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테크포럼 – 공부의 모든 것]

에듀테크포럼 회원사들이 돌아 가며 재능기부로 기고하는 글입니다. 다양한 사교육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독자들께 도움 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은 여성신문의 공식적인 의견과 무관합니다. 이번 글로써 에듀테크 포럼은 마감합니다. <편집자 주>

<조선왕조실록>의 <졸기>에서 배우는 ‘사람됨’

<조선왕조실록>에는 졸기(卒記)라는 것이 있다. 졸기란 나라의 일을 맡았던 인물이나 왕실 관련 인물이 죽었을 때, 사망 사실과 함께 그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 웹사이트(sillok.history.go.kr)에서 ‘졸기’를 검색하면 2,374건의 한문으로 된 원문 기록이 나온다 (물론 한글번역이 되어 있다). 2천 건이 넘는 인물 데이터가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아는 조선시대 인물들의 졸기를 살펴보면 흥미롭기 그지없다. 당대 사람들이 그 인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황희 정승의 졸기(문종 2년 2월 8일자)를 잠시 보자.

세종이 어느 날 황희를 불러 일을 의논하다가 황희에게 이르기를, “경이 귀양살이하던 곳에 있을 적에 태종께서 일찍이 나에게 이르시기를, ‘황희는 곧 한(漢)나라의 사단(史丹)과 같은 사람이니, 무슨 죄가 있겠는가?’ 하셨다.

사단은 한나라 원제(元帝) 때 재상을 지낸 인물인데, 원제가 후계자를 세우는 데 있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고 올바른 길을 가도록 극력 간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황희는 태종의 최측근이었다. 태종은 정무적 기밀을 황희에게만 공유할 정도로 신임했는데, 양녕에서 충녕으로 세자교체 문제에 있어 황희가 양녕의 편을 들자 어쩔 수 없이 귀양을 보냈다. 그런데 세종 즉위 직후에 귀양 보냈던 황희를 복귀시켜서 세종이 임용하도록 했다. 태종은 황희가 초보 임금인 세종의 국가경영에 꼭 필요한 인재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세종 입장에서는 떨떠름하더라도 꼭 나랏일을 맡기게끔 한 것이다. 재임용된 황희가 그후 20여년 이상 얼마나 훌륭하게 재상의 임무를 수행했는지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다. 황희 사망 후에 나라에서 내린 시호에 대해 졸기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익성(翼成)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니, 생각하고 헤아리는 바가 깊고[深] 멀리 미치는[遠] 것이 익(翼)이고 재상이 되어 종말까지 잘 마친 것이 성(成)이다.

황희 졸기를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전해 알고 있던 ‘좋은 게 좋다’는 식의 황희 이미지는 완전히 오해였다. 황희는 오히려 원칙주의자였고 사려가 깊어 복잡한 나랏일을 원만히 종합하고 예외적인 상황도 잘 처리하는 문제해결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우리가 갈망하는 지도자상의 요건들이 종합된 것 같지 않은가?

 

세종실록 표지부터 내용 ©국사편찬위원회
세종실록 표지부터 내용 ©국사편찬위원회

 

황희만큼 유명한 인물은 아니지만, 황희와 함께 세종시대의 대들보 역할을 했던 재상인 허조의 졸기(세종 21년 12월 28일자)도 매우 흥미로운데, 특히 필자가 개인적으로 감동했던 대목은 이렇다.

낮이나 밤이나 직무에 충실히 하고, 만일 말할 것이 있으면, (자신의) 지위를 벗어나거나 건드릴까 해서 꺼리고 싫어함이 없이 다 진술하여 숨기는 바가 없었으니, 스스로 국가의 일을 자기의 임무로 여겼던 것이다.

성실함과 열정, 도전과 직언, 주인의식 등… 허조의 졸기를 찬찬히 음미해보면, 이 사람은 요즘의 공직자상을 일관되게 실천한 인물이다. 허조 졸기에 따르면, 태종은 당시 인사(人事)를 관장하던 이조의 정5품 직책 맡길 사람을 직접 인사명부에서 찾다가 허조의 이름을 발견하고 “사람을 얻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태종은, 세종이 즉위한 후 상왕으로 있을 때 세종에게 허조를 가리키며 “이가 진실로 재상이다.”라고까지 했다. 이런 인물을 알아보는 안목도 매우 귀중한 일이다. 태종의 안목이 옳았다는 것은, 허조에게 내려진 시호가 입증한다.

시호를 문경(文敬)이라 하였으니, 배우기를 부지런히 하고 묻기를 좋아하는 것을 문(文)이라 하고, 낮이나 밤이나 경계(警戒)하는 것을 경(敬)이라 한다.

졸기에는 훌륭한 인물만이 아니라 비루하고 얄팍한 인물, 거짓과 위선을 일삼는 인물들도 수없이 등장한다. 가는 곳마다 자기 직책을 수행하기는 했지만 ‘사물의 기본적인 큰 줄거리에 어두우며, 기쁨과 노여움을 절제하지 못해서 조사(朝士)들을 업신여겨 욕을 보이므로, 사람들이 좋지 않게 여기었’던 조기(趙琦)(태조4년2월 17일자) 같은 인물도 있고, 왕실 종친으로서 다양한 공직을 거쳤지만 ‘구변이 좋고 아첨을 잘하며, 재산은 부유했으나 다른 재능은 없었으며 젊었을 때부터 술과 음식, 음악과 여자 놀음을 일삼았다’라는 평가밖에 얻지 못한 이교(李皎)(세종28년1월 22일자) 같은 인물도 있다.

필자는 동서고금의 다양한 자료를 리더십교육 콘텐츠 개발에 활용한다. 졸기처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남긴 행적과 사후 평가는 귀중한 교육 소재가 될 수 있지만 아직 제대로 활용된 적이 드물다. 실록 속의 졸기를 보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은 물론 공사구별, 사회인의 태도, 인격의 형성과 일하는 전문역량과의 관계 등 현대에 필요한 문제를 다룰 수 있다. 사람’을 중심으로 통섭되는 인문 콘텐츠의 모범이 바로 ‘실록 속 졸기’에 있다.

 

권혜진

프리미엄 교육콘텐츠 기획사 세종이노베이션 대표. 리더십, 문화, 기초학문 분야 고급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으며 실록학교, 세종의 식탁, 품격경영아카데미(어린이글로벌매너교실) 등을 육성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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