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지를 입고 춤추는 미얀마 농촌의 여인들. ©조용경
롱지를 입고 춤추는 미얀마 농촌의 여인들. ©조용경

 

여성들의 ‘롱지’에는 흘러내리거나 매듭이 풀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제일 윗부분에 폭이 10cm 쯤 되는 ‘아뗏신’(Ahtet Sin)이라는 짙은 색 띠를 덧대서 롱지를 단단히 잡아줄 수 있도록 한다. 가끔 공중화장실 같은 데서 사람들이 롱지를 아래쪽에서부터 말아 올리고 볼 일을 보는 모습을 지켜 보다가, 이 사람들은 ‘롱지 아래에 속옷을 입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러나 차마 그런 질문을 하기가 마땅치 않았는데, 한번은 미얀마 농업관개부 고위인사의 초대를 받아 저녁 식사를 하는 기회가 생겼다. 음식도 푸짐해서 포식도 했고, 술도 여러 잔 주고받은 뒤끝이라 그가 입고 있는 롱지를 가리키며 “그렇게 입고 다니면 불편하지 않은가?”하고 물어 보았다. 그런데 뜻밖에 “롱지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옷”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궤 주 지역에서 롱지를 입고 자전거 타는 남성. ©조용경
마궤 주 지역에서 롱지를 입고 자전거 타는 남성. ©조용경

 

미얀마는 연중 무덥고 습기가 많은 나라인 데, 롱지는 바람이 잘 통해서 입으면 양복처럼 피부에 달라 붙지도 않고 훨씬 시원하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또 롱지는 양복에 비해 만드는 방법이 아주 간단해서 가격이 저렴한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무엇보다 롱지는 프리 사이즈(Free Size) 이기 때문에 나처럼 배가 많이 나온 사람도 옷 매무새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서 내친 김에 “남자든 여자든 롱지를 입을 때 속옷을 입는가?” 하고 속에 감춰 두었던 가장 궁금한 사항을 꺼내 들었다. 그는 내 속셈을 알았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예전에는 거의가 속옷을 입지 않았는데, 요즘은 대체로 속옷을 입는 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육체노동을 하거나 농촌에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속옷을 안 입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걸!”이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농촌 마을들을 돌아다녀 보니 유난히 어린아이들이 많던데, 그 이유가 롱지 때문은 아닐까? 아무데서나 롱지를 벗어 바닥에 깔고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 생산성이 높아지는 건 아닐까?”하고 약간은 짓궂은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다. 

그는 한바탕 파안대소를 한 다음 “미얀마에는 워낙 뱀이 많은데, 뱀들도 굴 속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무데서나 롱지를 펼쳐 놓고 사랑을 나누다가는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해학적으로 응수했다.

그 다음으로 떠오른 의문의 하나는 ‘남자들이 롱지를 입고 일을 볼 때는 어떤 자세를 취할까’ 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급한 일이 생겨서, 양곤에서 렌터카를 빌어 타고 약 300km떨어진 수도 네피도로 급히 가게 됐다. 도중에 생리현상이 급해져서 운전기사에게 부탁하여 널찍한 고속 도로 갓길에다 차를 세우고 도로 옆의 풀섶에 서서 해우(解憂)를 했다. 그런데 렌트카의 기사가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더니 롱지를 밑에서부터 돌돌 말아 올린 다음, 수로를 파놓은 곳에 우아한(?) 자세로 주저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이 아닌가. 차가 출발하기 전에 기사에게, “그런 자세로 풀섶에서 일을 보다가 잘못하면 뱀에게 중요한 부분을 물리면 어떻게 하나?” 라고 얘기를 건넸다. 그 친구는 한참 낄낄거리더니 “나는 소변줄기가 강하고 냄새도 지독해서 뱀이 도망을 간다” 고 대답했다. 

내친 김에 “지금 롱지 아래에 속옷을 입고 있는가?” 하고 물으니 그는 망설임없이 “No!”라고 대답을 했다. 확실히 롱지는 미얀마 남자들에게는 편리한 의상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 ‘허리띠를 졸라매자’라는 구호가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시기, 그리고 남 부럽지 않게 살아보기 위해 덜 쓰고, 덜 먹고, 모든 것을 절약하는 것이 미덕이던 시대의 구호였다. 그렇게 긴 세월 다음 세대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맨’ 덕분에 최악의 가난에서 벗어나 이만큼 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 온 탓에 물질적으로는 분명 예전에 비해 풍요해진 것 같은데 그로 인해 사람들의 얼굴에서 푸근한 미소가 사라지고, 마음의 여유를 잃게 되고, 늘 바쁘게 서두르기만 하는 심성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아닐까?

양곤 시내의 백화점에서 파는 최고급 롱지.
양곤 시내의 백화점에서 파는 최고급 롱지.

 

미얀마는 참으로 가난한 나라인데도 사람들은 항상 푸근해 보인다. 사람들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는 일이 없어 보인다. 걸음걸이에도 늘 여유가 넘친다. 미얀마을 오래 다니면서 늘 그들의 여유, 그들의 미소가 불가사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허리띠를 졸라 맬 필요가 없는 롱지’ 문화와도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번은 어느 작은 도시의 시장에서 롱지를 파는 가게가 있기에 들어 가서 가격을 물어 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가격은 저렴한 편이어서 3000쨧(약 2400원) 짜리에서부터 2만쨧 짜리까지 다양한 제품이 있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중에 들어 본 바로는 롱지는 천의 종류나 품질, 판매 장소, 혹은 누가 만든 것인가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실크로 만든 고급제품은 대도시 백화점에서 십만 쨔트 이상의 가격으로 팔리기도 한다고 했다. 또 고관들이나 부유층 부인들처럼 지위나 돈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유명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하고 수를 놓은 제품을 맞춰서 입는데, 그런 경우 가격은 당사자들만 알 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우리를 안내했던 그 지역의 공무원이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푸른색 바탕에 흰색의 체크무늬가 있는,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 롱지 한 벌을 선물하는 게 아닌가? 그 친구는 “다음 번에 우리 마을에 다시 올 때는 꼭 이걸 입고 오기 바란다.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을 더욱 좋아하게 될 것이다” 라고 당부를 했다. 당시 그 마을에서 3일을 머물렀는데, 즉석 인화기를 가지고 가서 아이들 사진을 찍어서 수십 장을 뽑아 주는 바람에 내 인기가 하늘을 찌를 뻔 했었다.

기왕에 그 마을과 연관을 맺고 일을 하는 이상, 그들의 전통복장을 입고 방문을 한다면 당연히 더 친근감을 느끼게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다음 번에 올 때는 꼭 이 롱지를 입고 오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그 이후로 그 일에서 손을 떼는 바람에 아직 방문을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미얀마 역시 개방화, 세계화라는 도도한 물결을 피할 수는 없는 상황인지라, 요즈음은 특히 대도시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청바지나 미니스커트가 유행을 타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역사성이나 편의성의 양면에서, 미얀마에서의 롱지 문화는 우리 나라에서 한복 문화가 퇴조한 것처럼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다가오는 12월 초에는 2013년에 처음 만난 이래로 마치 아들처럼 나를 도와주고 있는 마이쪼쪼(My Kyaw Kyaw) 군이 양곤에서 결혼식을 할 예정이다. 그 날은 나도 참석해 축하를 해주기로 했는데, 기왕이면 화려한 롱지를 입고 참석하면 어떨까 고민 중이다. 나의 젊은 미얀마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 줄 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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