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없는 회식’ 확산
기업들 분위기 쇄신 나서
대학가 “술·장기자랑 강요 NO”

 

기업과 대학가의 술자리 문화가 변화의 바람을 타고 있다. 기업은 ‘2차 없는 회식’을 표방하며 술자리 줄이기를 내세우고 있고, 대학에서는 과거처럼 술과 장기자랑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한 장소, 2차만, 9시까지’를 내세운 ‘119’ 회식을 내세웠고, 신한금융지주의 경우에는 ‘2차 없이 20시까지’를 표방하며 ‘2020’을 표어로 만들었다. 우리은행은 1차만 해오던 회식 문화를 아예 술 없는 문화로 장려 중이다. 현대카드는 회식을 밤 11시 넘기지 않을 것을 명시하고 있다.

회식보다는 문화생활을 함께 즐기는 ‘탈 음주’ 회식으로 점차 변화고 있다. 지난해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주 52시간제 및 자율출퇴근제제 시행과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문화의 확산으로, 회식 자체를 줄이는 분위기가 조성된 영향도 있다.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사내 곳곳에 성희롱 예방 수칙을 적은 스티커나 공문을 게재하고 불필요한 회식을 줄이는 등 분위기 쇄신에 나서기도 했다.

지자체에서도 직원들의 성인지 감수성을 점검하고, 서로 배려하는 사내문화 조성에 힘쓰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건배사 안 시키기, 술잔 안 돌리기, 참여 강요 안 하기 등 수칙을 마련했다. 또 일정을 사전에 공유해 ‘노 알코올’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회식은 사내 성희롱의 온상으로 손꼽힌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공공기관과 민간사업체 직원 100명 중 8명은 직장 내 성희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이 발생한 곳은 회식 장소(43.7%)가 가장 많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보도에서 ‘세계에서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도시’ 중 하나로 서울을 꼽으며 회식이 잦은 직장문화를 이유로 들었다. 가디언은 “동료 간 유대감을 쌓는 방법으로 회식문화가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아직도 신체 접속을 유도하는 ‘러브샷’ 등 강권 분위기는 남아 있다. 지난 1월 모 대기업에서는 간부가 회식에서 ‘입에서 입으로 음식을 옮기라’고 지시해 해고되는 등 아직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직장 상사의 강제추행을 피해 아파트 출구로 나가려다 베란다 창문으로 추락해 숨진 20대 여성의 유족이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글을 올려 최근 이슈가 되기도 했다.

변화의 움직임은 대학가에서도 두드러진다. 억지로 술을 마시거나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장기자랑과 게임이 난무했던 문화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매년 음주사고 등 각종 부작용으로 논란의 빚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에서 특히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숭실대 총학생회는 OT에서 자신의 주량을 색깔로 표시하는 팔찌로 화제를 모았다.(사진) ‘술 강권 금지 팔찌’로, 자신의 주량을 세 단계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경우에는 노란색을 착용하면 된다. 우제원 숭실대 학생회장은 여성신문에 “주량을 표현하는 것이 중점이 아니라, 강권 문화를 완화시켜 즐겁고 안전한 술자리를 만들자는 캠페인”이라며 “‘술자리의 재미를 줄이려는 것 아니냐’는 피드백을 받을까봐 걱정했지만 오히려 긍정적인 사례로 화제를 모으면서, 모두가 술 문화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을 하고 있구나 느꼈다”고 전했다.

서울대는 장기자랑을 강요하지 않는 ‘장기자랑 프리’를 선언했다. 그간 자율적인 장기자랑 신청을 받았지만, 학번이나 나이에 따라 할당되어온 관행을 없앤다는 취지다. 연세대와 경희대에서는 자체적으로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대처 방안 교육 등을 실시했다.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음주나 장기자랑은 누구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며 “20~30대를 중심으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사고방식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대학 신입생 안내문에 술을 권하지 않는 문화를 전파하는 등 자체 가이드라인을 배포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더욱 확산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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