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대한병원협회 코로나19비상대응본부 실무단장

병상 650개 민간 종합병원 운영
코로나19 사태 맨 앞줄서 대응
신종플루·메르스 때도 확진자 진료
뼈 아픈 경험 통해 대응력 키워

이왕준 이사장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새롭게 살아야 한다"며 강조했다. ⓒ홍수형 기자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새롭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수형 기자

 

8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상을 바꾼 시간이다. 석 달 전 누리던 안온한 일상을 되찾기는 어려울 지 모른다. 대한병원협회 코로나19비상대응본부 실무단장을 맡아 맨 앞줄에서 ‘감염병 전쟁’을 치르는 이왕준(56) 명지병원 이사장은 코로나19를 가리켜 “문명사적 전염병”이라고 명명했다.

“102년 전 5000만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으로 세계 질서가 바뀌었듯이 코로나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사태가 세기적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바이러스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세계 질서를 흔들 것이라는 얘기다.

외과의사인 이 이사장은 2009년 신종플루 때는 대한병원협회 상황실장,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때는 대한병원협회 대책위원장을 맡는 등 신종 감염병이 발생 때마다 앞장서왔다. 그가 경영하는 명지병원은 650개 병상의 민간 종합병원이지만 국가지정격리병상 29곳 중 하나로 코로나 대응 최전방에 서있다. 1월 25일 입원한 코로나 3번 환자는 2월 12일 완치돼 퇴원했고, 인터뷰 당일인 6일에도 의정부성모병원에 입원해있던 70대 환자가 명지병원으로 옮겨왔다. 한국의 코로나 대응경험은 해외에서 ‘롤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 이사장도 지난 달 유엔(UN) 재난위험경감사무국 동북아사무소 및 국제교육훈련연수원의 요청으로 세계 105개국에서 898명의 재난담당 공무원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국 사례를 발표했다. 미국 메이요클리닉을 비롯해 전세계 메이요클리닉 케어네트워크 회원 병원들과도 한국 상황을 공유하는 온라인 세미나를 가졌다.

이왕준 이사장을 비롯한 명지병원 의료진들이 지난 3월 27일 한국의 코로나19 환자 치료·대응 노하우를 세계 메이요클리닉 케어네트워크 회원 병원 의료진들과 공유하는 모습. ©명지병원
이왕준 이사장을 비롯한 명지병원 의료진들이 지난 3월 27일 한국의 코로나19 환자 치료·대응 노하우를 세계 메이요클리닉 케어네트워크 회원 병원 의료진들과 공유하는 모습. ©명지병원

 

“우리나라는 5년 전 메르스 때 센 예방주사를 맞았어요. 위기상황의 대응은 준비된 만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확진자가 나오자마자 병원들이 선별진료소를 꾸렸어요. 정부에서 지시하지 않았는데도요. 메르스 때 프로토콜이 작동한 것이죠. 감염병 예방 및 관리법도 개정돼 최근에 시행됐고요. 다른 나라가 17년 전 사스 때 경험이 최근이지만 우리는 얼마 전에 감염병을 겪으며 뼈 아픈 경험을 하며 만든 시스템이 이번에 작동된 것이죠.”

이 이사장은 1월 초부터 중국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을 소통 창구로 삼아 코로나19 현황을 상세히 공유하고 병원의 대응 체제도 알렸다. “사스와 메르스를 거치며 투명하게 알리고 소통하는 일”의 중요성을 체감했기 대문이다. 2주에 한번 씩 글을 통해 앞으로의 상황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특히 지난 3월 22일 “3월말, 4월초에 상승세의 정점을 맞고, 유럽과 미국은 폭발적 확산으로 초토화될 것이다. 미국은 비효율적인 의료시스템으로 최악의 셧다운을 초래할 것”이라고 쓴 글은 24시간 만에 1500회 넘게 공유됐다. 그가 예측한 추이는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6일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이왕준 이사장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새롭게 살아야 한다"며 질문에 답을 했다. ⓒ홍수형 기자
이왕준 이사장 ⓒ홍수형 기자

 

이 이사장은 “신규 확진자가 줄고 있지만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던 확진자 수는 조금씩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사스와 메르스 때 뼈 아픈 경험을 한 의료진의 선제적인 대응과 정부의 강력한 정책, 사회적 거리두기에 적극 참여한 시민의 힘 덕분이다. 하지만 전시상황으로 비견될 만큼의 위기대응으로 상태로는 곧 한계에 다다른다는 것이 이 이사장의 지적이다.

“주위에서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나겠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그러면 저는 ‘코로나 감염병은 종식이 없다’고 말씀드려요. 코로나19는 증상이 없고 숙주를 죽이지는 않지만 전파력이 강한 영악한 바이러스예요. 개학을 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고 대구·경북지역 등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코로나19는 메르스 때처럼 몇 달만 버티면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일시적으로 소강상태를 보이더라도 내년까지 계속될 가능성도 커요.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그동안 누리던 개방성, 편안함은 새로운 관계 구조로 단절되거나 불편함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이 이사장은 “봉쇄·폐쇄 정책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중장기전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철학과 창의적 방역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병원 환자는 줄면서 불필요한 ‘의료 쇼핑’도 줄었다. 이 이사장은 박리다매로 버티던 의료시장을 “의료의 실질적인 이용량은 줄이되 가치와 질은 높여 진짜 필요한 것을 채우는 체계로 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자원과 인력의 선택과 집중을 위해선 낮은 의료수가를 현실화하는 작업이 뒷받침돼야 하는 작업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개학이 미뤄지고, 온라인 강의가 시작되면서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공간이고, 교육은 무엇인가’하는 본질적인 질문이 나온다.

“언제까지 ‘관군’이 아닌 ‘의병’으로 지속할 수 있겠어요? 민관이 함께 현장 중심의 권역별 지역별 콘트롤타워를 마련해 일상상황이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죠.”

그의 말대로 이 위기가 패러다임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을가. 이 이사장의 이야기 속에서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왕준 명지병원 이사장

전북 전주 출신으로 1992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2006년 같은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 부도 위기의 인천사랑병원을 인수해 34세로 최연소 종합병원장이 됐고 2009년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이 됐다. 1992년 인턴 시절 창간한 의료 신문 『청년의사』 발행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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