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여성친화기업에 투자하는
‘메리츠더우먼펀드’ 출시
여성친화정책 펼치고
여성 중용 기업에 투자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창업정신·여성·금융교육’
금융 아는 여성 늘면
가정·사회 변화할 것

 

 

여성 참여가 활발하고 여성 인력에 관심을 쏟는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등장했다. 1일 국민은행에서 판매를 시작한 ‘메리츠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계동 메리츠자산운용 본사에서 로비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계동 메리츠자산운용 본사에서 로비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더우먼펀드’(이하 우먼펀드)는 성별 다양성을 갖춘 기업이나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가진 ‘여성친화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다.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1호 가입자가 된 것도 여성에게 투자하는 펀드라는 취지에 공감해서다. 해외에선 이미 1990년대부터 이사회에 여성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를 기준으로 투자하는 펀드가 운용되고 있지만, 한국에서 ‘여성펀드’가 출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먼펀드 탄생 배경에는 더 이상 여성 인력에 대한 투자를 미룰 수 없다는 절실함이 담겨 있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여성 임원 할당제 같은 법률 보다 기업의 확실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투자”라며 “자본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우먼펀드는 투자 대상을 선정하기 위해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전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의 평가모형을 활용한다. 최종 투자기업은 기업의 사업모델과 재무적 성과, 기업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 또 펀드 판매회사와 운용회사가 받는 수수료 중 10%를 기금으로 조성해 여성 관련 공익사업에 사용할 예정이다.

리 대표는 이번 펀드 출시를 위해 1년 간 공을 들였다. 1년 전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한국지부 제안으로 펀드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우먼펀드의 취지에 맞게 뮤추얼펀드 형태로 선보이기로 했다. 대부분의 국내 펀드는 펀드를 만들어 운용한 뒤 투자 수익을 실적대로 돌려주는 수익증권 형태다. 반면 뮤추얼펀드는 자산운용사가 펀드마다 서류상 회사를 만들어 관리하는 형태로, 뮤츄얼펀드에 투자하는 것은 돈을 주고 회사 주식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 즉, 투자자는 주주이고, 펀드는 주식회사가 되는 셈이다. 우먼펀드도 회사 설립부터 정관 마련, 이사회 구성, 법적 절차까지 마치다보니 출시까지 1년이나 걸렸다. 리 대표는 “특히 이사회는 저명인사로 구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보수 없는 명예직이고, 메리츠자산운용을 감독해야 하는 자리다 보니 구성이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유리천장’, 자본으로 뚫는다

100명 중 2.4명. 한국에서 임원직에 오르는 여성 비율이다. 한국 기업 이사회에 여성 비율은 2.4%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20개국 중 꼴찌다(2017 국제여성기업이사협회). 국내 자료를 봐도 매출액 기준 국내 100대 기업 전체 임원 가운데 총수 일가와 사외이사를 뺀 여성 임원은 100명 중 3.2명 꼴이다(한국CXO연구소). 한국 여성 인력의 현주소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59%)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끝에서 5등이고, 직장 내 성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유리천장 지수’(CCI)는 OECD 최하위다.

“한국 여성은 그 어느 나라보다 고급 인력임에도 여전히 국가와 기업의 경제활동에서 여성 영향력이 제한적인 상태다. 여성의 참여가 활발한 기업에 장기투자해 기업가치를 높이고 초과수익을 창출하는 선순환을 이루는 게 이 펀드의 목적이다.”

리 대표는 지금 이 순간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으로 ‘기업가정신·여성 인력·금융교육’ 세 가지를 꼽았다. 이 가운데 특히 여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리 대표는 전 세계가 여성 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지금, 한국은 크게 뒤쳐져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크리스틴 리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노동시장에서 성별차이를 줄일 경우 한국은 10%까지 GDP(국내총생산)를 증가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은 물론 일본마저도 여성 인력의 중요성에 눈 뜨고 기업 내 성별 다양성을 확대하고 기회의 평등을 늘리기 위해 변화하고 있다. 흐름의 중심에는 ‘자본’이 있다는 게 리 대표 설명했다.

“법률만으로는 기업과 사회를 바꾸는데 한계가 있다. 여성을 우대하고 여성 참여가 활발한 기업에 돈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확실히 바뀐다. 자본이 변화를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이다. 우먼펀드에 많은 여성들이 관심을 갖고 투자하면 한국 기업들도 변화할 것이다. 우먼펀드가 신의 한수가 될 것이다. 내 딸이 살아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더 많은 여성들이 펀드에 관심을 갖기 바란다. 여성 우대 기업이 시각총액도 늘어난다는 것을 우먼펀드로 보여주겠다.”

여성 인력 활용 부문에서 우리와 OECD 꼴찌를 다투던 일본은 최근 이사회 내 여성 인력 늘리기에 나서고 있다. 일본 금융청과 도쿄증권거래소는 ‘기업 지배구조 지침’에 이사회 구성 시 ‘젠더’와 ‘국제성’을 적극 고려하라고 규정했다. 이를 통해 2020년까지 상장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 최소 10%를 목표로 세웠다. 실제로 세계 2위 의결권 자문사 글래스루이스도 내년부터 도쿄증시 상장 주요 100개사에 여성 이사가 없는 기업의 주총에서 회장 도는 사장의 선임 의안에 반대를 권하기로 하는 등 해외 투자 방향도 달라지고 있다.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계동 메리츠자산운용 본사에서 로비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존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계동 메리츠자산운용 본사에서 로비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기투자’로 ‘노후 준비’를

리 대표는 ‘장기투자 전도사’로 불린다. “주식 투자의 목표를 노후준비”라는 그는 “지금처럼 장이 안 좋을 때가 오히려 ‘좋은 타이밍’”이라고 말했다.

“가격이 낮을 때 싸게 살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좋은 기업의 주식은 올라갈 수 밖에 없다. 한국은 금융문맹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노인층의 빈곤율은 50%에 달하고, 전체 인구의 10%가 전체 배당의 85%를 받는다고 한다.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 돈을 사교육비에 쏟아 붓는 모습은 답답하다. 은퇴자금 몇십 억을 버리는 것과 같은 행동이다. 노후 준비를 위해 어릴 때부터 금융교육을 받고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

잘나가는 투자사 대표지만 리 대표는 개인 소유 차량이 없다. 이동할 때는 택시를 이용하고 걷기도 즐긴다. 절약하기 위해서다. 직원들에게도 차를 사는 대신 투자하라고 권한다. 쓸데 없는 소비는 줄이고 1만원이라도 꾸준히 장기투자를 해 미래를 준비하자는 게 리 대표의 투자 철학이다. 그는 “‘엄마’, 정확히는 엄마든 아빠든 가정의 수입과 지출을 담당하는 살림꾼이 부자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안에서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이 금융지식을 익혀 금융문맹에서 탈출하면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사교육비보다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금융문맹은 마치 전염병과 같다. 소수의 금융문맹인 사람들이 옆집을 주전염시킨다. 부자처럼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고 부자가 돼야 한다.” 

우먼펀드 역시 성별 다양성과 성 형평성을 두루 갖춘 기업이나 이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가진 기업들에 장기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23개 기업이 투자 대상 기업으로 선정됐다. 23개사는 한 달 뒤 공개할 예정이다.

“여성이 여성을 돕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리 대표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기자는 이날 인터뷰를 마친 뒤 우먼펀드에 가입했다. 스마트폰에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 받아 계좌를 개설하고 펀드에 가입하기 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소액이지만 매달 여성친화기업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23개 기업만이 아닌 한국 기업 전체가 여성친화기업이 될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존 리 대표는 서울 여의도고를 졸업한 뒤 연세대 경제학과 2학년 재학 중 자퇴서를 내고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뉴욕대 회계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미국 투자회사인 스커더스티븐스앤드클라크(Scudder Stevens and Clark) 펀드매니저로 활동하며 미국 최초의 한국 투자 펀드인 ‘코리아펀드’를 15년간 운용했다. 대표적인 스타 펀드매니저 중 한 명으로 2014년부터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를 맡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을 장기 투자해 수 십배 차익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2014년 미국 생활을 접고 귀국길에 오른 이유에 대해 “미국에서 배운 경영철학과 내 소신을 접목한 혁신적인 리더십이 기업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며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키운 투자 신념과 교육 철학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공유하며 현명한 주식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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