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성평등한 강원도
젠더 거버넌스로 일군다

허난설헌의 초상. ⓒ양천허씨대종회
허난설헌의 초상. ⓒ양천허씨대종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 속 여성 인물 하면 누가 떠오를까? 내 또래들은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이 생각날 것이다. 두 여성은 모두 가부장제 조선사회에서 누구의 아내,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그림과 글을 통해 자신을 찾고 이름을 남긴 강원도 여성들이다.

난설헌은 아마도 세계 최초의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난설헌(1563~1589)은 1791년 『여권의 옹호』를 쓴 최초의 여성주의자 매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보다 200년을 앞서 산 여성이다. 전쟁으로 인한 민초들의 고통,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연민 등 강한 여성의식과 함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사랑을 시로 표현한 여성주의 정체성을 가진 시인으로 평가된다. 사임당은 훌륭한 아들을 키워낸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변변한 직업이 없던 남편을 대신해 7남매를 자수와 침선으로 키워낸 생계형 예술가로 재평가되고 있다. 작품 활동은 여유로운 사대부 아내의 고상한 취미활동이 아니라, 생계유지를 위한 생활의 방편이자 부단한 노력을 통해 예술적 성취를 이룬 전문직 여성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득한 선배 여성들이 살아온 고단한 삶의 일상들이 오늘을 사는 강원도 여성들에게 새삼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힘을 준다. 면적의 80% 이상이 산악지대인 척박한 강원도 땅에서 여성들의 노동은 가족을 먹여 살리고 공동체를 돌보는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 세계 유일의 분단도인 강원도 접경지역이 오늘의 평화지역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도 전쟁과 폭력, 이산과 대립의 아픔 속에서도 지역을 떠나지 않고 공동체를 일구어온 여성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폭력의 두려움 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강원도 여성에게 평화는 거대담론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공기이자, 밥이자, 생명이자, 정의이다.

우리 연구원은 작년에 이어 올해 2월에 개최한 평창평화포럼의 젠더세션의 결과와 정신을 계승하여 국내뿐 아니라 세계 분쟁지역에서의 여성, 평화, 안보 이슈의 해결을 위해 연대해 나갈 것이다. 포럼준비를 계기로 구성된 강원도여성평화네트워크는 도단위 여성단체들의 연대체로서, 앞으로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연구원과 파트너십을 지속해나갈 계획이다. 긴 호흡으로 남북강원도 여성들이 다양한 소통과 교류를 통해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역사적 경험의 동질성을 공감하는 활동들은 결국 통일 이후의 성평등한 강원도, 대한민국을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다.

우리 연구원은 17개 시·도 여성정책기관 중 유일하게 공무원조직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정원 확대나 조직 운영의 유연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도청의 사업소로서 예산 및 사업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하여 본청 실과와 긴밀한 협업을 통해 연구결과를 정책으로 환류하기 좋은 환경이다. 정책연구의 과정 자체가 민관 젠더 거버넌스의 플랫폼이 되어 행정, 의회, 외부 전문가, 여성단체의 활발한 소통과 협업을 통해 현장과 밀착된 여성·가족·복지 정책연구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한 강원도가 인구절벽에 직면해서야 저출생 문제의 원인을 가정과 일터에서 여성을 차별하고 배제해온, 그리하여 일과 생활의 균형을 어렵게 하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인식하게 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올해부터 도입하고 있는 육아기본수당(4년간 매월 30만원 지급)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지방정부가 분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실험이다. 육아기본수당이 여성의 경력단절이 아니라 모든 도민이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평화로운 공동체 실현을 위한 성공적인 실험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보완 정책들을 제안할 계획이다.

2020년이면 10년이 되는 우리 연구원은 성평등 정책의 기반이 되는 중장기적인 지역 데이터를 축적하여 정책의 성과들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강원도민 여성들이 성평등 정책의 주체로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주도할 수 있도록 젠더 거버넌스를 더욱 활성화하고자 한다.

박기남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 원장
박기남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 원장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