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아라키전>의 한 작품인 ‘대상화에 대한 공포’.

영페미니스트미술가연대의 <안티 아라키전>

너무나 무서웠다. 누구나 화장실에서만큼은 자유로운 상태로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고, 더구나 무언가 성공하는 순간에 도달했을 때는 짜릿한 쾌감과 안도감마저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순간 곁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노려보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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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안티 아라키전>이 관람객들에게 전하려는 첫 번째 메시지이다.

안티 아라키라? 그렇다면 아라키는 누구인가? 일본의 사진작가 아라키 요부노시다. 지난해 11월 시작해서 지난 23일까지 그가 한국에서 가진 첫 번째 전시회임에도 불구하고, 전시회가 열린 일민미술관에는 모두 2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상당히 주목을 받았다. 아라키 자신이 최초의 사진은 태어날 때 찍은 ‘어머니의 자궁’이라고 고백할 만큼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대상은 여성이다. 하지만, 나체의 여성을 노끈으로 묶는 등 노골적이다 못해 난폭하기까지 하다. 왜 그의 작품에는 늘 처절하고 비참한 모습을 한 여성이 등장하는 것일까? 그렇다, 이번 <안티 아라키전>은 극히 남성적인 시각에서 여성을 대상화시켜온 일본인 사진작가 아라키와 그를 둘러싼 전체 미술계에 고함을 치고 싶었던 것이다.

미술의 역사 속에서 여성은 늘 대상으로만 존재해 왔고, 그리고 그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하고 공포스러운 것인가를 <안티 아라키전>에서는 관람객들에게 실제상황에서 느끼게 하려고 한다. 실제, <안티 아라키전>이 열리고 있는 홍대 앞 카페 ‘시월’의 화장실에는 구석에 변기가 있고, 그 옆에는 얇은 커튼이 둘러쳐진 욕조가 있다. 그렇지만 일이 급한 사람의 경우, 나중에서야 커튼 속의 누군가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푸른색 물결이 넘실거리는 욕조에는 사람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런 상황에서는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보는 것조차 두렵다. 하지만 거울에 쓰인 글을 보면 놀란 가슴은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는다.

“당신의 사진에서 여성을 묶고 가학하는 이유는?”

“아라키 노부요시 - 그렇게 해야 여자는 아름답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게 해야 여자는 아름다운가? 그렇게 화장실에서의 두려운 경험을 시작으로, 어두운 카페 안을 다시 들어오면 한 쪽 벽면에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고나 하는 듯 피라미드 모양을 한 몇 개의 상자 위에 따뜻하게만 보이는 촛불이 타고 있다. 각각의 상자 속에는 그 동안 여성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미술로 인정받지 못한 작은 공예품들과 여성미술가를 상징하는 작은 인형이 힘없이 쓰러져 있다.

이것은 예술이라는 허울 아래 끊임없이 소외되고 대상화되었던 여성들을 위한 촛불 제단인데, 바로 <안티 아라키전>이 이야기하는 두 번째 메시지. 이제는 미술에서 더 이상 객체와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고 싶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지난 20일부터 28일까지 <안티 아라키전>을 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영페미니스트미술가연대의 소윤씨는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끊고 그저 평범한 주변인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전시회에 대해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보도한 극성 언론들 때문이다.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좋지만, 왜곡되게 바라보는 주위 시선이 너무 힘들어요.”

몇몇 언론이 바라보는 것처럼 <안티 아라키전>은 사진작가 아라키 개인의 외설성이나 도덕성 따위에 시비를 붙이고 싶은 것도, 또 포르노란 꼬리표를 달자는 것도 아니다. 여성 스스로가 주체가 된 미술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성역화되어 있는 예술의 높은 장벽을 뛰어넘어 현실속에서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미술학도라면 누구나가 성경처럼 떠받든다는 미술학사에서는 단 한 명의 여성예술가도 찾아볼 수가 없고, 미술해부학 역시 남성의 인체만을 다루고 있어요.” 미술의 역사 속에서 여성은 그려질 수는 있지만 그릴 수는 없는 존재였다는 것이, 영페미니스트미술가연대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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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프로젝트1’- 남성의 성기는 정형화되고 공개되는 반면, 여성의 성기를 그리는 것조차 금기시되어 있는 현실을 그렸다.

그래서 작은 힘이나마 뜻 맞는 젊은 페미니스트 미술가들이 뭉쳤다. 바로 이 <안티 아라키전>을 시작으로. 남성이 중심이었던 지금까지의 미술사에 작별을 고하고, <안티 아라키전>은 바로 현실에서 소외되고 대상화된 여성들 스스로가 보여주고 싶은 진짜 여성의 모습이란 어떤 건지, 그리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만들어진 여성미술이란 어떤건지 그 대안을 보여주겠다고 하는데, 그래서 만들어진 작품은 외설의 시비가 없다. 그동안 여성 스스로조차 금기시했던 자신의 성기를 여러 가지 캐릭터로 표현하고 판화로 만들어서 스티커나 책갈피로 만드는 등의 ‘보지 프로젝트’와 성폭력 피해자가 치유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사진들, 활짝 웃고 있는 장애여성들의 사진, 그리고 스무 살의 수두라는 6mm 다큐 영상물이 있는데, 이런 대안적인 미술작품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의 시각과 관점이다.

이번 <안티 아라키전>을 관람한 관객들의 반응은 이렇다. “어, 사실 동아일보의 아라키전을 아무 생각없이 읽었는데 분명 그 전시회는 여성 관람객에게 폭력이었단 생각이 드네요.” “미술, 뭐, 워낙에 모르는 분야예요. 하지만 여성의 관점에서 형상화되는 미술, 멋져요.”

<안티 아라키전>이 열리고 있는 카페 ‘시월’의 입구에는 어머니가 마치 아이를 안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한 대형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다. 물론 <안티 아라키전>을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은 아니지만, 그것이 아직은 험난한 현실 속에서 새로운 페미니즘 미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라며, 또한 이들의 새로운 시도가 소외된 우리 여성들을 희롱과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진정 마음으로 보듬어 안고 편안한 휴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현실 속의 살아있는 예술이길 기대해 본다.

감현주 기자soo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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