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 없는 의상엔 환호
여혐 가사에는 질책…
아이돌·팬덤 문화 바뀌는데
콘텐츠 만드는 제작진도
함께 성인지 감수성 높여야

그룹 ‘AOA’의 미니 6집 ‘뉴 문’(NEW MOON) 스틸컷. ⓒFNC 엔터테인먼트
그룹 ‘AOA’의 미니 6집 ‘뉴 문’(NEW MOON) 스틸컷. ⓒFNC 엔터테인먼트

아이돌과 팬덤이 페미니즘에 눈을 뜨고 있다. 성 중립적으로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발맞춰 여성 아이돌은 노출 있는 무대 의상 대신 긴 바지를 입고, 남성 아이돌은 여성 혐오적인 노래 가사를 바꾸고 있다. 그러나 정작 아이돌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진과 아이돌 산업 환경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여전하다. 

걸그룹들은 계속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걸그룹 ‘AOA’는 “AOA의 재발견”이라는 평을 받으며 스스로 변화했다. 지난달 26일 AOA는 미니 6집 ‘뉴 문’(NEW MOON)을 발매해 누군가 구해주길 기다리기보다 직접 달을 사냥해 자유를 찾는 ‘자유 의지’ 메시지를 담았다. 지난달에는 Mnet 예능 프로그램인 ‘퀸덤’에 출연해 그룹 리더 지민은 무대에서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라는 랩을 구사해 여성을 꽃으로 성적 대상화하는 통념을 꼬집었다. 또한 지민이 직접 기획한 무대 의상과 콘셉트도 주목받았다. 이들은 기존의 몸 윤곽을 드러내는 노출 의상이 아닌 정장을 입고, 미소와 애교 대신 강렬한 눈빛으로 무대를 구성했다. 

걸그룹 ‘우주소녀’도 지난달 미니앨범 ‘애즈 유 위시’(As You Wish)를 발표하고 타이틀곡 ‘이루리’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공개된 뮤직비디오에서 이들의 메인 의상은 짧은 치마가 아닌 긴 바지였다. 그룹 리더 엑시는 의상에 대해 “활동 처음으로 단체 긴 바지 의상”이라며 “춤출 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좋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항상 노출이 심한 옷으로 컴백을 해야 했던 여자 아이돌의 숙명에서 벗어난 옷”이라며 “슈트와 긴 바지를 입은 모습이 멋지다”라고 우주소녀의 의상 콘셉트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그룹 ‘우주소녀’의 미니앨범 ‘애즈 유 위시’(As You Wish) 스틸컷. ⓒ스타쉽엔터테인먼트
그룹 ‘우주소녀’의 미니앨범 ‘애즈 유 위시’(As You Wish) 스틸컷.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아이돌뿐 아니라 팬덤 문화도 변화했다. 지난 10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보이그룹 ‘몬스타엑스’ 멤버들의 팬 사인회에서의 ‘미투(#MeToo) 희화화’ 영상이 공개되면서 논란됐다. 이에 한 몬스타엑스 팬은 SNS를 통해 해당 문제를 공론화시켜 여성 혐오 문제를 아이돌 팬덤 내부에서 끌어올렸다. 이후 다수의 팬들까지 몬스타엑스 멤버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보이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팬덤인 아미도 이들이 여성 혐오적 가사 논란에 휩싸였을 때 앞장서서 기획사에 시정을 요구했다. 이후 빅히트 소속사는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여성학 교수에게 가사를 첨삭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논문 ‘남성 아이돌 그룹의 여성 혐오 논란과 여성 팬덤의 분열’을 집필한 고혜리·양은경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저자는 남성 아이돌 그룹의 여성 혐오 논란을 둘러싼 팬덤의 현상에 대해 주목했다. 이들은 논문에서 BTS의 여성 혐오 논란을 예시로 들며 “BTS 팬덤으로 대표되는 여성들이 팬덤 외부의 문제 제기로 인해 여성 혐오에 대한 자신의 인식에 대해 성찰한 것, 그리고 스타에 대한 비난을 원천 봉쇄하고 비판 자체를 터부시하던 기존 팬덤의 성격에서 벗어난 것은 BTS 여성 혐오 논란에서 얻어낸 긍정적 의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작진들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여전하다. 지난 2016년 7월 ‘프로듀스x101’을 제작한 한동철 PD는 스타일매거진 ‘하이컷’과의 인터뷰에서 “여자판으로 먼저 한 건,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남자들에게 건전한 야동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웃음)”라며 “출연자들을 보면 내 여동생 같고 조카 같아도 귀엽잖아? 그런 류의 야동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주장했다. 여동생과 조카 같은 존재를 야동으로 소비한다는 것은 소아성애적 발언으로 당시 거센 비난을 받았다.

보이그룹 위너의 멤버 송민호의 솔로곡 '아낙네' 뮤직비디오 장면.
보이그룹 위너 멤버 송민호의 솔로 앨범 타이틀곡 '아낙네' 뮤직비디오 장면.

2017년 Mnet 예능 프로그램인 ‘아이돌학교’도 걸그룹을 육성하는 아이돌 전문 교육기관이라는 콘셉트로 미성년자 연습생들에게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추는 방법이나 귀여운 표정 짓는 노하우 등을 알려줬다. 또한 춤을 추는 출연진들의 옷에 물을 뿌려 노골적으로 몸의 윤곽이 드러나도록 뮤직비디오를 찍게 하는 장면도 여과 없이 방영됐다. 

특히 힙합 보이그룹 뮤직비디오에서는 노출이 심한 여성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노출 없는 의상의 남성 아티스트의 의상 콘셉트는 여러 차례 있었다. 보이그룹 ‘빅스’ 멤버 라비도 지난해 발매한 솔로곡 ‘Bomb’ 뮤직비디오에서 여성들의 노출 수위가 높은 장면을 찍었지만 “여성을 상품화했다”는 비판을 받아 결국 사과문과 함께 해당 장면을 삭제했다. 이는 미국 힙합 문화에서 전승된 콘셉트로, 돈만 보고 남자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을 비난하는 일명 ‘골드 디거’(Gold digger) 서사를 국내 제작진들이 그대로 차용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아이돌 문화의 변동은 시장 추세에 유독 영향을 받는다는 의견도 있다. 황진미 문화평론가는 “퀸덤에 출연한 AOA의 경우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한 주체적인 모습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이들이 계속 정장을 입을 것이라는 정확한 방향성은 없다. 시장의 반응이 어떠냐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측면”이라면서 “팬들이 무대마다 적극적인 피드백을 해야 한다. 그래야 시장의 판도를 팬들이 견인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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