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포럼 – 공부의 모든 것]

에듀테크포럼 회원사들이 돌아 가며 재능기부로 기고하는 글입니다. 다양한 사교육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독자들께 도움 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은 여성신문의 공식적인 의견과 무관합니다 <편집자 주>


배꼽인사와 눈맞춤 인사, 세종이라면 어느 쪽일까?

한국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의미 있는 사회적 동작은 무엇일까? 아마 배꼽인사일 것이다. 부모를 포함해 아이를 둘러싼 모든 어른들이, 아이에게 배꼽인사를 강요하다시피 시킨다. 과연 아이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것일까?

요즘 국제무대에는 배꼽인사, 굽신인사가 없다. 오직 일본과 한국에만 아직 그런 인사가 있다. 요즘은 일본인도 국제무대에서 굽신인사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상대방을 공손하게 대한다는 우리 의도와는 달리, 상대방의 눈을 감히(?) 쳐다보지 못하는 90도 인사는 상대방에게 거북함과 생경함을 준다. 눈을 피하고 숙이는 것은 졌다는 신호, 패배와 굴욕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배꼽인사의 후유증은 성인이 되면 더 심해진다. 토론장이건 회의장이건 상대방을 제대로 바라보고 집중하는 경우가 드물다. ‘높은 분’에게 90도 인사가 당연하고 제대로 숙이지 않으면 건방지다는 오해를 받을까 두려워한다. 상대방에게 푹 숙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도 숙이는 표리부동도 있다.

배꼽인사를 안 하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 존중하면서 인사하면 된다. 척추건강에 좋은 자세로, 즉 머리, 목, 허리를 일자로 바로 세우고 상대방과 가볍게 미소로 눈인사하는 것이다. 인사말을 곁들여도 좋고, 악수를 하는데, 중요한 건 ‘바로 서서 눈맞춤’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아이라면,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춰 주되 나의 허리와 목은 가급적 곧게 유지하면 된다.

도대체 배꼽 인사의 기원은 무엇일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제후국이 황제의 나라에 ‘조아리는’ 것이 기본 예법이라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백성들 사이에서도 예법이었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실록에 묘사된 다양한 상황들을 보면 신분이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굽신거리며 조아렸던 듯하다. 그러면 이런 굽신거리는 인사법을 <오례의>에 규정한 세종대왕 탓을 해야 하나?

흥미롭게도 세종대왕은 신하들이 매사에 조아리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신하들과 ‘일’ 할 때는 고개를 들어 얼굴 보고 대화하기를 신하들에게 요청했다. 조선시대의 여러 군주들이 신하들에게 같은 요청을 하는 장면이 여럿 발견된다. 조아리는 인사법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오히려 신하들이었다.

 

"내가 들으니, 중국의 사대부들은 황제의 앞에 나아올 때나 물러갈 때에 절대로 머리를 숙이고 땅에 엎드리는 예절이 없다고 한다." 세종5년(1423) 7월 3일

정사를 보았다. 아침 조회 때 참의(參議) 이상은 엎드리지 말고 머리를 들고 앉으라고 명했다.” 세종10년(1428) 5월 25일

 

그러면 왜 <오례의>에서는 굽히는 예법을 규정했을까? 당시 조선이 주변국들로부터 문명국으로 인정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는 동아시아 문명권에서 표준모델(글로벌 스탠다드)로 통했던 중국식 예법을 준용한 것이었다. 구시대인 고려 스타일을 버리고 신문명을 도입해 조선 스타일로 확립한 것이다. 이는 마치 지금 우리가 외국문물이 우리 것보다 좋으면 수입해서 쓰는 것과 완전히 같은 원리다.

세종은 매사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하는 국수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파격적인 혁신가였다. 당시는 고려인을 조선인으로 개조해야 했다. 국제정세와 문명의 트렌드를 깊이 있게 연구해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할 것은 확실하게 따르고, 조선이라는 지역 (local) 맞춤형 해법이 필요한 사안은 그에 맞게 대응하는 게 세종 스타일이었다.

예법은 마치 언어와 같다. 우리는 지금 세계 공용어가 영어라서 영어공부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쓴다. 영어를 모르면 한글로만 된 세상에 갇힌다. 영어 등 세계어를 알면 나에게 더 넓은 세상이 펼쳐진다. 예법도 이와 같다.

예법이란 상대방과 소통과 교감을 원활히 하고 일을 수월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소프트웨어다. 지금 세종대왕이라면, 당연히 우리 어린이들 아니 한국인 전체가 글로벌 매너를 도입해 일상화하도록 <21세기형 오례의>를 만들 것 같다. 600년 전에는 동아시아가 조선 세계관의 거의 전부였지만, 지금은 세계인과 소통케 하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표준이다.

버락 오바마 前 미국 대통령과 당당하게 바로 서서 악수하고 있는 어린이
버락 오바마 前 미국 대통령과 당당하게 바로 서서 악수하고 있는 어린이 (사진=백악관)

일상생활에서 기업경영에 이르기까지 우리 경제수준 3만 달러에 걸맞게 ‘품격’이 높아져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90도 인사 같은 기존 예법에 갇히지 않고, 세계의 뛰어난 리더들과 당당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글로벌 소통 매너를 갖추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장차 더 넓은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소망에서 나는 ‘어린이 글로벌 매너 교실’을 시작했다.

우리 아이가 국제 사회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해주고 싶다면, 오늘부터 무조건적 배꼽인사보다는 ‘바른 자세 눈맞춤 인사’를 하도록 권하면 어떨까?

 

권혜진

프리미엄 교육콘텐츠 기획사 세종이노베이션 대표. 리더십, 문화, 기초학문 분야 고급 콘텐츠에 집중. 실록학교, 세종의 식탁, 품격경영아카데미(어린이글로벌매너교실), 이동건게임연구소 등을 육성 중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