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백래시는 “여자들이
지나치게 민감하고 시끄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고
살아가는 남성들의 존재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연예인 성 상납 사건 의혹 규명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윤지오씨가 신변의 위협을 느꼈던 순간 경찰의 시기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해서 사회적 파장이 일었다. 본인이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문제제기를 하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동참했다. 그러자 그 높으신 경찰서장께서 직접 윤지오씨를 찾아가 사과하고 신변보호를 강화했다. 그런데 느낌이 개운치 않다. 예전 같았으면 경찰서장이 직접 나서서까지 그렇게 하겠냐고, 진짜 ‘여자 살기 좋은 세상’ 됐다고 목소리 높일 사람들의 모습이 우선 떠오른다. 여기에 더해 뭐 그런 일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문제제기 하는 건가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개념없는 남자, 이상한 남자 취급받을까봐 혹은 논쟁을 하기 싫어서 조용히 침묵하는 수많은 남성들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백래시(Backlash, 반격)의 거대한 산이 드러난다.

많은 청년여성들과 가부장제를 주제로 이야기하다 보면 특히 자신들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한다. 딸에게 여성다움·딸다움을 강요하는 아버지들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많은 아버지들은 자신을 ‘딸바보’로 생각하시겠지만, 그런 아버지들의 딸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딸바보로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아마도 자신의 시선과 느낌에만 맞춰 딸바보로 자신을 생각하는 아버지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또 상당수 경우는 딸로서 아버지의 독단적 의사결정과 성차별적 사고 및 태도를 지적한다. 그리고 엄마나 다른 형제자매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동조할 때 아버지들이 그냥 물러서는 경험도 말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당장, 혹은 앞으로도 자신에게 강요하는 ‘여성다움’ 관련 생각을 바꿀 것이라는 생각을 청년여성들은 하지 않는다. 다만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공연히 부딪히기 싫어서 아버지가 그냥 물러서는 것이라고 여긴다.

당장 윤지오씨 안전 문제는 경찰서장까지 나서서 해결했지만, 이 땅의 수많은 젠더폭력 피해자 및 증인이 불안해하지 않는 시스템을 우리는 제공하고 있는가?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사실 젠더폭력이 아니더라도 범죄 피해자 및 관련 증인을 제대로 보호하는 시스템,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경찰관이 제대로 훈련받고 있는지 대중은 불안할 뿐이다. 모두가 나서서 문제제기를 함께 했던 윤지오씨 상황을 계기로 경찰이 변했구나, 변하겠구나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예전의 집안 어르신들처럼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가부장의 모습은 아니지만, 가족 대다수가 문제제기하는 이야기가 듣기 싫어서 대충 들어주는 척 하고 슬그머니 TV 앞 소파로 자리를 옮기는 요즘 아버지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노래가사에서 여성을 폄하하고 젠더폭력을 조장하는 발언을 하고 일베스러운 행동을 노골적으로 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백래시는 어떻게 보면 고마울 수도 있다. 그 추한 민낯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젠더폭력이든 노동시장차별이든 문제가 생기고 이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 반응을 하지만, 문제제기를 안한다면 그냥 묻혀 버리는 구조를 그대로 놔두고 조용조용 넘어가는 상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범죄 피해자나 증인은 제대로 된 신변보호를 받으려면 늘 청와대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글을 남겨야 하나? 사람들은 늘 청와대 홈페이지에 무슨 사연이 올라왔나 주목하다가 행동을 함께 해야 하나?

비상호출 스마트워치라는 최신식 장비를 들여와도 경찰관 개인이 반응을 제대로 안하면 소용없다. 여성혐오를 적극적으로 노출하는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백래시는 “여자들이 지나치게 민감하고 시끄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입을 열지 않고 살아가는 남성들의 존재 그 자체이다. 이들의 변하지 않는 가부장적 가치와 태도를 바꾸는 일에 관심을 돌릴 때이다. 경찰의 피해자 및 증인보호 시스템 변화도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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