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만드는 언론 역할도 중요
헌재 판결 취지 왜곡 않도록
모든 국민의 재생산권 보장·
의료보험 적용 등 반영 필요

박수진 변호사
박수진 변호사

 

1997년 동성동본 금지 위헌, 2005년 호주제 위헌, 그리고 2019년 낙태죄 위헌까지. 한국사회에서 여성인권의 큰 진전을 일궈낸 헌법재판소 판결들이다. 위 판결의 또 다른 공통점은 단순위헌이 아닌 헌법불합치 결정이라는 점이다. 헌법불합치는 단순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해당 법률이 즉시 폐기됨으로써 야기되는 사회적 혼란을 피하기 위해 법 개정 전까지 한시적으로 그 법을 존속시키는 일종의 변형된 위헌결정이다. 헌재는 이번 낙태죄 판결에서 ‘잠정적용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 단순위헌결정을 할 경우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행해진 모든 낙태를 처벌할 수 없게 됨으로써 용인하기 어려운 법적 공백을 이유 중 하나로 언급하였다. 모든 낙태가 처벌되지 않는 법적 상황이 되면 낙태, 특히 22주 이후의 후기낙태가 증가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선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다고 낙태가 증가할 것이라는 판단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찾기 어렵다. 오히려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 국가가 낙태를 처벌하는 국가보다 낙태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가 있을 뿐이다. 또한 이번 위헌 결정으로 임부가 임신초기 낙태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시기를 놓쳐서 자신의 생명조차 위협하는 후기 낙태를 선택하는 상황은 개연성이 크지 않다. 게다가 한국에서 그간 자기낙태죄 조항은 형벌조항으로서 갖는 예방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매우 낮은 비율로 기소되어 형사처벌까지 이루어지는 경우에도 본래 입법목적과는 다른 용도, 예컨대 이별범죄의 수단이나 법적 분쟁에서의 압박수단 등으로 악용되어 사건화된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즉 자기낙태죄 조항이 즉시 폐기된다고 하더라도 극심한 법적 혼란이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단순위헌 의견을 밝힌 3명의 재판관이 지적한 바와 같이 “법적 질서유지를 위한 요청이 있더라도 그것이 극심한 사회 혼란을 야기하여 기존의 인적·물적 자원으로는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 아닌 한, 당사자의 구제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그래서 헌법재판소가 단순위헌이 아닌 잠정적용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아쉽지만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헌재가 정한 시한은 2020년 12월 31일. 동성동본 금지나 호주제 경우에서 경험하였듯이 헌재 결정 이후의 입법과정은 또 다른 투쟁의 시작이다.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헌재의 위헌 취지가 왜곡되거나 또 다른 위헌적 요소가 담긴 채 최종법안이 통과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낙태반대를 주장하는 종교계의 반발이 만만찮은데다, 낙태 관련 입법은 모든 국민의 재생산권 보장과 의료보험 적용 등 보건복지제도나 국가예산 등과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오랜 편견과 관습을 변화시키는 일이기에 지난한 입법과정을 노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취지와 구체적인 내용을 국민에게 적극 알리고 향후 입법과정에서 왜곡 없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시민단체, 행정부, 입법부 등 모두가 나서야 하겠지만 여론형성에 끼치는 영향력에 비추어 볼 때 언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낙태죄 위헌 결정 이후 오랜 편견과 관습이 변화하고 여성의 경험이 누락되지 않은 ‘모두’의 법을 만들어지려면, 뉴스 편집과정에서 당사자인 여성의 목소리가 많이 반영되어야 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런 점에서 지난 해 사내 여성기자협회의 요구로 언론사 최초 성평등센터를 출범한 KBS와 여자 기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여 올해 하반기 젠더 전문 매체의 창간을 준비하고 있는 한겨레신문의 움직임은 낙태죄 관련 보도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낙태를 직접 체험하진 못했다하더라도, 적어도 자기 자신의 문제로 수용하고 공감하는 언니들이 낙태죄 위헌 판결이후 어떤 새로운 기사들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낼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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