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비서 성폭행·성추행 혐의 안희정
무죄 원심 깨고 실형 선고한 재판부
피해자 진술 신빙성 인정하고
“‘피해자다움’ 요구는 편협” 비판

'비서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항소심에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 받은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항소심에서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 받은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위력을 앞세워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2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원심을 뒤집어 ‘위력 성폭력’을 인정했다. 전문가들은 1심 재판이 ‘피해자 재판’이었다면, 2심 재판은 ‘피고인 재판’이라고 짚었다. 1심과 2심 재판 결과를 가른 가장 큰 차이점은 재판부의 ‘성인지 감수성’ 여부라는 분석이다.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홍동기)는 1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5년간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공소사실 혐의 10개 중 9개를 유죄로 인정했다.

안 전 지사는 수행비서를 2017년 8월 29일부터 지난해 2월 25일까지 10차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과 강제추행 등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먼저 2심 재판부는 1심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피해자 진술을 인정하고 받아 들였다.

2심 재판부는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사소한 부분에서 다소 일관성이 없거나 최초 진술이 다소 불명확하게 바뀌었다 해도 그 진정성을 함부로 배척해선 안 된다”고 했다.

또한 2심은 피해자 김지은씨의 진술은 일관되고 모순이 없는 반면, 안 전 지사의 진술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일례로 러시아에서 발생한 첫 번째 강제추행 사건에 대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김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있고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는 “피해자가 불명확한 증언을 하고 있다”고 한 1심 판단과 배치된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답지 않다’는 취지로 김씨의 태도를 문제 삼은 1심 판단을 뒤집고 “피해자답지 않다고 해서 진술 신빙성 배척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다움’은 성폭력 피해자의 태도나 학력, 출신 등을 기준으로 ‘피해자는 이래야 한다’고 요구하는 왜곡된 시선을 일컫는다. 2심 재판부는 “안희정 측 주장이 피해자를 정형화한 편협한 관점”이라는 말로 ‘피해자다움’을 무죄 판단의 근거로 제시한 안 전 지사 측 주장을 배척했다.

앞서 1심 재판부는 “첫 간음 사건 발생 당일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집을 물색한 점, 저녁에 와인 바에서 담소를 나눴던 점 등을 고려하면 간음 피해를 당했다는 진술을 믿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에 따라 2심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의 범위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상사인 피고인을 근접거리에서 수행하면서 피고인을 국내 차기 대통령 후보인 절대 권력으로 인식했을 것”이라며 “비서 업무 내용 및 강도와 피해자가 상시적으로 피고인의 심기를 살피는 것을 보면 지위, 권세 및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무형적 위력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특히 2심 재판부는 성폭력 사건의 판단 기준으로 ‘성인지 감수성’을 직접 제시했다. 앞서 대법원 특별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지난해 4월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을 심리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면서 처음으로 판결문에 성인지 감수성을 명시했다.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직장 성폭력 사건 2심 선고 대응 기자회견이 열려 참석자들이 재판부의 실형 선고에 대해 환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직장 성폭력 사건 2심 선고 대응 기자회견이 열려 참석자들이 재판부의 실형 선고에 대해 환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권김현영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1심 무죄와 2심 유죄 판결에서 가장 큰 차이는 질문을 누구에게 하는가, 이 재판은 누구에 대한 재판인가였다”면서 “1심 재판부는 피해자를 재판했고,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을 재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심 재판부는)피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묻고, 피고인의 말과 행동이 신뢰할 수 없다고, 책임이 큰 자리에 있는 공적 인물이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행동이라고 보았다”며 “그 결과 3년 6개월의 유죄판결, 법정구속이 이어졌습니다. 저는 상식과 정의가 승리한 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여성단체 158개로 구성된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입법 취지를 반영한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결과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위력은 존재하나 행사되지 않았다며 무죄 판결 내린 1심 재판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피해자에 대한 심각한 2차 피해를 일으키고 수많은 여성들의 공분을 초래한 것에 대해 사법부가 겸허히 성찰하라”면서 “오늘 선고 결과가 3심에서도 유지돼 자신의 지위, 권세, 업무상 위력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에게 경종을 울릴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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