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차별 소송 증가에도 제도 운영은 미미

간접차별에 대한 관심과 관련 소송이 늘고 있는 가운데 간접차별의 개념과 구제 방법에 관한 열띤 논의가 펼쳐졌다. 지난 3일 여성단체협의회 주최로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고용상의 간접차별,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할 것인가’ 토론회가 주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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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여성단체협의회 주최로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고용상의 간접차별, 어떻게 판단하고 대응할 것인가’ 토론회. 왼쪽부터 노동부 이재흥 여성고용과장, 이주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여협 김영희 근로여성위원회 위원장(사회).

노동조합 내 여성지위 강화로 구제·예방 높여야

노동부 여성차별사례 점검 하반기 지침 마련 밝혀

여협 오세화 부회장은 “남녀평등고용에 대한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지만 피해여성을 구제할 방법이 없다면 제도는 무용지물”이라며 “지난해 대법원에서 농협 사내부부 해고 건이 패소판결을 받는 등 고용 상 간접차별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4/5’ 법칙이 간접차별 기준

‘고용 상 간접차별’이란 채용 또는 승진 등 근로 조건을 동일하게 적용하더라도 남성 또는 여성이 다른 한 성(性)에 비해 현저히 적고 그로 인해 특정 성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말한다.

한 성이 ‘현저히 적은 기준’에 대해 이주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상 ‘4/5법칙’으로 80% 미만인 경우 통계적 차이를 인정해 고소의 근거가 된다”고 밝혔다.

또 미국의 사례를 들어 “차별의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간접차별 성립에는 문제가 없다”며 “고용주가 기준이 정당하다고 입증할 수 없는 경우에도 차별이 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우리나라 여성들이 직무 기회의 차별이란 유리벽과 승진 차별의 유리천장에 부딪히는 것은 남성 고위관리자의 차별적 의식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명확한 평가지표 마련을 강조했다.

“농협 사내부부 해고는 퇴직의 대상이 주로 부인이 됐다는 점에서 간접차별의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지적한 이 위원은 “우리나라에서도 주요 간접차별 사례에 대해 영향력 있는 결정이 내려질 필요가 있다”는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또 입사지원서, 평가지표에 대한 모니터링, 채용·승진·퇴직 등에 관한 통계자료 확보, 성·연령·장애 등 차별의 제 차원을 포함하는 통합적 간접차별의 지침 마련 등을 강조했다.

선택의 폭보다 실효성이 중요

‘고용상의 차별 해소를 위한 구제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주제로 발표한 윤자야 공인노무사는 공식, 비공식적인 모든 구제제도의 운용실태와 개선점을 제시해 참석자들의 높은 호응을 낳았다.

발표에 앞서 윤 노무사는 “우리 사회 고용상의 성차별 문제를 제기한 1983년 전화교환원 정년차별 사건(일명 김영희 사건) 이후 20년이 지났다”며 “구제제도는 다양해졌지만 효율적인가 하는 면에서는 회의적”이라는 평을 밝혔다.

노사자율 구제제도, 여성단체 고용평등상담실부터 지방노동관서의 근로감독관, 지방노동청의 고용평등위원회, 노동위원회, 여성부의 차별개선위원회 등 행정적 구제제도와 검찰, 법원, 헌법재판소, 국가인권위원회 등 사법적 구제제도에 이르기까지 제도는 다양하지만 실제 운영과 적용은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윤 노무사는 지나치게 다양한 구제제도에 대해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은 좋지만 반비례해서 간접차별 사안에 소홀해 질 수 있다”며 제도 간 업무 조정을 제안했다. 또 구제절차 담당자의 남성편중현상을 해소하고 성인지도, 전문성을 제고해야 구제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 노무사는 가장 강력한 구제와 예방 기능을 할 수 있는 주최로 노동조합을 꼽았다. 한계로 노동조합 내 여성 지위의 주변화를 지적하고 단체교섭시 여성조합원 참여, 양성평등한 조합원 교육 등 대안을 제시했다.

여성단체에 대해서는 그간 제도 확충 노력을 인정하는 한편 전문가 집단의 도움이 제도적으로 갖춰져야 하며 소송 지원을 위한 경제적 여건으로 기금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노동부 이재흥 여성고용과장은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 참가율이 5~10%에 불과하고 남성에 비해 고용과 임금의 격차가 평균 65%를 나타내 상당부분 차별적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사례를 점검해 하반기 관련 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과장은 “일차적으로 사업주가 자율 점검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활용하고 이후 지침을 적용할 것”이라며 “이와 함께 구제제도가 활성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노동부 간접차별 지침 마련할 터

여성부 최창행 차별개선기획담당관 역시 행정 구제제도의 법원과 연계성 보완, 지역별 남녀차별신고센터 개설, 조사 인력 확충을 통한 처리 기간 단축 등 구제제도의 활성화 방안을 제시했다.

최 담당관은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에는 개별적인 신청이 없어도 중대한 남녀차별사항이라고 판단될 경우 직권으로 필요한 조사를 할 수 있는 직권조사권한 규정이 있다”며 “올해 4개 과제에 대해 직권 조사 중으로 앞으로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한국노총 이인덕 여성부장이 노동조합 내 여성의 저대표성을 지적하고 익명 신청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수연 변호사는 구제제도 개정방향으로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성차별 금지의 의무주체를 ‘사업주’에서 ‘사용자’와 관계기관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사용자는 사업주를 위해 일하는 관리직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정 변호사는 더불어 “간접차별 해결은 적극적인 사회적 교육, 문화의 변화와 연관돼 있다”며 “제도의 변화와 함께 의식 변화를 주도할 만한 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특히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패소한 농협 사내부부 해고 당사자들이 참석, 해고 당시와 현재의 절박한 심정을 토로해 참석자들로 하여금 구제제도 개선과 실효성 확보의 필요성을 절감케 했다.

김선희 기자sonag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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