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지영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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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들은 재산권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재산을 직접 관리했을 뿐 아니라 호주로도 등록돼 있을 정도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정지영 선임연구원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경제 지위가 지금보다 높았다고 강조한다. 단지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이란다. 그는 “호주 승계를 비롯해 집도 남자 이름으로 하고 있는 현실은 원래부터 그랬다기보다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강화된 제도”라며 “가부장 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과거의 선례에서 왜 이런 질서가 우리 사회에 자리잡게 됐는지를 분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보자. 정 연구원은 “조선후기 여성들의 일기 자료에서 ‘땅값을 싼값에 팔았다’는 식의 글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또 여성들이 국가에 낸 소송자료도 대부분이 재산권에 대한 내용이다. 여기서 여성들이 재산권에 직접 관여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묘비명에서도 조선시대 여성의 재산권 확보에 대한 근거가 발견된다. 그는 “조선시대에 아들이 어머니의 묘비명을 엮은 자료를 보면 ‘가사를 일으켰다’는 이야기가 빠짐없이 나오고 있다”며 “실제로 노비를 사고 파는 데서부터 땅·집문서를 관리하는 일이 여성들의 몫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들이 생각하고 있는, 다소곳하게 남편과 집안 뒤치닥거리나 하는 조선시대 여성의 모습은 그야말로 상상속의 그대였던 것이다.

여성들이 호주로 인정받았던 역사도 사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 연구원은 “조선후기에 작성된 <경상도단성현호적대장(단성호적)> 1678년 대장에는 여성 호주가 234명으로 전체 호주의 11.1%를 차지한다”며 “조선후기 호주는 남성인 경우가 많았지만 반드시 남성일 필요는 없었다”고 말했다. 300여 년 전에는 호주가 죽으면 호주의 처가 새 호주가 되고 그녀가 죽은 뒤에 아들에게 호를 다시 물려주는 방식으로 호주승계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성들 권리가 지금보다 존중받는 시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17세기까지는 어머니가 살아있는 한 장성한 아들 또는 결혼한 아들이 있어도 어머니가 호주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여성 호주’가 그 옛날에는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나면서 여성들의 권리는 점차 감소되기 시작한다. 정 연구원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여성 호주 수는 반 가까이 줄었고 과부가 비록 가사를 주관한다고 해도 아들이 컸으면 그 아들이 호주가 돼야 한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며 “호적대장에 아들을 중심으로 호주를 쓰도록 하는 국가 정책이 시행되면서 양반·양인 모두에 가부장적 부계질서가 퍼진 것”으로 분석했다. 결국 18세기부터 여성은 ‘아들의 어머니’로서만 재산권을 갖게 됐다.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들이 없는 여성의 입지가 지금처럼 좁아진 데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정 연구원은 말한다. “여성의 재산권이 사라지게 된 배경과 과정을 통해 우리 안에 자리잡은 가부장제부터 먼저 깨우쳐야 합니다. 가부장제가 자리잡은 근본 원인에 접근하는 노력이 있을 때 진정한 여성의 권리가 확보될 수 있습니다. 부부재산공동명의제 운동과 함께 말이죠.”

조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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