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는 남학생에게
앞 번호 부여하는 방식에
‘성차별 행위’ 판단

성평등 사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 중에 하나가 성별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성희롱이나 혐오 발언처럼 눈에 보이는 차별만이 아닙니다. 여자니까, 남자니까 처럼 딱히 꼬집어 설명할 수 없지만 불편한 것들은 훨씬 더 많습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성별에 따라 적합한 생각과 행동이라고 배우고 따라왔기 때문에 무엇이 성별고정관념인지를 인식하고 인정하고 바꾸기란 쉽지 않아요. 그래도 여러분들은 성평등을 지지하고, 어른들보다 열린 마음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성별고정관념과 얼마든지 겨뤄볼만 합니다. 
10대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 총 3회의 글을 통해 일상에서 접하는 성별고정관념을 짚어봅니다. 성평등 감수성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는 자양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5월 1일에 발표한 2019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여학생의 97.8%, 남학생의 94.8%가 남녀의 평등한 권리를 지지했다. (사진은 해당기사와 관련없음)  / 뉴시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5월 1일에 발표한 2019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여학생의 97.8%, 남학생의 94.8%가 남녀의 평등한 권리를 지지했다. (사진은 해당기사와 관련없음) / 뉴시스

 

유모차를 유아차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몰래카메라를 불법촬영으로, 리벤지 포르노를 디지털 성범죄로…

작년에 서울시 여성가족 재단이 성평등 주간(7월 1일~7일)을 맞이해 발표한 ‘성평등 언어 사전’입니다. 시민들이 직접 제안한 600여 개의 언어들 중에서 전문가들이 우선 공유하고 확산할 필요가 있는 언어 10개를 선정했어요. 언어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십대도 있겠지만 갸웃하는 십대도 있을 거예요. 우리가 일상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온 언어들이기 때문에 성차별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언어들인 만큼 제안 이유를 살펴보면 공감이 될 겁니다.

이 중에 여러분들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언어도 있어요. 바로 ‘여자고등학교를 고등학교로’ 입니다. 저도 1990년대에 ‘S여자고등학교’를 다녔어요. S여고는 ‘S대학교’부터 ‘S유치원’까지 모두 있는 큰 학원에 속해있었는데요, 여기서 퀴즈. 옆에 있는 남자고등학교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요? 맞아요, ‘S고등학교’였습니다. 퀴즈가 너무 쉽지요? 우리 언어의 용례를 여러분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우리 언어에서는 성별 표기가 필요할 때 남자는 표기하지 않고 여자만 표기하지요. 성평등 언어 사전에서 선정한 10개 언어 중 무려 3개가 이런 언어였답니다. 나머지 두 개는 단어의 앞과 뒤에 ‘여’를 붙이는 언어 표현이에요.

-여교사, 여배우, 여의사, 여기자 등 직업 앞에 붙이는 ‘여’를 빼기

-여성을 대명사로 지칭할 때 그녀를 그로 사용하기

‘여교사’, ‘ㅇㅇ여자고등학교’, ‘그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언어에서는 단어 앞이든, 중간이든, 끝이든 여자 성별을 표기합니다. 그래서 여자 표기가 없으면 그 사람이 남자라는 사실을 자동적으로 알고요.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반복되면서 마침내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모든 언론사가 참고하는 국가기간 통신사인 연합뉴스는 2018년 10월부터 이러한 성별 표기를 하지 않기로 했어요. 여성은 ‘여’로 적지만 남성은 ‘기재하지 않는 방식’이 기본이었던 인물정보 표기 방식이 “여성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남성이 표준’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이란 지적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지요.

언어 외에도 남성이 표준이고 남성이 우선한다는 인식은 우리 일상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대표적이고, 학급의 번호도 그렇지요. 남학생이 1번부터, 여학생이 31번부터 시작하는 반이 여전히 많아요. 이미 2005년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성별을 기준으로 한 출석번호 부여 방식이 “학생들에게 남성이 여성보다 우선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거나, 남녀 간 선후가 있다는 차별 의식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성차별적 관행이다"라고 판단했는데 말이에요. 2018년에 인권위는 남학생에게 앞 번호를 부여하는 방식이 성차별 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각 교육청에 다시 한 번 고지했습니다.

이처럼 남성이 표준이고 여성이 예외, 남성이 우선이고 여성이 부차적이라는 생각을 프랑스의 철학자 시몬느 드 보봐르는 ‘여성은 제2의 성’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했습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이 바로 보봐르가 『제2의 성』이라는 책에서 한 말이에요. 생물학적 성인 ‘섹스’와 사회적 성인 ‘젠더’를 명확히 설명하는 문장이지요.

이 개념과 문장을 접하고 ‘핵사이다’라고 무릎을 치며 감탄하는 십대들도 있겠지만, “내가 제1의 성이라고? 나는 권력을 가진 적도 없고, 여성을 차별한 적도 없다고!”, “내가 왜 제2의 성이야? 나는 여성으로서 만족하고, 차별을 받은 적도 없는데?”라며 의아한 십대들도 더러 있을 거예요. 우리가 성별고정관념이나 젠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이유는 남성은 권력자이자 지배자라고 공격하고, 여성은 피지배자이자 피해자라고 동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별권력관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이해 및 인지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어떻게 스스로 변화하고, 사회를 변화시킬지를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기 위함이랍니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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