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100년 사상 첫 여성 조합장
해녀조합으로 시작한
서귀포 수협서 재선성공
고졸 직원으로 시작해 36년 한 길
"결혼하자 퇴사 압박
승진 시험 원서도 안줘"
86세 어머니는 해녀 지도자
#미투 후 남녀부리현상 과제로
5월 3~5일 은갈치 축제 열어

김미자 제주 서귀포수협 조합장은 수협 최초 여성조합장으로 2017년 보궐선거에서 18대 조합장으로 당선됐으며 지난 3월 13일에 열린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으로 연임에 성공해 19대 조합장으로 취임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미자 제주 서귀포수협 조합장은 수협 최초 여성조합장으로 2017년 보궐선거에서 18대 조합장으로 당선됐으며 지난 3월 13일 열린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으로 연임에 성공해 19대 조합장으로 취임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유리천장’은 견고하다. 하지만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역사를 써가는 이들이 있다. 김미자(54) 제19대 서귀포 수협조합장이 우리나라의 수산 업계에 새 역사를 썼다. 104만 수산인, 전국 91개 조합으로 구성된 수협의 100여년 역사 최초로 여성조합장이 됐다. 전국 최초 여성 수협조합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김미자 조합장이 연임에 성공했다. 앞서 ‘기적’으로 불렸다면, 이번 연임으로 남다른 리더십과 전문성을 증명했다.

2년 전 재선거에서 전국 최초의 여성 조합장에 등극했던 김 조합장은 지난달 선거에서 유일한 여성 후보로 단독 출마해 무투표로 당선, 앞으로 4년 더 서귀포수협을 이끌게 됐다.

김 조합장은 직원으로 시작해 조합장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다. 직원들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이해하며 소통하는 데 앞장섰고, 조합운영에 대한 성과와 신망을 검증받았다. 그는 수협직원에서부터 책임자를 거쳐 서귀포수협 재직당시 전국 최초로 여성상무로 발탁돼 화제가 된 바 있다.

김 조합장의 기록에는 단지 ‘여성 최초’라는 도식적인 수사를 압도하는 감동이 있다. 바다의 산물을 다루는 어업인을 대하는 그 조직, 여자는 배를 타면 안 되고, 여자는 어업인이 될 수 없다는 식의 고정관념이 종교적 신념처럼 자리 잡고 있었을 때였다. 1983년 수협에 입사한 그는 결혼 후 퇴직을 압박하는 조합장에게 시달렸다고 한다. ‘누가 서귀포수협을 더 오래 다니나 보자’라는 오기로 버텼다. 승진 시험을 봐야 하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원서도 주지 않았던 시절이다. 간신히 원서를 얻어 10년 만에 대리로 승진했다. 여성으로서 차별을 받은 것은 이뿐이 아니었다. 대리는 책임자급으로 뒷줄에서 결제하는 역할을 맡는데, 퇴직 종용에 말을 듣지 않자 책임자 자리에 배치 시켰다가도 창구직원으로 바꾸는 일이 매번 반복되었다.

“후임들이 줄줄이 과장되는 걸 지켜봐야 했지요. 거친 환경이었지만 쫄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우리 식으로 버티면서 그렇게 살아남았어요.”

수협 조합장은 어업인 조합원들의 투표로 선출된다. 서귀포 수협에는 2043명의 조합원이 있고 그 중 1253명이 여성 567명이 현직 해녀 조합원이다. 서귀포 수협은 1925년 해녀조합으로 시작됐고 해녀들의 공로가 큰 곳이다. 김 조합장은 평소에도 해녀들이 물질하고 올라올 때에 맞추어 빵과 우유를 준비해서 찾아간다. 물질 이후의 시장함과 갈증을 생각해 찾는 발길이다. 그는 “선거에서 여성의 도움은 미미 했었고, 해녀의 도움은 컸다”고 말한다.

김 조합장도 해녀의 딸이다. 남다른 리더십은 어머니를 닮았다. 어머니 오금생(86세) 씨는 해녀 지도자로, 주변 사람들을 아낌없이 거두는 인품으로 유명했다. 어머니는 ‘여자라서’, ‘여자니까’라는 딸의 잠재능력에 한계를 지우는 교육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전에 도전을 거듭할 수 있는 원동력은 해녀 어머니의 탯줄에서 공급된 셈이다.

김 조합장은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성차별적인 조직 문화가 있었지만, 여자라고 승진시험 원서도 안줄 때 남몰래 원서를 건네준 상사, 배를 공동구매할 수 있도록 주선해준 상사, 실력 하나 믿고 여성을 지점장에 발탁해준 상사. 그들의 합리성이 걸출한 여성리더를 키워냈다. 김 조합장은 최근의 미투 운동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얼마 전 회식자리 가보니 남자들끼리만 하더라고요. 알게 모르게 분리현상이 생겨나고 있어요. 미투의 원인이 되는 일은 생기면 안되는 게 분명합니다. 여성운동을 고맙게 생각하고, 성차별은 없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피해자의 저항만을 강조하면 조직생활을 하는 입장에서는 여성들에게 피해가 돌아온다는 겁니다.”

김 조합장은 자신을 ‘살아남은 자’라고 칭했다. 19세 여고생은 30년을 넘게 버티면서 저항했다. 그리고 끝내 성공해서 조합장이 되었다. 불리한 환경에서 가진 것 없는 자의 성공 비결은 ‘남다른 노력’이다. 조합장의 꿈을 품을 이후에는 더욱 열정적으로 일했다. 경매를 책임지는 경제 상무 시절에는 갈치 뿐 아니라 고등어 배, 참조기 배를 유치하여 수협 창립 이래 처음 으로 위판고 1천억을 넘기는 실적을 만들기도 했다. 조합장이 되기 위해서는 어선주 조합원이 되어야 했다. 당시 7~8억 하는 29톤짜리 연승어선을 공동으로 구매했다. 그리고 조합원 가입 신청을 하였다. 그러나 조합원 가입도 쉽지가 않았다 여자가 조합장 꿈을 꾼다고 처음부터 싹을 자르겠다는 의도였다. 끈질기게 싸워서 2007년 11월 조합원 가입이 되었고 꿈을 이룰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이후 20억 상당의 52톤 갈치 연승을 공동소유로 마련했다. 어선주 조합원이 됨으로써 힘 있는 조합원이 되었고 조합장 후보가 될 수 있었다. 

조합장이 된 첫 해에는 수년 째 안 잡히던 은갈치가 풍어를 이뤘다. 은갈치 위판고 1,270억원 달성, 2회연속 위판고 1천억 돌파 대기록 달성, 기쁨도 잠시, 쏟아지는 물량에 입찰 가격 하락 과 매취사업으로 인한 과다 재고로 대책이 시급했다. 국회와 행정부 관련 부처를 방문하고, 서울역에서 홍보, 대형마트를 이용한 할인판매 행사 등 전국 각지에서 갈치 판로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작년에는 제1회 서귀포수협 은갈치 축제를 개최해 서귀포의 아름다운 해안절경과 갈치 우수성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고. 올 5월 3-5일에 제2회 은갈치 축제를 열어 어촌관광 활성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실적 걸린 건 무조건 1등 해야 했어요. 상무시절 서귀포 수협이 전국 1등 했고, 공제보험 유치에서 개인 대상수상을  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지요. 곧 있을 수협 공제보험 연도대상 시상식에서 다시한번 서귀포 수협이 영예의 대상을 받게 되었고 5개의 영업점중 4개 영업점이 1등, 1개 영업점이 2등을 차지 했습니다.”

김 조합장은 화합을 강조했다. 그는 “준비된 조합장에서 실천하는 조합장이 되려고 한다”며 “조합원의 행복추구를 위한 공약사항들을 꼼꼼히 챙겨서 조합원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겠다. 조합원에겐 풍요롭고 고객에게는 신뢰받고 임직원에게는 자긍심을 주는 전국 최고의 서귀포수협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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