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사상검증’에
기업의 채용 성차별까지
‘취준 페미’에게 좁은 취업문

국립국어원은 페미니스트에 대해 ‘①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②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여성신문
국립국어원은 페미니스트에 대해 ‘① 페미니즘을 따르거나 주장하는 사람 ② 여자에게 친절한 남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여성신문

 

“기사에 들어간 제 이름과 사진 지워주실 수 있나요?”

신문 마감이 한창이던 지난 연말 편집국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여성 A씨는 기사 제목을 읊으며 거기에 실린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지워줄 수 있느냐고 조심스레 요청했다. 간혹 과거 기사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해달라는 연락이 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라고 여겼다. 별 일 아니라고 여기고 해당 기사를 열었을 때 가슴이 ‘쿵’하고 내려 앉았다.

기사는 20대 여성으로서 한국 사회에 바라는 점을 묻는 내용이었다. 대학생인 A씨는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되는 세상을 꿈꾼다”고 답했다. 문제 있는 답변은 아니었지만 그가 지워달라고 하는 이유는 짐작이 갔다. A씨에게 기사 삭제를 요청하는 이유를 묻자, 돌아오는 답변은 예상대로였다.

“포털에 제 이름을 검색하면 이 기사가 바로 뜨더라고요. 지금 취업 준비 중인데 혹시 면접관이 볼까봐 지우고 싶어요.”

페미니스트라는 점이 취업에 영향을 줄까봐 삭제를 요청한 것이다. 여성 이슈에 목소리를 내고 페미니스트라고 밝히던 A씨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현실의 벽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기사를 삭제해달라는 A씨의 요청은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듯 했다.

최근 게임업계에서 이른바 ‘페미니즘 사상 검증’이 확인됐다. 한 온라인 게임 제작업체는 자사의 일러스트 작업을 한 작가가 3년 전 페미니즘 지지 글을 썼다는 이유로 사용 중이던 일러스트 전체를 폐기했다. 이미 3년 전에도 넥슨의 게임 ‘클로저스’ 제작에 참여한 여성 성우가 트위터에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인증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교체돼 논란이 일었다.이후에도 젠더 이슈 관련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리트윗’(RT)했다는 이유로, 여성단체 계정을 팔로잉했다는 이유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조롱을 당하거나 피해를 보는 사례가 드러났다.

게임업계 뿐만이 아니다. 채용 면접 때 ‘사상 검증’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히 들려온다. 면접관이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직접적으로 묻거나, 여성 응시자에게만 젠더 이슈 관련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아르바이트 면접에서 “여성인권에 관심있다”고 하자, 면접관이 “그런 사람은 따지기 좋아하지 않느냐, 그런 상황이 와도 그냥 입 다물라”라고 말을 들어야 했던 여성도 있었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 ‘취준 페미’라는 말이 번졌다. 취업 준비를 3개월만 해보면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말이다. 한 공기업 채용시험에서 1위였던 여성 응시자는 점수 조작으로 탈락해야 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성별 때문에 채용 문턱에서 번번히 좌절하는 여성들은 이제 페미니즘을 언급했다가 잘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까지 느끼고 있다. 여성에게 유독 좁은 취업문, 세계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격차, 경력단절과 유리천장까지. 학교를 떠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 여성들에게 한국은 그야말로 정글이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