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워스>를 보고 나오면서 지루하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버지니아 울프라는 거대한 이름이나 세 명의 여인과 동성애에 얽힌 정치적인 고려에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럽게, “어휴 지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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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만 보고 수잔 서랜든이라고 생각했던 줄리안 무어나 부엉이, 올빼미를 쏙 빼닮은 메릴 스트립은 불편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배우들이다. 그런 면에서 <디 아워스>에서의 캐스팅은 훌륭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나의 취향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의 우아함에 한층 더 힘을 실어주는 캐릭터와 배경이 거부감을 더한다. 하녀가 둘이나 있고 남편은 주말에 정원을 가꾸는 1923년의 영국 리치몬드 교외, 니콜 키드먼은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2층의 안락한 의자에 앉아 소설을 쓴다. 1951년의 미국, 남편만은 잘 두었다는 줄리안 무어는 자신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고, 자살을 위해 최고급 호텔을 택한다. 무엇보다 영화 내내 가지고 싶었던 그녀의 목걸이와 50년대 풍의 냉장고. 현재를 대표하는 메릴 스트립은 뉴요커이자 아티스트. 딸은 있으나 아버지는 없고, 여성과 함께 동거하고 있으며, 에이즈로 죽어가는 소설가의 뒷바라지를 맡고 있다. 세계의 많은 이들이 꿈꾸는 현재의 삶이,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클라리사의 캐릭터에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 럭셔리한 삶을 꾸려가는 세 명의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진진할 수 있을까? 실은 포스터를 처음 목격한 그 날, 이 영화를 보는 일은 내 평생 없을 줄로만 알았다.

친구들의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며 소일하던 어느 날,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의 일부를 발췌해 올린 친구의 글을 읽게 되었다. 발췌문 위에는 이런 글이 달려있었다.

‘조이스의 자유연상에 의한 소설 쓰기는 좀 짜증이 났는데, 버지니아 울프는 그야말로 미문이다. 머리 속에 영국의 공원과 저택들과 신사들과 드레스를 입은 숙녀들의 이미지가 우르르 쏟아진다. 다만 원어로 읽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이런 소설을 토해내려면 도대체.’

글을 쓴 친구가 페미니스트를 지향하는 진취적인 여성이라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의 설명에 뒤이은 그야말로 ‘미문’의 글들이 ‘세월’을 읽다가 지루해져 던져버렸던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나의 감정에 다시 불을 질렀던 것이고, 그리하여 <디 아워스>를 관람하기로 마음을 다시 잡았을 무렵, 그 감독이 <빌리 엘리옷>의 스티븐 달드리라는 사실까지 접하게 되어 기대가 한층 더 커졌던 것이다.

어두운 극장에 앉아서 주위사람들을 둘러볼 정도가 되면, 지독히 재미없는 영화이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은 멍하게 스크린을 향해 있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디 아워스>에 공감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번엔 내쪽이 멍해졌다. “혹시 네가 현혹된 것은 우아함에 대한 동경 아니니?” 라는 질문에, 그들은 내게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나른한 피아노 음악이랑 클로즈업이 나오면서 감정이 동화하기를 강요하기는 하는데, 그게 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 그런 장면들은 두 시간 동안 계속 나오는데, 난 여기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이 영화를 바로 보는 것인가, 그런 고민들만 생기던데.

:세 사람이 살아가는 단 하루의 모습이잖아. 그 하루 안에서도 그렇게나 많은 좌절의 순간들이 있는데, 게다가 그건 세 가지의 배경, 세 가지의 다른 시대에서도 전혀 변하지 않고 느껴지는데, 그런 답답함 같은 건 못 느꼈어?

:그거야 알겠지만, 설마 그거 하나를 이야기하려고 이렇게 길고 지루하게 영화를 끌고 온 건 아닐 것 아냐.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그밖에 있는 것 아니었어?

:예쁘게 꾸민 영화 소품 같은 것을 보여주는 데 더 집착했다는 말인가? <빌리 엘리옷>에서도 미술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는 했었지만, 그건 부차적인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영화를 끌어가는 중심은 각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감 같은 것들이지. 그런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고 했고, 그래서 좀 더 시간이 필요했던 거고.

:그렇지만 나는 그런 절망감을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감정이 안 와 닿았다니깐.

:논리로 이해하려는 건 남성의 언어잖아. 영화는 그런 면에서… 그러니까, 주인공이 여자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여성의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좀 더 여성 영화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나는 잘 느껴지던데.

:여성의 언어라는 건, 감정으로 이해한다는 말인가? 그런 개념에 대해선 확신이 안 서네.

: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여자들끼리는 통하는 이야기가 있거든. 그런 영화들이 종종 있는 것 같아. 남자들하고 여자들 사이에 평가가 정 반대로 갈라지는 거.

:그래도 그렇게 재밌진 않았지?

:아주 재미있었던 건 아니지만,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알 수가 없어.

:게다가 니콜 키드먼 연기하는 것도 짜증나서.

:연기는 메릴 스트립이 제일 낫던데.

:메릴 스트립이랑 동거하는 아줌마가 제일 잘 했어.

:원작을 읽어보면 좀 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거야. 거기에서는 메릴 스트립의 이야기가 중심이고, 나머지 이야기는 그걸 얘기하기 위해서 가져온 이야기 같은 식이거든.

:그럼 영화로서는 실패한 거네?

:스티븐 달드리가 워낙 통속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거지. 그리고 엘리트 관객의 우월감 같은 것을 이용하려 했다는 점은 나도 인정해.

:아, 왜 이렇게 실망이지? 촬영이나 편집도 대충 붙여둔 것 같아. <빌리 엘리옷>에서는 꽤 도식적이고 멋있는 화면을 만들었었는데, 그건 스티븐 달드리의 실력이 아니었나봐. 게다가 프로덕션 디자인도 영화랑 잘 어우러졌었는데, 이번엔 미술이 따로 놀아.

:어쩌면 너한테 멜랑콜리의 감수성 같은 것이 없는지도 몰라.

:멜랑콜리가 뭔데?

:음, 그러니깐, 기형도의 시집 같은 게 멜랑콜리를 제대로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지.

:윽, 기형도 싫어해.

:그럼 그게 맞겠네. 그런데, <디 아워스> 같은 경우에는 멜랑콜리에 대한 취향 정도는 보여주었지만, 멜랑콜리를 드러내는 데는 실패한 것 같아.

:아, 그렇게 이야기하니깐 조금 알겠다. 마지막에 버지니아 울프가 이야기하는 것 같은 거구나. 이제 자기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해피엔딩처럼 보이는데 결국은 언해피엔딩이었던 그런 것?

:줄리안 무어가 삶을 선택했는데, 그 아들이 죽어버린 것도.

:아, 그러니까 생각나는데, 줄리안 무어의 아들이 메릴 스트립이 좋아하는 에드 해리스였다, 꽈광! 이러는 것도 웃겨. 괜히 ‘반전’인 척 하는 거 말야. 예쁘게 포장했는데, 속은 비어있는 느낌. 그리고, 세 시대의 모든 주인공이 동성애자인 건 무슨 의미야? 괜히 격해질 때마다 여자끼리 뽀뽀하는 장면 보여주잖아. 그것도 약간은, 놀랐지? 하면서 얼굴 들이미는 싸구려 유령의 집 같은 느낌이야. 싫어.

:그렇지만, 마지막의 줄리안 무어하고 클레어 데인즈의 포옹은 좀 다른 느낌이잖아.

:아, 그럼 일종의 화해의 메시지라는 거야?

:화해라니까 유치하네. 하여튼 꼼꼼히 살펴보면 3:3의 대칭적 대응이 아니라 조금씩 비틀어 둔 지점이 있어. 그 비틀어진 공간 사이에서 생기는 묘한 감정도 있지 않나?

:너무 고차원적인데. 암호는 풀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냐.

:그건 네가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혹은 남성이기 때문에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어. 네 말에도 일리가 있지만 분명히 마니아가 존재할 만한 영화인 것은 확실해.

:그래, 그게 내가 아닌 것도 확실하고.

황우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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