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 전위예술의 역사이자 산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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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4(엉덩이), 1966

레논의 표현대로라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예술가”인 오노의 작품세계가 본격적으로 재평가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이다. 미국과 일본, 영국을 오가며 벌였던 오노의 활발한 작품 활동은 퍼포먼스, 개념미술, 설치미술, 실험영화와 전위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것으로, 국제적 전위예술운동인 플럭서스(Fluxus)의 맥락 안에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플럭서스는 60년대 초 마치우나스(G. Maciunas)를 중심으로 한국의 백남준을 포함한 다국적 예술가들로 결성된 미술계의 아웃사이더였다. 당시 오노는 이른바 머리 속에서 만들어지는 관객참여용 개념미술인 지시문 회화(Instruction Painting)를 선보였다.

한 예로 <연기 회화>는 다음과 같다. “담배를 가지고 캔버스나 완성된 그림에 불을 붙이시오. 연기가 움직이는 것을 보시오. 캔버스나 그림 전체가 타 버리면 회화는 완성됩니다.” 관객과의 소통과 더불어 오노의 퍼포먼스 작업은 여성의 신체에 대한 시각적 질의이다. 이번 전시의 <자르기>는 관객들이 가위로 오노의 옷을 잘라내는 행위로, 가학증과 자해성, 폭력성과 피해의식 등의 해석과 더불어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여성, 그리고 이를 보는 남성의 시각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평을 망라한다. 빼놓을 수 없는 레논과의 첫 만남은 66년 런던의 개인전에서였다. 오노의 <못박기 회화>에 대해 레논은 상상의 못을 박겠다고 제안했다.

오노는 “똑같은 게임을 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이를 회상한다. 69년 결혼 이후 이들의 공동작업은 반전운동을 중심으로 한 언론 이벤트로 확대된다. 신혼여행의 일환으로 벌인 <평화를 위한 침대시위>나 <전쟁은 끝납니다!> 캠페인은 월남전이라는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오노 특유의 익살을 담고 있다. 이런 유희적 측면은 이번 전시의 <경이 Amaze>에서도 보인다. 유리로 된 미로를 따라 구조물의 중앙부에 도달하면 관객은 양변기를 발견하게 된다.

대중적 스타였던 레논의 명성이 오노의 작가로서의 입지를 가리워 왔다면, 한편으로 레논이라는 한 인간이 그녀와 주고받았던 영향은 오노의 작품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오노의 뒤늦은 재평가를 두고 항간에는 정상급의 큐레이터들을 대동한 국제적 대형미술관 순회 전시가 유명인의 세몰이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국제적 아방가르드의 전성기인 60년대에 미국과 유럽, 일본을 오가며 행했던 오노의 작업들이 앞으로 작가의 행보와 함께 사회적, 문화적, 미술사적 측면에서 더욱 정치한 비평적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노의 작품은 전위예술의 역사이자 우리시대 미술의 흐름과 함께 그 의미의 층을 더해가는 삶의 예술이다. 그것은 삶의 무게에 눌리지 않으려는 자와 그것을 극복하여 밟고 일어선 사람들이 외치는 ‘Yes’의 메시지이자 긍정의 힘인 것이다.

이지은/ 미술사가, 서울대 강사

음악인, 록에 페미니즘

오노 요코의 예술세계는 두 단어 ‘평화’와 ‘여권’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러나 평화의 반대개념인 전쟁이나 여성의 권리는 억압상황을 공유하므로 두 키워드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33년 일본의 부유한 은행가의 딸로 태어난 오노 요코가 왜곡된 세상에 대한 분노로 예술적 삶을 달려온 계기는 어릴 적 몰래 가정부의 방에 들어가, 내동댕이쳐진 ‘어린 미혼모’에 대한 가정부들의 얘기를 들으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일그러진 세상을 혁파하고 평화를 정착하려는 꿈을 키웠으며 전위적 설치미술과 일련의 퍼포먼스와 음악으로 길을 정했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66년 비틀스의 프론트맨 존 레논과의 운명적 조우로 서방세계에 존재를 알렸다. “난 예술적 지향을 공유한 여성을 찾고 있었는데, 오노 요코가 딱 그런 여자였다”는 레논의 고백처럼 오노와 레논은 만난 바로 직후부터 남녀 커플 이상의 ‘예술적, 이념적 동지’로서 짝을 이뤄, 지향을 실천했다. 비틀스 말기 시절 둘이 벌인 ‘침대시위’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존 레논의 음악은 오노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화의 찬가인 레논의 명곡 <이매진(Imagine)>은 오노의 시 <그레이프푸르트>에 영감을 받은 것이며, <여성은 세계의 노예(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는 평소 짓눌린 여권(女權)의 회복을 주창해온 오노의 메시지를 레논이 대신해 전한 노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때문에 한 평론가는 “비틀스 해산 후 존 레논의 음악 메시지와 행적은 전적으로 아내 오노의 영향”으로 평하기도 했다.

오노는 70년대 초반 서방세계에 불어 닥친 페미니즘 운동을 예술분야에서 점화시킨 중요한 인물로 기록된다. 당시 여성해방운동(Woman Lib) 진영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지금도 그의 아방가르드 예술의 많은 테마 역시 그것과 관련을 맺는다.

음악에 있어서도 그의 발자취는 컸다. 존 레논과의 합작인 69년 <투 버진스>와 자신의 솔로앨범인 70년 <플라스틱 오노 밴드> 등에서 오노는 진보적인 사상은 물론 가늘고 주술적인 독특한 음색을 들려주었다. 애초 대중의 반감으로 평가 절하된 음악적인 부분도 지금은 “오늘날 록에 페미니즘 메시지를 정착시킨 인물은 오노 요코”라는 말이 나올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오노에 대한 가장 큰 일반의 오해는 그가 비틀스를 해산시킨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사실이다. 비틀스 후반기에 존 레논은 이미 그룹에 대한 소속감을 상당부분 상실한 상황이었으나 비틀스라는 거대 존재에 의해 그것을 표면화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오노 요코를 만나면서 그가 비틀스로부터 오노로 표현의 주체를 옮겼다는 것이 온당한 평가가 될 것이다. 존은 생전에 “태어났노라, 살았노라, 요코를 만났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비틀스 해산의 원인은 존이었으면 몰라도 오노였다고는 할 수 없다.

임진모/ 음악평론가

영화, 여성의 해방에 대해 말 걸기

공식적으로 집계된 바에 따르면 오노 요코는 지금까지 총 16편의 영화를 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 같은 산술적 수치는 중요하지 않으리라. 오노 요코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영화’라는 독자적인 영역은 작업 당시 사용된 물질이 연속 촬영된 필름film이라는 것 이상의 큰 의미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오노 요코의 영화 작업’은 오브제, 지시문, 퍼포먼스, 이벤트 및 해프닝, 음악, 시 등 전방위에 걸쳐 수행된 그의 작업 실천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제대로 읽혀지거나 혹은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매치 Match>란 필름은 <불켜기 Lighting Piece>란 지시문/퍼포먼스와의 관계 속에서, <자르기 Cut Piece>는 동명의 퍼포먼스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날기 Fly>라는 영화는 지시문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일 “오노 요코의 13개의 영화 각본”, 그리고 동명의 오브제 작품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레논과의 공동작업인 <승천Apotheosis>(이번 전시에는 소개되지 않았다)은, 최초의 비디오 설치 작업의 하나로 꼽히는 하늘TV, <하늘을 보기 위한 회화 I, Ⅱ> <하늘을 위한 회화> <하늘 자판기>와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오노의 작품에서 반복 등장하는 ‘하늘’의 의미적 관련망 속에서 제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날기>는 오노 요코의 필름 작업 중에서 가장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적 관점에 있어서도 가장 암시가 풍부한 작품이다. 카메라는 누워있는 벌거벗은 여체 위에서 움직이는 파리를 집요하게 포착한다. 파리는 여자의 이곳 저곳을 이동하는데 음부와 체모, 그리고 유두 위까지 올라선다. 카메라가 파리를 따라 움직일 때 여성의 나체는 그 배경으로서 추상화된 형태로 등장하는데 마치 죽어 있는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파리의 움직임과 겹쳐지는 소리인데 많은 부분 이 필름에 유머러스함을 부여하는 것으로서 오노 요코가 직접 육성으로 넣은 것이다.

이 작품의 사운드와 이미지의 병치에 있어서 흥미로운 점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 추상화된 여성의 나체가 그 어떤 관음증적 대상이 되거나 에로틱한 느낌을 자아내지 않는 데 반해서 파리의 움직임과 결부된 소리/육성은 많은 부분 성적인 느낌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꼼지락 조차 않는 육체가 오노 요코의 옷 자르기 퍼포먼스인 <자르기>에서의 여성 육체를 상호텍스트적으로 연결되면서 어떤 사회적으로 “복종과 부동을 강요받으며” 침해되는 여성의 육체/상태를 환기시킨다면, 그 육체를 끝도 없이 탐험하면서 어떤 면에서는 그 육체를 시체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처럼 보이는 파리는 탐욕스런 욕망으로 여성의 육체를 침식시키고 부패시키는 가부장적인 사회적 억압에 대한 하나의 은유처럼 보인다.

이에 비해서 오노 요코 자신이 브래지어를 벗는 짧은 순간을 고속 촬영한 <자유 Freedom>는 훨씬 더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젠더화된 방식으로 ‘여성의 해방’에 대해 말 걸고 있는 작품이랄 수 있다. <자유>와 <자르기>, 그리고 <날기>. 이 짧은 필름들을 이어서 하나의 트라이앵글을 만들고 보면 오늘날 선구적인 페미니즘적 아티스트로서 재평가 받고 있는 오노 요코의 혁신적인 성격이 보다 분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권은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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