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적’으로 임신 24주까지
인공임신중절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은 함량 미달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269조와 270조가 헌법에 불합치하다는 판결을 했다. 그 결과 관련 조항은 2020년 12월 31일까지 폐지되거나 개정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낙태 허용 범위를 둘러싼 많은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모자보건법은?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 당시 입법 목적 중 하나였던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 한계를 정함”은 사실상 낙태 합법화 시도로 볼 수 있다.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낙태는 예외 없는 처벌 대상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국가가 산아제한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낙태의 정책효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불법행위로서 낙태를 무조건 처벌만 하는 형법 외에 다른 법을 만들어서 낙태를 사실상 합법화하는 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법이 인공임신중절이라는 용어를 들고 나온 모자보건법이다.

우생학적·유전학적 문제, 전염성 질환, 강간·근친상간에 따른 임신 외에도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라는 매우 애매한 인공임신중절 허용 규정을 1973년 모자보건법은 내세웠다. 모자보건법 제정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인공임신중절에 대해 관대한 인식이 퍼져나갔다. 형법상 ‘낙태’는 불법이지만 모자보건법상 ‘인공임신중절’은 합법이라는 이미지 조작이 성공한 것이다.

국가 주도 이미지 조작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는 근거는 모자보건법 제정 직후 1974년부터 시작한 MR(월경조정술) 사업이다. 보건소에서 낙태시술을 무료로 해 준 사업이다. 1974년부터 1989년까지 피임수단으로서 출생 방지에 기여한 비중을 보면 난관수술(36%), 월경조정술(21.7%), 자궁내장치(21.2%), 정관수술(12.9%), 먹는 피임약(3.9%), 콘돔(2.7%) 순이다. 같은 기간 난관수술로 200만 건 이상의 수정을 막았다면, 월경조정술 사업으로 117만 명의 태어날 수 있었던 생명을 인공중절(낙태)시킨 것이다(정재훈 외.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 2017). 낙태는 불법이지만 인공임신중절은 합법이라는 이미지 조작을 가능케 했던 모자보건법은 인공임신중절 허용 기간도 매우 관대하게(?) 28주까지로 정했다. 2009년 법 개정으로 그 기간이 24주가 되었지만 22주 정도 초미숙아도 살리는 현대의학 수준을 감안하면 여전히 단축의 여지가 있다.

결국 모자보건법은 낙태가 예외 없이 불법이었던 상황에서 인공임신중절이라는 합법적 수단을 만들기 위한 국가의 꼼수로 태어나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저출산 현상이 지속되는 지금은 여성이 아이를 많이 낳게 할 수 있는 수단만 강조하는 경향을 보인다. 인공임신중절을 부추겼던 과거가 있고 출산을 장려하는 현재만 있을 뿐이다. 출산주체로서 여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출산장려정책’의 객체이자 대상으로서 여성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낙태 처벌 조항의 헌법 불합치 판정은 낙태와 출산 중 무엇을 선택하든지 결정주체로서 여성에 대한 광범위한 지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임신중단과 출산 간 선택을 돕는 상담이 먼저 시급하다. 불법낙태 환경에서 은밀하게 의사에게 들었던 조언과는 차원이 다른 상담서비스를 당당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임신중단ㆍ출산 관련 보건의료서비스, 취업 지원, 교육기회의 제공, 주거지원 등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출산 주체로서 여성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토대로서 모자보건법은 절대적으로 함량 미달이다. 보건 외 지원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만약 낙태 합법화가 되면 낙태 건수가 증가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분이시라면 더더욱 임신이 낙태로 끝나지 않고 출산으로 연결될 수 있는 지원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결국 어떤 이유에서든지 모자보건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든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관심을 갖고 요구하며 지켜보자.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