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있는 그 곳에 사람이 산다] '성수지앵' 도시재생 협동조합
지역 명물 수제화 로고와 초콜릿에 인쇄
전업주부 등 12명 여성들 조합원으로
작은 것도 나누는 사람 인심 가득한 공간

성수지앵 도시재생 협동조합원들이 24일 서울 성동구 성동 상생도시센터에서 천연재료로 만든 수제 초콜릿을 들어 보이고 있다. 12명의 성수지앵 조합원들은 쇼콜라티에 과정을 수료하고 1년간 수제 초콜릿 상품을 개발·생산하고 있다.
성수지앵 도시재생 협동조합원들이 24일 서울 성동구 성동 상생도시센터에서 천연재료로 만든 수제 초콜릿을 들어 보이고 있다. 12명의 성수지앵 조합원들은 쇼콜라티에 과정을 수료하고 1년간 수제 초콜릿 상품을 개발·생산하고 있다.

성수동의 도시 재생은 멀리는 2005년 서울숲 공원이 생기면서부터 가깝게는 2012년 성동구청이 지역경제 활성화 계획을 통해 수제화 특구로 지정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970년대 이래 구두 공장, 염색 공장, 자동차 공업사 등이 들어서 서울의 공업지역으로 번성했던 성수동은 1990년대 이래 쇠락하고 있었다.

성수동의 재생은 자치구의 지원과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변화욕구가 적절하게 맞아떨어진 사례로 주목받는다. 옛 공장 건물이 갤러리가 되고 지하철 2호선 성수역 역사는 구두를 테마로 꾸며졌다. 성수역 3번 출구를 시점으로 전개된 카페 거리는 카페와 레스토랑, 디자이너 옷집 등이 곳곳에 들어섰다. 이곳도 혹여 서울의 다른 지역처럼, 애초에 낡은 지역을 찾아내 멋진 공간으로 꾸민 애초의 주인공들이 밀려나고, 이곳에서 삶을 일궈온 지역주민들이 쫒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지 않을까. 성동구는 건물주와 임차인간 상생협약 체결을 유도해서 임대료 상승을 낮췄고, 지역 주민들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디.

지난해 5월 설립된 ‘성수지앵’은 초콜릿을 만들고 기념품을 팔아 성수동 도시재생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2015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4년간 서울시로부터 서울형 도시재생 시범사업으로 90억원, 성동구에서 10억원을 지원받은 성동구가 이제 자립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 거기 힘을 보태는 게 목표다. 2017년 5월 건립된 상생도시센터 빌딩 내에 자리 잡은 성수지앵은 센터 카페에서 ‘바리스타’ 과정에 참여했던 평범한 여성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었다. 파리 토박이를 부르는 ‘파리지앵’과 성수동을 합해 ‘성수지앵’이라 이름도 붙였다. 성수동 도시재생 시범사업 주민협의체 윤영주(63) 위원장과 차은경, 정현주, 허경아 씨 등 도시재생 아카데미 기초 과정, 전문가 과정 등을 이수한 이 지역 여성들이 성수지앵을 만드는데 뜻을 모았다. 이사장을 맡은 차은경(52)씨는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지냈는데 열성 멤버가 되다 보니 자연스레 중책을 맡게 됐다”며 “제가 바로 주민재생의 롤 모델”이라며 웃었다. 협동조합 자금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았다. 12명이 5000만원을 출자하고 고용노동부로부터 5000만원을 지원받아 자본금 1억원을 마련했다. 음료만 판매해서는 수익을 내기 어려워 초콜릿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차은경 성수지앵 도시재생 협동조합 이사장, 윤연주 성수도시재생 주민협의회 위원장, 표찬 성수 도시재생지원센터 센터장이 24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 앞에서 2019년도 성수도시재생 사업의 성공을 다짐하고 있다.
차은경 성수지앵 도시재생 협동조합 이사장, 윤연주 성수도시재생 주민협의회 위원장, 표찬 성수 도시재생지원센터 센터장이 24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 앞에서 2019년도 성수도시재생 사업의 성공을 다짐하고 있다.

12명의 조합원이 쇼콜라띠에협회에서 2급 쇼콜라띠에 자격증과 초콜릿 음료를 만드는 소믈리에 자격을 취득했다. 센터에 모여 초콜릿을 만들기 시작한지 1년 여. 그동안 좌절할 때도 수 없이 많았다. 윤영주 위원장은 “완벽한 초콜릿이 만들어지기까지 초를 다툴 정도로 시간이 틀려도 안 되고, 템퍼링(열처리)을 할 때도 1도, 2도 체크를 하면서 만드는 데 온도 차이가 조금만 나도 실패했다”고 말했다.

성수지앵 조합원 정현주씨(55세)는 “시중에서 파는 제품과 달리 우리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초콜릿을 만든다는 엄마의 마음으로 만들어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이 큰 제품)가 좋다”고 자랑했다. 정 씨는 컴퓨터 자수 업무를 하는 제조업 대표도 맡고 있는 데 “봉사하면서 사는 게 ‘인생 2막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허경아(48)씨는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됐던 경우다. 지난해 아들이 고 3 수험생이었는데도 거의 매일 센터에 출근했다. “센터에 나와 일하면 대화를 나누고 힐링이 되기 때문에 아들에게도 더 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치매 봉사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던 신옥분(60)씨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다”며 “커피, 초콜릿도 만들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다 보니 더 젊어지는 것 같아 즐겁게 일한다”고 강조했다.

성수지앵 조합원들은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행사도 벌이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월드컵 축제를 열었다. 10월에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모임인 성수동공동육아모임연합회와 함께 ‘꽃길을 걸어요’란 제목으로 도시재생 축제를 열었다. 차은경 이사장은 “6월 축제 때 초콜릿을 사면 추첨을 통해 한 돈짜리 ‘행운의 금반지’를 주는 경품 행사를 했는데 신혼부부가 금반지의 주인공이 됐다"고 말했다. 즐거운 소식이 이어졌다. “그 부부는 아이가 안 생겨서 아이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는데, ‘꽃길을 걸어요’ 축제에서 만났더니 월드컵 축제 한 달 후 아이가 생겼다며 ‘반지가 행운을 가져다준 것 같다’고 말해 너무 기뻤다”고 덧붙였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성동 상생도시센터 전경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성동 상생도시센터 전경

지난해 성수지앵의 매출액은 2000만원 안팎. 축제 운영비로 일부 지출하고 재료비도 썼다. 올해는 연 1억8000만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성수지앵은 사업을 키워가고 있다. 오는 10월 준공하는 나눔공유센터 1, 2층에서 커피를 판매하게 된다. 초콜릿에서 기념품으로 사업 영역도 넓혀가고 있다. 성수동 명물 중 하나인 가죽으로 파우치도 만들고 텀블러, 에코백, 열쇠고리, 수첩, 보조배터리 같은 기념품도 만들어 팔고 있다. 서울숲 앞 언더스탠드에비뉴 매장에 3평 공간을 확보해, 3월부터 그곳에서도 초콜릿과 기념품을 판매한다. 표찬(43) 성수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성수동을 상징하는 백호 등 4종의 캐릭터들도 만들어진 만큼 인형을 만들어 판매하면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