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역사학자 박용옥
여성인권선언서 ‘여권통문’ 발굴·
순국열사 김마리아 재조명 등
50년간 여성사 연구 한 우물
“남성 중심 ‘히스토리’에서
누락된 ‘허스토리’ 연구 중요”
서훈 심사에도 젠더 관점 담아
여성독립운동 재평가해야

역사학자 박용옥 전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가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역사학자 박용옥 전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가 여성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432명. 정부가 인정한 여성 독립유공자 수다. 해방 이후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 1만5513명. 이 가운데 여성은 2.8%(2019년 3월 기준)에 불과하다. 50년 간 여성사를 연구한 역사학자 박용옥(84) 전 성신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주로 기록이나 직책에 따라 공훈이 가려지는데 여성은 앞장서서 투쟁하기 보다는 독립운동가의 부인이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가담했다”며 “이제부터라도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특성을 반영해 제대로 공적을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용옥’은 한국 여성사 연구 가장 첫 장에 새겨진 이름 가운데 하나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원래 조선시대 사회경제가 전공분야였다. 여성사에 처음 눈을 뜬 건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일하던 1960년대 중반이다. 당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사학자 이선근 (1905~1983) 박사와의 대담 중 ‘여성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연구하지 않는다’는 말을 계기로 한국 여성사에 눈을 돌리게 됐다.

“처음엔 논문 4~5개만 쓰면 끝나겠거니 하고 시작했는데 오판이었어요. 막상 시작하고 보니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계속 파고 들어가게 됐죠.”

그렇게 탄생한 박 전 교수의 여성사 관련 첫 논문은 1968년 발표한 ‘국채보상운동에의 여성 참여’다. 1907년 일제의 경제적 침략에 맞서 나랏빚을 갚기 위해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초기에는 3개월 간 담배를 끊고 매달 20전씩 모으자는 방식으로 전개된 남성 중심 운동이었다. 그러나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된 데에는 여성들의 참여가 주효했다. 대구에서 여성들이 “나라 위하는 마음과 백성된 도리는 남녀가 다르지 않다”며 앞장섰으나 주목받지 못했다. 박 전 교수는 국채보상운동은 남성이 독점했던 정치에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운동이라며, ‘한국 최초의 근대적 여성운동’이라고 평가했다.

박 전 교수는 묻혀져 있던 여성 인물을 그들의 생애와 업적을 알리는데 역할을 했다. 남성 중심으로 기술돼있는 역사에서 여성의 흔적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진흙 속 묻혀있는 진주 찾기 처럼 수 많은 자료더미 안에서 여성의 역사를 발견할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고 했다. 농촌계몽에 투신한 ‘인간 상록수’ 최용신을 비롯해 여성독립운동단체 ‘송죽결사대’를 조직한 황에스더, 여성 독립운동의 산실 애국부인회를 부흥시킨 김마리아, 만주서 항일무장운동에 앞장선 남자현까지 그의 연구를 통해 조명받기 시작했다.

“남자현 열사는 의병이었던 남편 김영주가 전투에서 죽은 이후 유복자(김성삼)를 낳아 홀로 키우며 독립운동을 했어요. 항상 죽은 남편의 피묻은 옷을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만주 지역에서 항일무장운동을 펼치며 의열활동을 하고 군자금을 조달했습니다. 만주 전권대사 부토의 암살을 모의한 것이 발각돼 하얼빈에서 체포된 그는 14일간의 단식 끝에 생을 달리했습니다.”

역사학자 박용옥 전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가 독립신문 사본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역사학자 박용옥 전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가 상해판 독립신문 사본을 살펴보며 묻혀진 여성 독립운동가의 생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박 전 교수도 각계에서 쏟아지는 원고 청탁과 발제 요청으로 요즘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 최근엔 김마리아 선생 서거 75주기를 맞아 열린 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펼치는 등 여성독립운동을 연구하는 사학자이자 3·1여성동지회 명예회장으로 강연과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 전 교수는 “정부가 여성독립운동가를 새롭게 찾아내고 그들의 업적을 조명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어 반갑다”면서도 “아직까지 총칼을 들고 ‘거사’를 도모해야만 공적을 인정하고 있어 다른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여성들의 활약이 과소평가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마리아 여사가 대표적이다. 슬하에 3남 1녀 모두 독립운동가로 길러낸 조마리아 여사는 상해 독립운동 진영의 안주인이자 어머니 역할을 해 ‘여중군자’로 불렸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창립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후원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그는 늘 ‘안중근의 어머니’로만 불렸다. 온전한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은 건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으면서다.

안중근 지사의 부인 김아려 여사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도우며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했지만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재독작가 이미륵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 등 일부에서만 간략히 김아려 여사의 행보를 묘사하는 대목만 찾을 수 있다.

박 전 교수는 총칼을 든 ‘거사’에 중점을 뒀던 서훈 평가에도 젠더 관점이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립운동가들 뒤에는 수많은 ‘조마리아’와 ‘김아려’가 있었습니다. 1920년대 연해주 대동공보 주필 이강 선생은 조마리아 여사를 가리켜 ‘과연 범이 범을 낳았다’고 말할 만큼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어요. 남편과 아들이 전장에 나서면 생계를 책임지고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가족처럼 돌보고 독립자금을 마련하고 운반한 여성들이 있었어요. 그동안 여성들은 큰 일하는 남성을 내조하는 아내나 어머니로 그 역할을 축소했어요. 이제는 수많은 조마리아와 김아려를 발굴해 그들의 독립운동도 제대로 평가해야 할 때입니다.”

 

*역사학자 박용옥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성신여대 교수, 한국여성학회장을 거쳐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심사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이사장, 3.1여성동지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근대여성운동사연구』 『한국여성독립운동』 『한국여성근대화의 역사적 맥락』 등이 있으며, 치암학술상, YWCA 사회봉사상, 녹조근정훈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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