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엄마들의 이유 있는 반항”
“나쁜 엄마들의 이유 있는 반항”
  • 현주 기자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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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엄마들, 땅에 발붙이다> 전시회 연 엄마작가 5인방
녹음이 짙어 가는 초여름 대학로에 5명의 나쁜 엄마들이 모였다. 올해 마로니에미술관 공동기획전 선정작으로 뽑힌 <나쁜 엄마들, 땅에 발붙이다>전이 16일까지 열리기 때문이다.

선녀가 나무꾼에게 날개옷을 뺏기고 난 뒤 천상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지상에서 평범하게 살았던 것처럼, 그들도 ‘새끼들’이란 애물단지 때문에 작가로서의 꿈틀거리는 젊은 꿈을 포기하고 주변의 여느 아낙네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이번 전시회 공동작업과 개별작업을 통해 엄마작가로서의 다중적 정체성을 표현한다. 아직도 더 높은 작가세계를 향해 훨훨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날개를 꺾어버린 나무꾼이 그리 밉지만은 않고 지상세계에서 꼭 치열한 투쟁만 한 것 같지는 않다. 자, 지금부터는 나쁜 엄마들이 땅에 발붙이기까지 겪게 된 지상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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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엄마들, 땅에 발붙이다>가 열리고 있는 마로니에 미술관 전시실에서 나쁜 엄마들을 만났다. 좌로부터 오귀원, 백미현, 김미경, 성경화, 윤현옥씨. <사진·유영민>▶

참가자:김미경(엄마경력 10년), 백미현(엄마경력 8년), 성경화(엄마경력 11년), 오귀원(엄마경력 15년), 윤현옥(엄마경력 10년). 참고로 모두 작가 경력이 엄마 경력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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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현 <나쁜 엄마들 옷입히기> 70×110cm 실사출력 철판, 자석밴드, 종이에 페인팅 2003.

:예술 작업하는 사람들은 매일 자유롭게 술만 마시고 삶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하죠? 그거 아닙니다. 거기서 여성작가들은 예외예요.

:우리는 아이들 유치원에 데려다 줘야지 다시 데리고 와야지, 어딜 가나 마음은 혼자 있는 애한테 가 있어요. 그러면 얼굴표정이 잔뜩 찌그러지잖아요. 결국 “아줌마들은 안 돼”이런 소리만 듣는 거예요.

:밖에서 만나는 남자들도 다들 남편들인데 엄마의 역할을 잘 몰라주는 것 같아요. 대개 모든 일들이 술자리에서 인맥이 형성되잖아요. 또 전시나 강의 같은 일도 주어지기 때문에 가정과 아이를 가지고 있는 여성들은 그런 기회부터가 박탈돼요. 다들 능력을 인정받고는 있지만 저도 지금은 강의 한자리 맡기 힘드니까요.

:오히려 “아줌마들은 안 돼”이런 소리를 들을 바에야 그 자리에 참석 안 하는 게 낫죠. 저녁시간 강의가 들어오면 저는 당당하게 말해요. 애를 봐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강의를 할 수 없다구요. 남자들이 육아에서 면제됐을 뿐이지 아이랑 함께 있어주는 게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남편은 달라요. 제 일이 있을 때 아이를 봐줘요. 그게 고마우니까 오늘도 제가 아이를 데리고 나왔잖아요. 남편의 고마움에 보답을 해야한다는 건 있어요.

:유학 때 만난 친구가 한국 간다고 그러니까 “한국에서 성공한 여자 뒤에는 숨은 여자들이 있다”고 혀를 끌끌 차더라구요. 엄마나 여동생에게 애를 맡긴다는 거죠.

:저는 아이가 생기고 난 뒤에 아예 작업 시간이 바뀌었어요. 누가 작가들이 이른 아침부터 작업을 시작한다고 상상이나 하겠어요? 아침 8시 반에 작업을 한다는 거 예전에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데 아침 8시경에 아이를 유아원에 데려다 주고 2시에 애를 찾으러 가야 되니까, 내 아이를 담보로 얻은 시간인데요. 헛되이 보낼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심해요.

:맞아요. 맞아요. 그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야 되니까 점심도 서서 먹는 둥 마는 둥 해요. 완전히 온갖 긴장을 다해서 작업에 몰입하지 않으면 애 볼 면목이 안 생기는 거야.

:그렇지, 알리바이를 마련해 놔야 하거든.

:남편이 도와주는 건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거 그런 게 아니에요. 일이 있을 때 애를 봐주는 것, 우리가 원하는 건 그런 거죠.

:남편들은 남들에게 보이는 거, 뭐 무거운 거 들어다 주는 거 이런 식이에요.

:학교 다닐 때 소조하잖아요. 저는 아예 덩치 큰 건 포기했어요. 작업을 하려면 옮기는 것부터 시작해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되는데 그게 싫으니까 아예 작게 하는 거야. 딱 나만하게 만들었어요. 나 혼자 옮겨서 차 안에 다 들어갈 수 있도록 말이죠.

:여성들의 상황이 다 그래요. 저도 쇼핑백 안에 모든 작품이 다 들어가도록 하잖아요.

:그게 또 에피소드잖아요. 여기 전시 기획하시는 분이 다들 작품을 가지고 만나자고 했는데 그 때 엄청 놀랬대요. “다 오셨어요?” 그 다음엔 “작품은 다 도착했어요?”야. 보니까 싸들고 온 보따리는 1인분 밖에 안 되니까. 아줌마들은 어떻게든 똘똘 말아서 가지고 다니는 노하우가 있어요. 저는 조각이 집에서 안 보이도록 구석구석 숨겨 두잖아요.

:여성의 공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작업을 하게 되는 것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작업 위주로 하게 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2년 전에 개인전 할 때 재봉틀로 했잖아요. 그 때 모토가 ‘여인천하’였어요. 드라마 여인천하를 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뭔가 찾았죠. 낮에는 작업실에서 드릴로 금속을 뚫고 밤에는 집에 와서 재봉틀로 박고 꿰매고… 그 때 인간이 참 흉물스럽게 변했죠.

:반대로 이런 현실이 아주 재미있는 작업 방식을 만들어 주게 돼요.

:새로운 차원의 현실이라는 건 있어요. 저는 만약 독신으로 계속 지냈으면 맨날 뾰족뾰족한 인상만 줬을 텐데 그나마 동정심도 생기고. 모성 본능을 공감한다는 거는 분명히 다른 세계라는 거죠. 결혼해서 아이를 낳지 못했다면 이런 따뜻한 감정을 경험하지 못했을 거예요.

:작가이면서 동시에 엄마이기 때문에 또 거기서 작품이 나오는 거예요. 어느 하나를 분리해서 나인가를 따지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 아닐까 싶어요. 일부만 발현될 뿐이지 총체적인 나를 발현하지 못하니까요.

:그래요. 주어진 현실과 타협하면서 만들어지고 인간이나 작업도 성숙해 지는 것 같아요. 저도 10년이란 세월에서 끊임없이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달라졌죠. 이렇게 되면 긍정적으로 넘어오게 되는 거죠?

:긍정적? 사실은 나쁜 엄마지만 착한 엄마가 되려고 하는 거죠.

현주 기자soo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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