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생명 담보, 억울함 풀어주세요”
“두 생명 담보, 억울함 풀어주세요”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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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매년 증가, 승소판결 극히 드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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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백일을 앞두고 있는 최순옥(가명·33)씨는 착잡하다. 분만지연으로 뱃속에서 태변을 마셔 호흡이 곤란한 아들에게 의료사고 소송에서 승소해 병원측의 ‘미안하다’는 사과를 꼭 들려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사진·민원기 기자>

강영민(가명·38)씨에게 지난 8년은 ‘지옥’과도 같았다. 8년 전 서울의 한 산부인과에서 아내를 잃은 뒤 줄곧 폐인으로 살아왔다는 강씨. 아내의 사인은 자궁내 과다출혈이었다. 병원측의 시술 잘못으로 아내가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한 강씨는 담당의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12개월을 선고받은 의사는 항소를 통해 벌금 200만원으로 감형되더니 결국 3심에서는 무혐의 처리됐다. 3심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8년. 처가에 아이를 맡겨놓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소송에 매달린 강씨는 “아이 때문에 마지못해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바깥 출입마저 삼가고 있다.

의료사고가 급증하고 있으나 정부 차원의 사회안전망이 마련되지 않아 피해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산부인과 의료사고의 피해자들이 정부의 ‘직무유기’로 인해 피해보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출산 중 의식 잃고 8년째 식물인간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지난 99년 4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의료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상담한 결과, 접수된 피해구제 요청 건수는 2027건이며 이중 산부인과 관련 사례가 315건(15.7%)으로 가장 많다. 정형외과(13.5%)와 내과(12.7%), 치과(9%) 관련 사례가 그 뒤를 잇는다.

의료사고시민연합은 “지난 2년 동안 접수된 의료사고 구제신청 3000여 건 중 40%가 산부인과 관련 사례였지만 법정소송까지 가서 승소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밝혀 피해자들의 정신적·경제적 고통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혼한 후 아이를 안는 기쁨을 맛보기도 전에 식물인간이 돼버린 산모 김영화(가명·31)씨. 그는 스물세 살 때 서울의 B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아이는 3일만에 사망했고 그 사실도 모른 채 의식없이 8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남편 권인기(가명·38)씨는 95년부터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병원측의 과실이 인정돼 4년 6개월만에 승소했지만 3억여 원의 배상을 받았을 뿐이다. 병원측의 정중한 사과 한마디 받기는커녕 오히려 ‘혹을 떼는 듯한’ 무성의한 담당자들의 태도에 한번 더 상처를 받고 말았다.

권씨는 “아내가 식물인간이 된 원인조차 규명이 안됐다면 아마 미쳐버리고 말았을 것”이라고 한숨을 쉰 후 “3년이 넘어가면서 가족들도 사건에서 관심을 떼기 시작하자 ‘산모의 희귀병 때문에 치료가 불가능했다’는 병원측의 변명을 믿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의료사고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89년부터 제기된 의료분쟁조정법이 아직도 표류하고 있는 등 정부의 의료사고 안전망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의료서비스 피해구제 청구 건수는 지난 99년 271건에서 2000년 450건, 2001년 559건, 2002년 727건으로 점차 늘고 있으며 산부인과 관련사례도 41건에서 115건으로 대폭 증가했다.

이해각 의료팀장은 “소보원에 상담신청이 들어오지 않은 의료사고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치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라며 “의료분쟁에 대한 전국단위의 기초통계조차도 산출되지 않고 있어 정부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그는 “의료분쟁은 객관적인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힌 후 “빈발하는 분쟁의 요인과 결과를 분석해 유사분쟁을 예방하는 대비책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대통령 자문기구인 의료제도발전특별위원회(의발특위)가 의결한 의료분쟁조정법은 정작 ‘의사 처벌특례조항’과 ‘필요적 조정전치주의’를 골자로 하고 있어 법무부와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의발특위가 합의한 의료분쟁조정법안은‘의료사고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사들을 구제하기 위한 분쟁조정법’이라는 것.

산부인과 사고는 두 생명 위협

의료분쟁조정법안은 ‘경미한 의료사고의 경우 의사가 처벌되지 않고 의사의 과실이 없는 의료사고시 피해 환자를 보상해 주는 의료피해구제기금의 조성’과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소송을 하기 이전에 분쟁조정위원회를 거치도록 하는 필요적 조정전치주의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의발특위는 이 제도를 3년간 시행한 후 환자가 원할 경우에만 분쟁조정위원회를 거치는 ‘임의적 조정전치주의’로 자동 전환할 것과 의사의 경미한 과실로 사고가 났을 때 환자가 원치 않거나 의사가 종합보험·공제에 가입해 모든 손해배상이 가능하면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면제해 주도록 했다.

의료사고시민연합 강태언 사무국장은 “의료피해구제기금을 조성하는 재원을 건강보험공단과 보건의료인단체가 분담키로 한 것은 의료사고 보상마저도 피해자들의 혈세로 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처벌특례조항 등 의료인에게 면책권을 주기에 앞서 잠재적 의료사고 피해자인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는데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가 보상(한도액 2000만원)한다’는 규정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여성민우회 김상희 대표는 “과실입증이 어려운 의료사고에 대해 무조건 국가가 보상책임을 지게 될 경우 의료사고 대부분이 이 보상규정에 적용될 것”이라며 “산부인과 관련 사례는 두 사람의 생명이 담보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환자의 피해 정도에 따라 보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 대표는 “의료행위 중 ‘무과실사고’를 인정하더라도 의료인들이 대가를 지급받는 업무수행과 관련된 것이므로 우선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라 보건의료계가 부담해야 한다”며 관련규정의 수정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참여연대 등 단체들은 ▲진료기록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마련 ▲의사협회 등 관련 기관에서 독립된 감정기구 설립 ▲의료사고 분쟁이 많은 응급실·중환자실·수술실 등에 폐쇄회로를 설치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연세대 의대 서경(산부인과학교실) 교수는 “의료분쟁 발생시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의료분쟁기구의 설립이 시급하다”며 “급격히 변하는 의학지식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재판의 전문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신아령 기자arshin@womennews.co.kr

의료사고 대처법

의료사고 시민연합은 의료사고가 발생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사고자에 대한 진료기록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환자에 대한 기록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입수하느냐가 원인규명의 관건이라는 것. 특히 사고 발생시 병원이나 의사가 진료기록을 변조할 가능성이 많다며 바뀌기 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법원을 통해 증거보존신청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1개월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사실상 의미가 없다. 지난 2000년 의료법이 개정돼 환자 측은 검사일지 등 모든 진료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증인을 확보하고 물증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다. 담당의에게 사고 당시의 정황을 적극적으로 설명할 것을 요구하고 자필서명이나 각서를 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때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 중 의료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동행하는 게 좋다.

지나치게 흥분해 의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금물이다. 일단 의료사고를 당하면 억울한 마음이 앞서 병원 기물을 파손하거나 담당의사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많으나 이럴 경우 역고소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섣부른 합의도 삼가야 한다. 반드시 주위의 법조인이나 의료사고 시민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합리적인 선에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상급 병원으로 옮기면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통상 진료기록이나 검사일지, 방사선 사진 등을 갖고 가기 때문. 따라서 어떤 과정을 통해 사고에 이르게 됐는지를 추정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의료과실을 밝힐 수도 있다. 물론 사고를 일으킨 병원이 추천하는 병원은 피해야 한다.

사고 경위서를 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의료사고는 시각을 다투는 사안이다. 의사가 진료기록을 변조할 가능성에 대비, 사고라고 판단이 되면 기억력을 최대한 동원해 사고경위서를 작성해둬야 한다.

민·형사상 소송은 자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법원은 의료사고가 발생할 때 형사판결에 있어서는 검사가 합리적인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을 하지 못하면 무죄를 선고하기 때문이다. 특히 의료전문인을 자문위원으로 두어 의사로 하여금 동료 의사의 과실 여부를 묻는 제도상의 결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송부터 하고 보자’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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