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주거 마련 어려운데
“네가 가족 지키는 가장이고
그 역할 잘 해야 어른이 된다”
하는 가부장적 규범이 원인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국민주권 2소분과에서 2월 말에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 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이라는 짧지만 폭발력 있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국민주권 2소분과‘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고 다른 분과에는 한국에서도 쟁쟁한 페미니스트와 여성학자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에 그냥 위원회 전체 의견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 그러나 정책기획위원회가 갖는 위상을 고려하면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다. 게다가 더 기분 나쁜 것은(?) “너희들도 한번 보아라!”는 식으로 아예 자료를 공개한 사실이다. 내용이 알려지면 상당한 수준에서 논쟁이 벌어질 법한데 그 정도 시끄러움 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라는 주류 남성가부장적 사고가 그대로 드러난 듯해서이다.

필자도 아주 가끔 어떤 정부위원회에서라도 이른바 진보적 의제를 논의한 경험이 있다. 이 경우 사회적으로 여전히 논쟁적일 수 있으니 논의한 자료는 일단 공개를 미루고 지속적으로 주제에 대해 정부와 전문가, 그리고 관련 집단이 고민해 보자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아마 이 2소분과 위원님들, 그리고 정책기획위원회에서 말 깨나 하시는 분들은 그런 고민 조차를 하지 않은 듯 하다. 대통령이 페미니스트로서 존재를 알린 것을 립서비스 정도로 생각하는 의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또한 현 정부 출범시 공약한 것만큼 성평등정책이 실천되거나 비전이 보이지 않더라도 꾹 참고 현실에 맞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그래서 여기저기에서 지금 뭐하고 있는거냐는 욕을 먹고 있는, 기획위원회가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표현하고 있는 다수의 여성운동 지도자들을 대놓고 물 먹이는 듯 하다.

게다가 하는 일이 잘 안되니까 가장 약한 고리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고 책임을 전가하는 극우 내지 극좌의 정치적 선동 전략마저 보인다. 2015년 시리아에서만 약 80만 명의 난민이 들어오자 독일의 극우정당(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은 독일 내 모든 사회문제를 난민 탓으로 돌리면서 외국인 혐오감정을 부추겼다. 그 결과 지금은 연방의회에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이 전략을 배우겠다는 것인가?

지난 2년 간 성평등 관련 정책에서 일정 정도 변화가 있었고 또 앞으로도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공약했던 성평등위원회 설치부터 시작하여 현실적 제약에 부딪혀 여전히 인내하고 설득하고 논쟁해야 하는 주제들이 산적해있다. 그런데 정책기획위원회 주류 가부장적 시각을 가지신 분들은 “여성에게 조금 잘 해 준 것은 아주 잘 한 것 같고, 그래서 남성에게는 해 준 것이 하나도 없어서 미안하다.”는 감정을 갖는 모양이다. 늘 구박하던 딸에서 부모가 조금 잘 해주면서, 이제 나는 딸에게도 잘 하는 부모야 하고 뿌듯해 한다. 그 가운데 혹시 아들이 섭섭해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자신이 하는 사업이 잘 안되다 보니 내가 너무 딸에게 신경 쓰다가 사업도 안되고 집안일도 안된다고 신경질을 낸다. 딱 이 분위기다.

청년남성들의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진 이유는 여성에게 조금 잘 해준, 그런데 워낙 지금까지 해준게 없다보니 마치 일방적으로 잘 해준 것 같은 젠더폭력 대책에 있지 않다. 제대로 된 일자리와 주거 마련이 어렵고 그런데 지금까지 부모는 나보고 네가 가족을 지키는 가장이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해야 어른이 된다는 식으로 가르쳐온 가부장적 가치와 규범, 그리고 이를 반영한 법과 제도이다. 이런 것들을 과감하게 개혁할 생각을 우선 해라. 여자는 안가는 군대에서 문제를 찾지 말고 이미 노무현 정권 때 만들기도 했던 국방개혁의 큰 그림과 희망을 제시하라. 당장 근본적인 변화를 실감하긴 어렵다. 그러나 비전조차 볼 수 없음에 성을 불문하고 청년들이 실망하는 것이다. 알고는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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