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그만 하자'
어머니 얘기에 큰 자극
이 악물고 훈련해
몇 달 후 국가대표 선수 돼

트럭 몰고 전국 누비는 부모님 생각에 힘 내

금메달 포상금으로
아버지께 새 승용차 사드려

나이로는 기량 가장 좋은 때 지났지만
전성기 정해놓는 게 말이 안 돼

 

쇼트트랙의 김아랑 선수.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제공
쇼트트랙의 김아랑 선수.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제공

 

 

‘2018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에서 대상인 윤곡여성체육대상에 선정된 쇼트트랙 김아랑 선수가 5일 서울 강남구 리코스포츠 사무실에서 자신의 스케이트화를 들어 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2018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에서 대상인 윤곡여성체육대상에 선정된 쇼트트랙 김아랑 선수가 5일 서울 강남구 리코스포츠 사무실에서 자신의 스케이트화를 들어 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김아랑은 평창올림픽 이후 “고양시로부터 받은 금메달 포상금 5000만원으로 무엇을 하겠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버지에게 새 트럭을 사드리고 싶다”고 밝히면서 ‘국민 효녀’로 등극했다. 그가 정말 새 트럭을 사드렸는지 궁금해진다.

“어머니가 ‘트럭보다는 가족이 다 함께 탈 수 있는 차를 사보자’는 힌트를 주셔서 트럭이 아닌 승용차를 사드렸어요. 아버지도 정들었던 트럭을 바꾸기 꺼려하셨거든요.”

그는 평소 아버지가 일하러 다니실 때 쓰는 트럭을 자주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에 대해 “아버지는 트럭으로 전국을 누비며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셨어요. 아버지의 트럭이 전혀 부끄럽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평창올림픽의 ‘맏이’로 여자 쇼트트랙 선수들에게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던 ‘쇼트트랙 스타’ 김아랑이 13일 개최되는 ‘2018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 시상식에서 윤곡여성체육대상을 받는다.

‘미소천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밝은 미소가 마냥 아름다운 김아랑. 자주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을 살짝 닦아내는 모습을 지켜보며 힘든 과정들을 밝은 웃음 속에 감춰왔을 그의 고단함이 살짝살짝 드러났다.

김아랑은 2013년 19살 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3위로 올림픽 개인전 출전권을 획득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오랜 무명의 설움을 딛고 쇼트트랙 신예로 떠올랐다.

그에게 19살, 바로 고3의 나이는 ‘절망과 희망을 넘나든 한 해’였다.

“고3 때 국가대표 선발전을 몇 달 앞둔 어느 날 어머니가 제가 쇼트트랙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그만 하자’는 얘기를 꺼내셨어요. 그동안 부모님께서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어렵게 저를 뒷바라지해주셨는데 정말 이 얘기를 꺼낸 건 처음이셨어요. 생활비가 몇 달 밀릴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고 제가 그때까지 쇼트트랙에서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 했기 때문에 아주 어렵게 말씀을 꺼내셨을 거예요. 그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조금만 더 해보고 싶다’고 바로 답변했어요. '더 해 보고도 안 되면 그 때 그만 두겠다'고.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이를 악물고 했어요. 그래서였는지 기적적으로 몇 달 뒤 처음 국가대표가 됐어요.”

그는 지금도 부모님들과 “그 때 그만뒀으면 어쨌을 뻔 했냐”며 웃곤 한다.

전주에 살던 김아랑이 처음 스케이트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2살 터울의 오빠를 따라 스케이트장에 갔을 때였다. 당시 스케이트를 좋아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오빠도 일찍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오빠가 스케이트를 타는 것을 구경하던 김아랑이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데…”라고 호기있게 말하는 걸 본 스케이트 선생님이 아랑에게 스케이트를 타보라고 권했다.

“그 날 스케이트를 처음 탔는데 넘어지지 않았어요. 중심을 잘 잡고 서니 선생님이 스케이트를 시켜볼 것을 부모님께 권해 시작하게 됐죠.”

남매가 쇼트트랙에서 재능을 보이자 낡은 1톤 트럭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창틀 설치하는 일을 하시는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일을 같이 하기 시작해 둘의 뒷바라지에 나섰다.

하지만 전주에서는 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이 집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화산체육관 빙상경기장 한 곳 뿐이었다.

“아침, 저녁으로 버스를 타다 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부모님이 데려다주는 아이들을 보면 마냥 부러웠죠. 어떤 때는 선생님이 태워다주기도 하셨죠. 지금도 힘들 때면 그 때 생각이 떠올라 ‘그래. 이게 별 거냐’고 생각하게 되요.”

2월22일 오후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1000m 준준결승 경기에서 김아랑이 역주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월22일 오후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1000m 준준결승 경기에서 김아랑이 역주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그러던 중 서울의 한 코치가 학생들과 함께 전주로 전지훈련을 오게 됐고, 그는 선수들과 같이 쇼트트랙을 타면서 지지 않으려는 듯 끝까지 그 팀을 갔다. 그런 아랑을 본 코치가 ‘서울에 있는 목일중학교에서 제대로 배워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저와 오빠 만 중학교를 서울로 진학을 했어요. 딸만 혼자 보내기가 불안해 오빠를 딸려 보낸 거였죠. 하지만 생활비도 내기 벅찼고 레슨비도 많이 밀렸었어요.”

전주에서는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망주였던 그는 서울로 전학온 뒤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저 그림자 신세였다. 그래서 ‘그만두자’고 결심하고 전주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한 그는 결국 ‘부모님이 뒷바라지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고등학교는 전주에서 다녔지만 전문적인 훈련이 가능한 서울에서 훈련을 받아야만 해 고단함은 더해만 갔다.

하지만 김아랑 특유의 긍정 마인드로 힘듦을 이겨낼 수 있었다.

“어머니는 제 시합일정도 모르셨고 규칙도 모르셨어요. 알려면 알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굳이 알려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렸을 때는 그 점이 서운했지만 커서 생각해보니 오히려 저에게 약이 됐더라구요. 대신 시합을 잘못 했을 때 ‘왜 이 정도 밖에 못 했느냐’고 하지 않고 ‘괜찮다’고 위로하셨고, 울고 있으면 ‘세상이 끝났느냐. 왜 우냐? 다음에 잘 하면 되지’라고 말하셨어요. 부모님 두 분 다 그런 성격이어서 지나간 결과를 금세 잊고 다음 시합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혼자서 ‘다음에 얼마나 잘 타려고 그래’ 라고 생각했어요.”

김아랑이 부모님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제공
김아랑이 부모님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제공

 

이러한 성격 덕에 2012년 12월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되고, 2013년 2월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종합 2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기까지 길고 긴 무명 선수 생활을 씩씩하게 견딜 수 있었다.

이후 2013-14 월드컵시리즈 여자 쇼트트랙 1000·1500m 부문에서 세계랭킹 2위에 오르기도 했다.

김아랑이 국가대표로 선발되며 기대주로 떠오르자 오빠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쇼트트랙을 포기해 오빠 몫까지 더 잘 하고 싶은 욕심도 생겨났다.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출전한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여자 1500m 파이널A 결선에서 급성위염에 걸려 고전을 면치 못 한다. 초반에 넘어지면서 다른 선수를 넘어뜨려 실격 처리되는 아픔을 겪었다. 시합 당일 새벽 갑자기 구토를 해 잠을 못 자고 아침도 못 먹은 최악의 컨디션으로 시합에 나가야 했던 것.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긴장감이 너무 컸던 탓이었을 거다. 그럼에도 여자 3000m 계주 결승전에서 4번 주자로 제 몫을 다하면서 한국 여자 계주가 8년 만에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올해 평창올림픽에도 출전해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다시 따내면서 2연패를 달성했다.

“평창올림픽이 훨씬 더 힘들었어요. 주사를 맞을 때도 아프다는 것을 알고 맞으면 더 아픈 것처럼 얼마나 힘든 지 아니깐 준비하면서 내내 지쳤던 것 같아요. 하지만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기쁨은 2배였어요. 제가 평창올림픽에서 너무 많이 울었는데 힘듦과 기쁨의 눈물이었어요. 보상받았다는 느낌이 너무 컸어요.”

‘2018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에서 대상인 윤곡여성체육대상에 선정된 쇼트트랙 김아랑 선수가 5일 서울 강남구 리코스포츠 사무실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 대한민국 여성체육대상’에서 대상인 윤곡여성체육대상에 선정된 쇼트트랙 김아랑 선수가 5일 서울 강남구 리코스포츠 사무실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아랑 선수는 메달을 딸 것으로 기대됐던 평창올림픽 1500m 여자 쇼트트랙 개인전서 아쉽게도 0.11초 차이로 메달을 따지 못하고 4위에 그쳤다. 하지만 그는 금메달을 딴 최민정 선수를 밝은 얼굴로 축하해줘 쇼트트랙의 맏언니로 참된 리더십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스럽다는 뜻으로 '아랑스럽다'는 신조어도 생겨났을 정도.

“전 진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충분히 준비해 임했기 때문에 후회 없는 레이스를 치른 것 자체로 굉장히 만족했어요. 소치 때처럼 탈이 나지 않으려고 음식도 죽이나 한식 위주로만 챙겨먹었구요. 아프지 않았다는 것 만으로도 좋았어요. 최민정 선수는 같이 고생하며 훈련해왔던 동생이라 진심을 다해 축하해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리더십이나 이런 평가는 아직 부담스러워요. 올림픽 때 맏언니를 처음 맡았는데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해요. 제가 부족한 것을 동생들이 채워주면서 잘 마무리된 것 같아요.”

김아랑이 자신에 대한 공을 항상 부모님께 돌린 덕에 최근 아버지와 함께 한 제약회사의 종합 영양제 광고도 촬영했다.

“지금은 광고 등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지금 아니면 언제 할까 생각도 들고….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생각도 해요.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는 데 실망시켜주지 않도록 좀 더 밝은 모습을 보여드리려 해요.”

사실 쇼트트랙 선수로서 최고의 기량을 보일 수 있는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김아랑은 1995년생으로 올해 24세다.

“나이만 따지자면 기량이 가장 좋은 때는 조금 지났죠. 하하. 하지만 전성기를 정해놓고 따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어요. 오늘 새벽에도 훈련을 했고 다른 일정이 없는 날에는 항상 훈련에 매진해요. 이번 달에도 대회가 있고 한 대회 한 대회 준비를 잘 해서 열심히 하면 길게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매 순간 최선을 다 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그는 자기 관리를 위해 몇 년전부터 필요한 근육을 만드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트레이닝을 하며 탄탄한 복근도 만들고 몸 컨디션도 좋아진 걸 느낀다.

그는 자신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언젠가는 한국 스포츠가 발전하는 데 널리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오늘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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