는 오르판 센터를 취재했다.

취재팀은 하바로네 시내 카톨릭 교회에서 만나 차량으로 20분 정도의 거리인 모고딧짠(Mogoditsan)마을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을 했지만 아이들을 돌보고 있어야할 탁아모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머리 손질과 옷차림에 신경을 쓰느라 늦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모든 것이 디디게 이루어진다. 왜 서두르는가… 내일이 있는데.)

에이즈 때문에 암울한 나라

나무 밑에서 10대 소년, 소녀로 보이는 5∼6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9인승 승합차에 25명의 어린이를 태우고 승합차가 경적을 울리면서 도착하니 갑자기 마당이 시끄러워졌다. 승합차가 다시 나머지 아이들을 태우기 위해 마을로 출발할 때 취재차로 동행하였다. 승합차와 취재차에 탄 아이들은 4,5세정도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고 7,8세 정도의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쓰레기와 비닐이 곳곳에 널려있고, 황량한 먼지만 날리는 골목길을 경적을 울리며 아이들 이름을 부르고 누비고 다녔다. 경적소리를 듣고 흙으로 만든 1∼1.5평 정도의 움막집에서 뛰어나오는 아이들의 눈동자는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발걸음은 활기찼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취재팀들이 박수와 환호로 아이들을 맞아주었다. 그러나 ‘저 귀엽고 해맑은 표정의 아이들 중 다수가 몇 달 뒤에는 죽을 수밖에 없는 보균자일 것이다’ 는 뉴욕타임스 필립 기자의 말에 모두 우울해하며 인류 역사상 최대의 질병이라고 하는 에이즈의 재앙으로 덮여있는 삶의 현장을 두려움이 가득한 채 처음으로 목격하였다. 30명 정도를 승합차에 태울 동안 차안은 아이들의 노래 소리와 재잘거림으로 가득 찼다. 보통의 우리 아이처럼…

도착과 함께 배가 고프다고 우는 아이와 이틀 전 에이즈로 죽어버린 엄마 생각에 슬픔에 빠져 있는 아이, 도대체 이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60여명의 아이들은 나무 밑에 모두 모여 노래하고 몸을 흔들어 춤을 추면서 오전 시간을 보냈다. ( 한국 기자가 왔다고 고아원 측에서 특별히 신경 쓴 듯 우리나라 대우 테이프 레코드를 준비했으나 얼마나 낡았던지 몇 곡 나오지 않아 고장이 나 버렸다.) 점심 시간이 되자 어린이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고 리더격인 ‘티토’라는 11살짜리 소녀가 양동이에 물을 받아와서 한 어린이마다 1컵 정도의 물을 부어 손을 씻긴 후 운동장 그늘 한곳에 모두 모여 닭고기 국물에 적신 쌀밥을 손으로 먹는다.

점심식사 후 교회 안에서 낮잠을 자고 3시쯤 친척집이나 동네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난 후 고아원을 운영하는 마리 호세(Marie Jose : 필리핀인 수녀, 60세)가 에이즈 환자 가정 두 곳을 방문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먼저 방문한 집에서 한 60대 후반의 할머니는 에이즈의 흔적인 검은 딱지로 온 몸이 덮인 채 세상을 넘어선 체념과 죽음의 모습으로 우리를 힘없이 무심하게 맞았다. 그녀는 에이즈에 걸린 아들과 며느리로부터 에이즈에 감염됐으며 아들, 며느리는 이미 사망했고 이웃 가정들의 도움으로 근근히 연명하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매월 미화 100달러정도의 생계비를 지원하고 있다. 두 번째 들린 가정은 20대 후반의 트럭기사의 집이었다. 이 젊은이의 눈빛은 세상에 대한 절망과 분노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삶에 대한 애착도 매우 강하게 표출하고 있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약을 적극적으로 복용하고 있으며 병세도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에이즈 확산 대표 계층은 트럭기사

아프리카에 에이즈를 확산시키는 대표적인 계층의 하나가 트럭기사라고 한다. 넓은 대륙을 횡단하는 트럭기사들의 문란한 성행위로 인해 에이즈가 아프리카 대륙의 구석구석으로 넓게 또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에이즈 확산의 주된 원인은 이 사회의 잘못된 풍습과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에이즈는 백인들이 흑인을 멸종시키기 위해 퍼트린 병이라고 믿으며 의학적 진료를 멀리 한다. 인구의 80%가 무속신앙 형태의 미신을 믿으며 위생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희박한 지 물을 끓여 마셔야된다고 하면 박장 대소하며 웃어 넘긴다고 한다. 또 죽음을 죄악시하기 때문에 치사율이 높은 에이즈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지나친 음주와 성적 문란, 일부다처제의 관습도 에이즈 확산의 주요 원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들은 월급날이면 함께 모여 거의 대부분의 월급을 털어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논다. 그리고 술과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혼음에 가까운 무질서한 성행위가 이루어진다. 우리가 그곳을 방문한 때가 월말 무렵이었는데 그 날도 그런 축제가 골목골목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의료 행위에 대한 무지도 그들을 에이즈에서 해방시키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들은 정식으로 의학을 공부한 의사도 의사로 부르고 약초로 약을 만드는 사람도 의사라 부르며, 무속인들도 의사로 부를 만큼 의학적 지식에 무지하다. 자연히 의약을 통한 에이즈 구제에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시골에서는 아직도 몸이 아프면 무속인을 찾고 무속인은 일반인 두달치의 봉급 정도의 진료비와 부적비를 받는다. 일반인은 돈을 빌리면서까지 무당을 찾아 주술적 치료에 매달린다. 아이들은 사랑에 목말라하며 부모들로부터 방치된 채 불결한 환경 속에 내팽개쳐져 있다. 따뜻한 사랑이 갈급해 취재 기자들에게 안겨 떠날 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세계보건기구의 에이즈 캠페인 ‘더불어 살기(Live and let live)’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만 느껴졌다.

문숙경 경북 지사장moonsk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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