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들이 고군분투해야 유지되는 학교

생명여성주의자로 지역과 지역에서의 여성경험을 연구해온 필자가 여성, 특히 어머니에 전적으로 의존해 유지되고 있는 교육현장의 실태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교육실태와 대안을 모색해 보는 연재를 시작한다. 필자는 공동육아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했고, <눈높이 엄마, 꿈높이 아이>(책이 있는 마을)의 저자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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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역을 들여다보면서 새삼스럽게 확인한 건, 전 세계 노동의 2/3는 여성이 하고 있다는 UN의 통계가 이 땅에서도 어김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 통계를 접했을 때, 나는 여성노동의 이같은 지대한 비중은 살림과 더불어 아직도 생계유지를 위한 자급자족 농사와 수 킬로미터를 걸어가 물을 길러야 하는 미개발국의 여성노동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데 우리도 아직까지 이런 삶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900여 세대의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 중 400여 세대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인 아파트 단지 내의 조그만 복지관은 10명의 실무자 외에도 주당 평균 3∼4 시간 봉사를 하는 2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는 하루 9시간 노동, 주 5일 근무로 환산하면 약 15.5명의 무보수 상근 실무자의 노동량에 상당한다. 복지관은 필요 업무의 60% 가량을 자원활동가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자원활동가들의 대다수가 여성이다.

어머니는 모두 전업주부다!

학교 또한 다르지 않았다. 고군분투하는 어머니들의 노고가 얼마나 생산적인가에 대한 논의는 일단 차치하고, 학교는 어머니들의 이러한 노고 없이는 유지되기 어려워 보인다. 어머니들의 노력봉사 없이는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도, 독서실 운영도, 벼룩시장도 가능하지 않다. 문제는 이러한 봉사가 낮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들이고 학교의 부모 참여 요구는 암암리에 ‘학부모는 어머니고 어머니는 주부다’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업주부나 시간제 일을 하는 어머니들이 비교적 부담을 덜 갖고 봉사할 마음을 내는 것이 녹색 어머니회나 도서위원이다. 녹색 어머니회는 한 반에 5명 정도 조직되어 있고 1년 동안 등하교 시간에 월 1회 건널목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건너게 하는 일을 한다. 도서위원은 한 반에 두세 명씩 조직되어 있고 역시 월 1회 봉사한다. 담임이 도서관 담당교사이면 그 반 도서위원 어머니들도 반(半) 도서관 담당교사가 된다.

한편, 담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학년 말까지도 엄마들이 청소하러 가는 사례가 목격된다. 저학년에서 어머니들의 청소가 일반화되어가고 있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우리가 어릴 때는 교실 바닥이 기름을 먹여야 하는 마루바닥이었고 월 1회 정도는 학교 전체가 대청소를 하고 반 애들이 죽 줄지어 앉아 기름걸레질을 하던 생각이 난다. 지금은 청소가 대걸레 청소로 바뀌었다. 그런데 아뿔싸! 아이들이 사용하고 있는 대걸레는 어른용 큰 대걸레였다.

내 아이의 결석계를 내러 갔다가, 우연히 아이들의 청소를 목격하게 되었다. 자기 키의 한 배 반이나 되는 대걸레를 갖고 낑낑거리는 아이들의 애처로운 모습이라니… 결석한 아들 대신 청소를 해주면서 비로소 왜 엄마들이 청소까지 해주러 학교에 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들이 안 오는 청소 조에 속한 내 아이가 청소를 한 시간이 넘게 하고 그래서 매번 방과 후 프로그램에 지각했다는 소리를 하는 연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전국 5384개 초등학교의 11만8502개 학급에 4개의 대걸레가 필요하다고 가정해보자. 초등학교 학생용 대걸레는 전국적으로 4학년까지만 어림으로 계산하여도 약 31만6004개가 필요하고(118,502X4개X4/6) 걸레는 일정 주기마다 갈아주어야 한다. 이 정도 수요면, 아이들의 체구에 맞는 대걸레 제작이 당면한 교육 현안으로 떠올랐음직도 한데, 이제까지 교육 현장으로부터 어떤 건의의 소리도 없었고 따라서 정책적 대응도 없었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청소를 아이에게 맡길 수 없으니…

어머니들 역시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아이들에게 버거운 이런 일을 참아내지 못하고 단골로 청소하러 가는 어머니가 한 반에 10여명 내외로 생기게 마련이다(물론 어머니가 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 저학년의 일부 교사는 스스로 청소를 감당한다).

한편, 청소는 초등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학교에서도 에어컨을 틀기 전에 부모들에게 에어컨 청소를 부탁한다. 집에 있는 청소기를 차에 싣고 가 1년간의 에어컨 먼지를 빨아내고 내부 부속물들을 씻어서 다시 끼워놓는 것은 어머니들의 몫이다. 집에서 자기 방 청소도 하지 않는 덜렁이 아이들에게 에어컨 청소는 맡길 수 없다는 것이 학교와 부모들의 일치된 의견인 듯 싶다. 다른 어머니들과 함께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반장 어머니의 몫이다.

딸이 부반장을 할 때, 반장 어머니 역시 직장 여성이었고 일요일 하루를 내어 에어컨 청소와 교실 대청소를 둘이 해치웠다. 그런데 딸이 반장이 되었을 때는 혼자서 일요일에 나와 청소할 엄두를 낼 수는 없었고 내가 다른 어머니들 일정에 맞추어야만 했다. 하루를 참여관찰을 위한 외근으로 빼내어 겨우 어미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시험기간 동안에는 선생님들을 도와 시험감독 봉사를 하는데, 이때도 나는 근무가 없는 토요일을 봉사일로 신청해서 겨우 주어진 몫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등학교에서 임원 어머니의 이 정도 봉사는 초등학교 임원 어머니나 대표 어머니에 비하면 양반이다. 일부 담임들은 협조 받기 쉬운 조건과 자질을 지녔다고 판단되는 어머니를 선택하여 학급 대표로 뽑고 이들이 자질구레한 수발을 들게 한다.

이 어머니 중심으로 모인 몇몇 어머니들이 화분, 커튼, 테이블보 등의 학급 비품 일체를 준비하고 학기 초 환경미화를 맡게 된다. 시험 점수 매기는 것도 이런 대표 어머니가 담임을 돕는 주요 목록 중의 하나다. 이렇게 부모를 자신의 조교로 아는 중독증이 아주 심한 어떤 교사는 자신의 대학원 논문의 워드 치기를 반 아이 엄마에게 부탁할 정도이다. 이 때 적용되는 공식은 ‘자식이 인질이다’쯤 되는 게 아닌가!

김정희/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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