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살해 후 자살하고
아내 때려 죽인 남성들
‘아내·자식은 내 소유’
가부장적인 인식 탓
“피해자 입장에선 고문…
가부장적 테러리즘” 지적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2019년 10월 2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국가의 가정폭력 대응 강력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가장에 의한 가족 살해가 잇따르고 있다. 빚에 내몰리거나 가족 내부의 갈등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며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엄연히  ‘살해’라고 분석한다. ‘아내와 자식은 내 소유’라는 가부장적 인식이 배경이라는 전문가 진단이다.

지난 5월 20일 발생한 경기도 의정부 일가족 사망사건은 아버지 A(51)씨와 어머니 B(48)씨, 딸 C(18)씨가 안방에서 동시에 사망한 사건이다.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중학생 아들(15)이 발견해 신고해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 내막이 알려지며 사람들이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은 딸 손등에서 방어흔이 발견됐다는 점이다. 흉기를 막으려고 했다는 얘기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살인”으로 규정하며 “생명권을 선택할 권한은 부모에게 없다”라고 지적했다. 경찰 조사에서 유족들은 딸은 살해하고 아들만 남겨둔 이유에 대해 “집안의 장남인 A씨가 집안의 대가 끊기는 것을 염려해 아들은 남겼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경기 시흥시에서 30대 부부와 아들(4), 딸(2) 등 일가족 4명이 렌터가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모가 5000여만원의 채무를 비관해 자녀들을 살해하고 자살을 선택을 한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서울경찰청 정성국 박사 등이 2015년 발표한 ‘한국의 존속살해와 자식살해 분석’ 논문을 보면 2006년부터 2013년 3월까지 발생한 부모의 자녀살해, 즉 비속살해사건은 모두 230건으로 매년 30~40건 발생했다. 피해자 연령은 9세 이하가 59.1%, 10대가 27.9% 였다. 실제 비속살해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비속살해사건은 일반 살인사건으로 분류돼 별도의 통계가 마련돼 있지 않다.

아내에 대한 폭력도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힌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 주 원인으로 꼽힌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아내를 폭행한 끝에 살해로 이어진 케이스는 오래 전부터 아내를 통제하거나 지속적으로 폭력이 이뤄진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가정폭력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 장기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발생하는데, 피해자에게는 그 과정이 마치 고문과도 같다”면서 “이같은 아내 폭력의 양상은 ‘가부장제 테러리즘’으로 표현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부장적 테러리즘이란, ‘여성을 통제하려는 남성의 가부장적 권리로서 체계적인 폭력 사용 뿐만 아니라 경제적 종속, 위협, 고립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아내를 통제하는 형태’를 뜻한다.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가부장제 하에서 벌어지는 여성 살해를 ‘가부장제 살인(Patriarchal Killing)’으로 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김 연구위원은 교육을 통한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폭력 예방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단순히 윤리적인 문제로 접근하거나 약자에 대한 보호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면서 “차별로서의 폭력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젠더폭력 피해자가 어떤 피해를 입는지 명확히 드러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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