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 있는 그 곳에 사람이 산다]
부산 동구 초량동 이바구마을
주민들 싸움 끊이지 않던
산복도로 위 작은 마을
동네 아주머니와 여성 활동가
함께 만든 도심 민박촌 ‘이바구 캠프’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공간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사랑방에서 공유와 토론
웃음이 사라진 마을에서
웃음꽃 피는 마을로 변신

부산시 동구 초량동 8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이바구마을 전경. 오른쪽에 알록달록한 도심민박촌 ‘이바구 캠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바구캠프
부산시 동구 초량동 8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이바구마을 전경. 오른쪽에 알록달록한 도심민박촌 ‘이바구 캠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바구캠프

“‘내 이름이 씨X년이다’.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욕은 그날 다 들었던 것 같아요” 부산 동구 초량동 이바구마을에서 ‘이바구캠프(도심 민박촌)’ 대표를 맡고 있는 박은진씨의 말이다. 박 대표가 이바구 캠프를 시작하겠다고 처음 동네 어른들을 모아 놓고 회의 겸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여기에 모인 동네 주민은 10여명 남짓이었는데 이날 회의 자리는 한마디로 욕 잔치였다. 욕에서 끝나지 않았다. 식사를 하면서 반주를 곁들였는데 욕과 함께 술잔도 날아갔다.

이바구캠프 전경. 맨 앞 노란색은 멀티센터, 위에 붉은색은 체크인센터, 그 위 파란색은 예술 공방, 맨 뒤는  녹색과 노란색은 게스트하우스다. ⓒ이바구캠프
이바구캠프 전경. 맨 앞 노란색은 멀티센터, 위에 붉은색은 체크인센터, 그 위 파란색은 예술 공방, 맨 뒤는 녹색과 노란색은 게스트하우스다. ⓒ이바구캠프

“10년 전부터 이곳저곳에서 ‘장례시설을 지어 주겠다’, ‘노인병원을 만들어 주겠다’며 여러 회사들이 개발 이슈로 접근을 하면서 주민들을 이간질 시켰다고 해요” 주민 싸움의 배경에는 그런 역사가 있었다.

화장실 없는 집도 수두룩했던 가난한 마을. 주민들은 개발 호재가 있을 때 마다 서로 어떤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네, 안 받았네’ 하면서 으르렁 거렸다. 이렇게 불신의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 부산 동구청과 (주)공유를 위한 창조(도시재생 사회적경제기업)가 이 마을을 도시재생 시범 마을로 선정하면서 갈등은 정점을 찍었다.

이바구마을 마을캠프에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주제를 정해 캠프를 진행한다. ⓒ이바구캠프
이바구마을 마을캠프에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주제를 정해 캠프를 진행한다. ⓒ이바구캠프

이바구 마을의 시작은 공동묘지였다. 구봉산 자락 금수사 옆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을 6.25 전쟁을 겪으면서 피난민들이 공동묘지를 밀어내고 마을을 형성했다.  피난촌은 어디나 가난했다. 이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1970년이 되어서야 상수도가 설치됐다.

부산시는 타 지역보다 일찍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했다. 2011년 이바구마을을 포함한 산복도로 주변 마을에 대한 도시재생 사업이 바로 ‘산복도로 르네상스’다. 서구 꽃마을, 시약마을, 사상구 구덕마을, 보부상 테마길, 사하구 마을 옹벽스토리로드, 동구 이바구길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바구 마을의 본격적인 변화는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0여 가구가 남은 이곳은 젊은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말 그대로 을씨년스러운 구도심의 전형이었다. 이런 마을에 부산시와 동구청이 우선 투자했다. 5억원을 들여 집 4채를 구입했다. 그리고 20억원을 들여 이들 집을 리모델링하거나 재건축 했다. 이후에 이곳을 운영할 주체를 찾았는데 그곳이 바로 박은진 대표가 있던 사회적경제기업 ‘공유를 위한 창조’다.

이바구캠프 박은진 대표. 4월이면 3년 임기의 대표직에서 물러난다. ⓒ이바구캠프
이바구캠프 박은진 대표. 4월이면 3년 임기의 대표직에서 물러난다. ⓒ이바구캠프

박은진 대표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든 것이 바로 도심민박촌 ‘이바구캠프’다. 이바구캠프는 2016년 8월에 간판을 달고 영업을 시작했다. ‘이바구’는 ‘이야기’라는 말의 경상도 사투리다. 새롭게 마을을 바꾸면서 주민들이 서로 소통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렇게 마을 이름을 지었다.

“그동안 도시재생은 관에서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새로 지어서 주민들에게 쓸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인데 건물만 있고 운영 주체가 없으면 마을이 잘 유지되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직접 마을에 들어와서 살기로 했어요” 이바구캠프 박정일 본부장의 이야기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학생시절 아일랜드에서 1년 동안 봉사활동을 했던 박은진 대표는 스스럼없이 이런 결정을 내렸다.
“장애인이 생활하는 마을에서 봉사하며 경쟁 없이도 행복하게, 충분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본 거예요.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곳에서 살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기회가 찾아온 것이죠.”

관에서 하드웨어(도심 민박촌)를 만들어 주었고 그것을 운영할 주체는 사회적경제기업인 공유를 위한 창조에서 찾았다. 이 기업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박정일 본부장과 박은진씨 그리고 도시재생 학습 동아리를 하다가 우연하게 결합한 김현정씨까지 세 명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마을 주민들과 같이 식사하고 잠을 자고 마을에서 생활하면서 식구처럼 지냈다. 3년의 노력 끝에 현재는 가족이 6명으로 늘어났다.

박은진 대표는 “이제는 마을 주민들과 정말 가족 같아요. 저희가 명절이나 연말에는 1명만 남고 고향으로 가는데 주민분들이 당번인 사람의 취향을 정확하게 알아서 밥과 반찬을 가져다주세요. 예를 들면 박정일 본부장은 고기를 잘 안 먹는데 생선과 채소 반찬을 많이 만들어서 주세요”라고 자랑했다.

이바구마을 축제. 축제도 주민들이 논의해서 결정하고 주민 누구나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바구캠프
이바구마을 축제. 축제도 주민들이 논의해서 결정하고 주민 누구나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바구캠프

이바구캠프는 마을 기업이다. 마을 기업은 주민들이 주주로 참여하고 지역의 각종 자원을 활용해 안정적인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회적경제기업을 말한다.

현재 이바구캠프에는 80가구 중 30여 가구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철저할 정도로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기업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멀티센터다. 이곳은 동네 주민이면 누구나 언제든지 와서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1층 연회장이 있다. 음식 재료는 이바구캠프에서 준비한다. 주민들은 준비된 재료를 가지고 맛있게 밥을 지어 먹으면 된다.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소통을 한다. 마을의 주요 현안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한다. 2층은 숙박 시설이고 옥상은 주민 누구나 자신의 채소를 심고 가꿀 수 있는 옥상 텃밭이다.

4개의 건물이 1자로 배열돼 있는데 멀티센터 위로는 체크인센터가 있다. 이곳은 게스트하우스와 멀티센터 2층에 있는 방을 사용하기 위해 외부 고객이 가장 먼저 거치는 장소다. 일종의 호텔 프런트다. 이곳에서는 고객에게 예약한 방을 확인해 주고 게스트하우스 사용에 따른 주의 사항도 설명해 준다.

체크인센터 바로 위 건물은 예술 공방이다. 예술 공방은 마을 커뮤니티센터로 공동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공동 작업장과 투숙객 및 직원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공동 주방이 있다. 이 주방을 통해 투숙객에게 조식을 제공한다. 조식은 마을의 아주머니(마을 기업주주)들이 돌아가면서 식사 당번을 정하고 음식을 해 준다. 조식은 1인당 5000원이며 중식은 1인당 7000원을 받고 있다.

맨 꼭대기 건물은 게스트하우스다. 1층은 연회장이다. 이곳에선 마을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고 투숙객들의 식사 공간으로도 쓰인다. 2층은 단체 온돌방부터 2층 간이침대가 들어가 토미토리 방, 코너에 위치한 연인 및 신호부부를 위한 스위트룸이 있다. 게스트하우스의 백미는 옥상이다. 맨 위에 있는 건물인 만큼 옥상 조망권이 최고다. 이곳에서는 부산항과 부산항 대교, 영도의 화려한 야경을 볼 수 있다. 바비큐 시설과 글램핑장도 마련해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부산항의 멋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바구마을 문화프로그램. 주민들이 하고 싶어하는 문화프로그램을 신청받아 상황이 맞으면 진행한다. 사진은 봄을 맞아 분갈이를 하는 프로그램. ⓒ이바구캠프
이바구마을 문화프로그램. 주민들이 하고 싶어하는 문화프로그램을 신청받아 상황이 맞으면 진행한다. 사진은 봄을 맞아 분갈이를 하는 프로그램. ⓒ이바구캠프

이바구캠프 게스트하우스는 방의 크기에 따라 1박에 2만5000원에서 12만원까지 다양하다. 최대 6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부산 동구 주민에게는 평일에 50%, 주말엔 20%를 할인해 주고 있다. 이바구 마을 주민들은 미리 예약만 하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바구캠프를 가장 신나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바로 동네주민들이다. 마을에 있는 주택이 너무나 작아 친척들이 오면 이바구캠프를 활용할 수 있다. “방이 깨끗하고 화장실이 냄새도 안 나 너무나 좋다”고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이 때문에 올 추석 때 쓸 방을 미리 예약한 주민까지 생겼다.

김현정씨는 박은진 대표에 이어 오는 4월부터 대표직을 맡게 된다. 그는 “한 번은 마을 주민이 먹을 것을 잔뜩 가져와서 고맙다는 말을 했어요. 이유를 물으니까 예전엔 손자가 냄새나는 할머니 집 화장실이 싫어서 안 왔는데 캠프가 생긴 후로 손자가 자주 할머니 집에 놀러 온다며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셨어요. 그때 정말 우리가 잘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부산 동구청 김성진 주무관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건물을 만들어주는 것뿐인데 청년들이 들어와서 마을이 아름답게 꾸며졌다.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마을 사업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 줄 계획”이라고 청년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마을주민 구영기씨는 “청년들이 오기 전 이 마을은 정말 웃음이 사라진 삭막한 공간이었어요. 서로 얼굴을 마주쳐도 말 한 마디 건내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완전 다른 마을이 됐어요. 같이 밥 먹고 술도 마시면서 서로의 안부를 먼저 묻기 시작했어요. 이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이죠”라며 활짝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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