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선배들과 팀을 짜서 여름농촌활동(농활)을 하고 있는 후배들 응원 차 1박2일로 경북봉화에 다녀왔다.

이번 농활은 내가 그 동안 다녀온 농활에서 볼 수 없었던 기조가 눈에 띄었다. 바로 ‘성폭력 없는 농활을 만들자’다. 지난 농활에서 한 농민이 여학생을 성희롱 한 사건이 발생해 학생단체가 농민회에 항의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마을에 계신 농민 어르신들과의 관계와 농활대 안의 성폭력을 막자는 취지에서 삽입된 기조였다.

대학사회도 가부장의식에 젖어

나는 혹시나 성폭력이 학습이나 토론으로 진행되지는 않을까 기대했으나 생활수칙 정도라는 말을 듣고는 아쉬웠다. 내가 너무 많은걸 기대한 것일까.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가 “농활하고 여성문제가 무슨 상관이 있냐. 농활 가서 여성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게 좀 안 어울리지 않냐!”고 따진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농활이든 뭐든 의식이 깨어있다는 학생들이 조직생활을 하는 데도 가부장 의식이 알게 모르게 뿌리 깊이 박혀있는데 왜 소용이 없겠는가. 조직이 문제가 아니라 남성 개개인의 의식문제며 정책 이전에 기본 생활상의 문제인 것을.

실제로 농활을 비롯한 여러 단체 생활 속에는 여성 차별 사고가 은연중에 자리잡고 있어서 기성사회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선배들은 내가 ‘여자라서’ 대자보 글씨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연습을 시키곤 했다. 축제 때 주점에 으레 여자 후배들이 주방을 담당했으며 내가 본 여자 선배들 모습도 한결같이 식단 짜고, 장 보는 일이었다. 2학년 때 간 농활에서는 생활주체 언니가 부엌 옆 창고에서 잠이 들었다가 새벽 밥할 시간에 일어나서는 초라한 자신이 서글프다고 우는 모습을 보고 함께 손잡고 운 적도 있다.

성폭력은 흔히 떠올리는 성적폭력 뿐만 아니라 말·정신·물리적 가해도 모두 포함된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모든 고통이 성폭력임을 남성들, 심지어 여성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 남자 친구와도 성폭력 범위를 얘기해 봤는데 토론이 진행될수록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오해하고 있거나 잘 모르는 사람은 토론으로 하나씩 짚어가며 이해시킬 수 있다.

밥, 남자가 하면 안되나?

이번 농활에 가서 생활주체 소개를 받을 때 난 그 주체가 남자 후배이기를 속으로 바라고 있었다. 남자후배가 벌떡 일어나 “제가 밥 하나 끝내주게 잘 하거든요!”하고 말하길 상상했다. 그러나 여전히 여자 후배였고 마을대장은 남자 후배였다. 마을대장이 항상 남자라는 사실은 접어두더라도 생활주체가 항상 여자라는 사실은 정말 불합리하지 않은가.

내가 3학년 때(당시 부회장이었고 또 여자였으므로 농활준비 단계에서 생활주체를 맡는 일은 당연했다.) 생활주체를 맡았는데 ‘이것은 불합리하다’ 란 마음 속 불만에 짜증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밥 할 줄 모르고 국 하나 제대로 못 끓이는 내게 생활주체란 이름이 얼마나 엉뚱하게 느껴졌겠는가.

못한다고 말했다가 책임감 없는 사람인 듯 하는 눈총과 “못하면 노력해서 배우면 되지”라는 말과 함께 자기계발도 안 하는 사람만 돼 버렸다. 그 때 내가 선배언니에게 도움 받을 것임을 누구나 예상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언니는 새벽마다 내 질문에 잠을 깼고 밥하는 일을 도와주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나는 밥 잘하는 여자와 비교하여 하등 떨어지는 여자란 소리나 들어야 했다. 그 말을 “웃자고 한 얘기지…”하며 변명할지 모르겠지만 분명 내겐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여자후배에게 남긴 쪽지에는 “수돗물 그냥 먹으면 탈나니까 귀찮더라도 하루에 한번씩 꼭 끓여라” “고기는 냉장고에 보관해야 된다” 등 이보다 더 좋은 말이 생각나지 않는 상황이 씁쓸했다.

이번 생활주체 결정에서 생활주체는 여자가 해야 하고 지금껏 그래왔다는 생각에서 뽑은 거라면 그것 또한 성폭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번 농활대 안에서 ‘성폭력’을 성행위 가해에 한정해 사용했다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남자 후배들이 그들도 성희롱 했던 농민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가해자임을 알게 되는 순간을 기대해본다.

김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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