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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전에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 그리도 좋아 보이더니, 이제는 나이 탓인지 친절하고 남을 돕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존경스럽다. 학생들도 그렇다. 비록 공부는 잘하지 못하지만 남을 돕는데 열심인 학생들을 보노라면, 내가 갖지 못한 보물을 가진 사람처럼 부럽게 느껴지고, 나야말로 이들로부터 배우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이런 생각은 얼마 전에 S노인종합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어르신들을 만났을 때 더욱 강해졌다. 봉사자들은 50대 후반에서 70대 후반까지의 연령층으로서 그 자신이 도움을 받을 연령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노인들을 돕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인상적인 사람은 민성희님(66세)이었다. 밝고 명랑한 표정과 소녀처럼 까르르 웃는 그를 ‘할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리라. ‘그녀’는 젊었을 때 은행에 다녔으나 셋이나 되는 아들 뒷바라지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는 아이들 교육과 가사에 전념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들들은 모두 성공적으로 장성하고 결혼도 했다. 그때 그녀는 자기성취와 대리만족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실감해야 했다.

봉사활동, 쇼핑·취미생활 보다 즐거워

개인적 슬픔 치유하고 색다른 경험할 수 있어

“나는 아무 것도 아니구나, 빈 껍데기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자식이 주는 기쁨은 일시적인 것이에요. 지금은 내 인생에서 자식이 차지하는 비중을 100분의 20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녀는 보람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공부도 해보고 취미생활도 해봤다. 하지만 왠지 계속 하기가 힘들었다고. S노인종합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컴퓨터를 배우던 중 봉사활동을 권유받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재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10시부터 5시까지, 바쁜 일이 있을 때에는 6, 7시까지 일한다.

“지금은 뭐랄까… 백화점 드나들던 때와는 대조적인 느낌이에요. 그 때는 물건을 많이 사도 가슴이 허전했는데, 지금은 뭘 안 사도 충만감이 있고 마음이 평온해요. 매일 일하니까 정신무장도 되구요.”

노인들을 안내하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할 때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즐겁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67세에 퇴직한 남편의 생활에 대한 그녀의 평가였다.

“(남편은) 그렇게 오래 일했는데도 퇴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허탈해 합디다. 요즘엔 많이 나아졌어요. 아침마다 같이 집을 나와서 각자 따로 출근하지요. 나는 복지관, 그이는 헬스센터에서 3시간 운동, 영어회화 배우고 취미생활, 점심은 맛있는 곳에 가서 사 드시지요. 그거야말로 자기만 아는 생활이 아닌가요?”

“그래도 여기 와서 보더니 이메일을 보냈더군요. 그 나이에 봉사하는 모습이 아름답구려. 기왕 하는 것이니 책임감 있게 하시오 라고. 그리고 저녁에 가서 집안 청소하려고 했더니 청소 다해놨다고 말합디다.”

하지만 친구들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핀잔만 준다고. 그러면 “너희들하고는 말이 안통해서 말못하겠다” 며 지지 않고 응수한다고 했다.

반면 김영진님(58세)의 얘기는 슬프고도 흐뭇했다. 그녀는 55살 때 아들의 병간호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퇴직했다. 그러나 2년 후 아들이 사망. 약 8개월 정도의 두문불출 기간 후에 성당을 통해 알게 된 S노인종합복지관에 나와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봉사활동 했을 때의 기분은 한마디로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고… 전에는 돈에 대한 욕심이 많았고, 자기 돈 써가면서 봉사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더 열심히 봉사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봉사활동은 그녀의 인생관도 바꾼 듯 했다. “아직 일하는 남편에게도 힘들면 그만두라고 말하지요. 봉사할 일은 많으니 같이 봉사하면서 노후를 보내자고 말합니다.”

체력이 딸려서 1주일에 2번만 복지관에 나오지만, 나머지 날에도 혼자 사는 노인들을 병원으로 모시고 가는 차량봉사활동을 수시로 맡는다고 했다. 봉사활동 외의 여가생활에 대해 묻는 내게 동창이나 전 직장동료를 가끔 만나지만 큰 위안을 받을 수 없으며, 특히 자식자랑 하는 걸 들으면 속상해서 자주 만나고 싶지 않다며 끝내 눈물을 흘렸을 때는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노인들 얘기가 나오자 그녀의 얼굴은 다시 밝아졌다.

“노인들을 돕다 보니까 늙는다는 것과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돼요. 전에는 노인은 답답하고 냄새나고… 싫다는 느낌뿐이었는데 이제는 애정이 생기고. 바로 나 자신을 돕는다는 느낌도 들어요.”

그렇다. 남을 돕는 것은 곧 자신을 돕는 것이다. 남을 돕는 일은 즐겁다. 아니 우리는 즐겁기 때문에 남을 돕는다. 봉사활동은 개인적 슬픔을 치유하게 하고 다른 세상이 있음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남을 돕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돕는 일이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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