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통제하고,
본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이 혐오다

 

‘헬조선’에서 ‘혐오민국’이 되었나? 혐오가 사회적 이슈다. 일반적으로 개인이 싫어하는 취향의 문제로 생각하는 혐오. 그것이 무엇이기에 사회의 화두가 되었는가.

“내가 여성을 혐오한다고요? 썩은 음식 냄새 같은 거 정말 혐오스럽죠. 하지만 난 여자는 혐오하지 않아요. 좋아하죠. 지난 번 문학 수업을 하는데 한 학생이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죽인 게 혐오라더라고요. 그게 말이 되요? 대체 뭐가 혐오라는 건지.”

이 하나의 문장에서 혐오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된다. 썩은 음식 냄새에서 느껴지는 혐오는, 그 싫음의 정도가 심해서 감각적으로까지 각인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어느 정도는 사용해왔던 혐오의 사용법이다. 혐오스러운 촉감, 혐오를 부르는 소리 등등.

두 번째, 좋아한다는 의미와 반대 개념으로 사용되는 경우로 대체로 과장된 경우다. ‘난 여자를 혐오하지 않아요’는 ‘싫어하지 않아요’ 정도의 뜻을 과정적으로 쓰는 것이다. 때로 “야, 너 오늘 패션 극혐이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런 표현은 우리의 정서를 극단적으로 몰아간다. “난 네 옷차림이 좋아 보이지 않아”라고 속으로나 생각할 일에 그토록 강한 정서를 발동시킬 이유가 뭐란 말인가. 아무데나 사용하는 혐오라는 말은 사회의 한구석을 더욱 어둡게 한다.

마지막의 예, 쉐익스피어의 오셀로이야기를 검토해 볼까. 우리는 이 작품을 사랑, 질투, 복수 등이 얽힌 세기의 명작으로 알고 있다. 오셀로는 부하의 이간질로 사랑하는 데스데모나를 살해한다. ‘이아고’라는 부하는 오셀로가 준 손수건을 카시오라는 또 다른 부하의 방문 앞에 던져 놓고 둘 사이에 의심을 불러일으킬 말을 건넨다. 질투에 눈먼 오셀로는 데스데모나를 죽인다. 데스데모나는 무슨 잘못을 했나. 단지 억울할 뿐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로 치환되어 있지만 사실은 복잡한 젠더 권력을 그 안에서 볼 수 있다. 오셀로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단지 사랑의 대상, 사랑하는 이의 소유물, 통제되어야 할 생명에 불과했다. 만일 자신의 소유, 통제의 밖으로 벗어났다고 생각할 때, 상대방을 가해하는 것은 범죄이다. 이것이 요즘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혐오이다. 누군가를 통제하고, 본인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서의 혐오 말이다. 나랑 사랑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내 말에 복종해야 하고 만일 헤어지게 된다면 죽여 버리거나 복수의 동영상(?)을 올리는 행위 등이 모두 같은 맥락이다.

이와 같은 혐오는 개인적 감각으로서의 혐오와는 달리 구조적으로 구성된다. 예를 들어 유색인 차별이 심한 지역에서 유색인이 “난 저 백인이 싫어”라고 말하는 건 공포심을 조장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백인꼬마가 “난 네 피부색이 싫어”라고 말하는 건 유색인들에게 공포를 조장할 것이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떤 말은 공포스럽고 어떤 말은 공포스럽지 않다. 맥락적으로 공포스럽지 않은 혐오는 위험성이 적다.

최근 이수역 사건을 전후해 기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사건 이후 술집에서 여성들을 만나면 무서울 것 같냐?”며 진정성을 가지고 물어봤다. 남기자들은 무슨 말이냐는 표정이었다. 반면 데이트 폭력 기사가 실리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공포에 떤다. 이를 방지하고자 발효되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대해 ‘여성에 대한 폭력 예방에 도움이 되므로 찬성한다’는 응답이 60%를 넘어섰다. 혐오는 단지 싫은 것보다 더 끔찍하게 싫은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보다 구조적이고 차별적으로 강화되는 행동으로서의 혐오가 더 큰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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