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미술관 ‘블랙마운틴’ 개관한 사진작가 김아타
“사진은 빛의 작업,
내가 셔터 누르지 않아도
햇빛이 캔버스에 직접 그린
포토그래프가 On Nature”
지난 10년 작업 ‘자연 하다'로
블랙마운틴 개관전
코로나19로 텅빈 뉴욕의 현실
‘On Air' 타임스퀘어에서 예언

 

사진작가 김아타가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온화한 산 속에 오롯이 자기 손으로 만든 미술관 <블랙마운틴>을 개관했다. 코로나 19 감염 사태로 온 세상이 시끄러운 까닭에 개관식도 없이, 흔연히 피어난 이웃 복숭아 과수원의 진분홍 복사꽃이 개관전 <자연 하다 On Nature> 오프닝 잔치를 대신했다. 2010년 시작한 군 포사격장 표적 작업을 수습해 패치워크한 검은색 캔버스 파편들이 블랙마운틴이라는 만신전(Pantheon)에 자리를 잡았다.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놓고, 빈 캔버스를 해와 달과 눈과 비에 맡긴 결과물이 드디어 공개되는 것이다.

온 누리에 봄이 가득하고, 블랙마운틴 미술관은 무릉도원을 이루고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환상적인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이곳에서, 지난 수년 간 침묵하고 있던 김아타 사진작가를 만났다. 

포탄으로 찢겨나간 캔버스를 패치워크 작업한 블랙마운틴 시리즈를 영구전시하는 블랙마운틴 미술관 앞김아타 선 사진작가 김아타.  사진=작가 제공
포탄으로 찢겨나간 캔버스를 패치워크 작업한 블랙마운틴 시리즈를 영구전시하는 블랙마운틴 미술관 앞에 선 사진작가 김아타. 사진=작가 제공

 

- <On Nature>는 김아타의 전혀 다른 면모를 담고 있다.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놓았다. 그리고 캔버스를 자연에, 심지어 포탄 사격에 맡겼다. 왜? 

“사진의 본질이 뭔가. 카메라 작업이나 On Nature는 빛의 작업이란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다. 햇빛이 캔버스에 찍어낸 진짜 포토그래프 아닌가. 먼 길을 돌아 나는 자연으로 돌아왔다. 2010년 강원도 인제 숲 속에 캔버스를 세웠다. 혹한과 장마가 두 번, 태풍이 여섯 번 캔버스를 후려쳤다. 하지만 캔버스는 저항하지 않았고, 그 모든 것을 담아냈다. 자연의 절기에 따라 때로는 비통하고 때로는 공감하는 법을 몸에 새겼다. 거기서 큰 힘을 얻어 인도의 부다가야에 또 캔버스를 세웠다. 싯다르타가 명상하던 그곳에 2년을 서있던 캔버스를 보며 나는 울면서 춤을 추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이유를 나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블랙마운틴 미술관 ©박선이
사진작가 김아타가 오롯이 자기 손으로 만든 블랙마운틴 미술관. ©박선이 기자

- 햇빛과 먼지, 비바람, 포탄이 작업을 하면 사진가는 뭘 하나. 캔버스 설치 노동자인가?

“하하하하하. 그것 참 괜찮은 칭찬이네.” 그는 진짜 호쾌하게 웃었다. 그리고 지독하게 힘든 시간을 건너왔다는 말을 아주 가볍게 풀었다.

“2010년 4월이니까 꼭 10년 전이다. 미국 뉴욕에서 해마다 열리는 아시아 현대미술주간(ACAW) 전시에서 미술관 1층에 얼음으로 불상을 설치했다. 일주일 동안 아이스 부다의 형상이 해체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다. 사람들은 녹고 있는 부다의 가슴에 손을 대기도 하고 녹은 물을 마시거나 병에 담아가기도 했다. 이 작업은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정말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나는 의식의 진화를 박제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뉴욕, 로마, 파리, 델리, 도쿄 등 21세기의 메트로폴리탄 도시 12개를 순례했다. 도시마다 1만 컷을 사진 찍어 포갰다. 그 무지막지한 작업 끝에 자연으로 돌아간 것이다.”

미국 뉴욕에서 열린 아시아 현대미술주간(ACAW) 전시에서 미술관 1층에 설치한 ‘아이스 부다’를 관람객들이 만져보고 있다. 김아타 작가는 일주일 동안 아이스 부다의 형상이 해체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다. ©김아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아시아 현대미술주간(ACAW) 전시에서 미술관 1층에 설치한 ‘아이스 부다’를 관람객들이 만져보고 있다. 김아타 작가는 일주일 동안 아이스 부다의 형상이 해체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었다. ©김아타

 

최근 코로나19가 미국을 최대 감염국으로 만들면서 김아타의 <On Air> 시리즈는 예언자적 작품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3월 기획한 <대공백(the Great Empty)> 사진 들이 그의 <On Air> 시리즈 작품들과 놀랍도록 닮았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그가 찍은 뉴욕, 베이징, 델리 등 세계적 메가시티들은 건물과 거리만 남긴 채 텅 비어있다. 8시간에서 10시간씩 렌즈를 열어둔 결과다. 최근 뉴욕의 한 갤러리 관장은 <대공백>을 계기로 김아타의 작품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며 <On Air> 시리즈 구매 의사를 전해오기도 했다. 

온에어 시리즈 중 타임스퀘어(위·2005년 작)와 지난 3월 뉴욕타임즈 ‘대공백' 기획 중 타임스퀘어. 장시간 노출로 사람과 자동차 등 움직이는 것들을 모두 날려 버린 김아타의 작품은 예언자적 이미지로 이번에 다시 관심의 중심부로 호출됐다. ©김아타·뉴욕타임스
온에어 시리즈 중 타임스퀘어(위·2005년 작)와 지난 3월 뉴욕타임즈 ‘대공백' 기획 중 타임스퀘어. 장시간 노출로 사람과 자동차 등 움직이는 것들을 모두 날려 버린 김아타의 작품은 예언자적 이미지로 이번에 다시 관심의 중심부로 호출됐다. ©김아타·뉴욕타임스

 

정작 김아타는 지금 자신의 과거 작업들로부터 멀리 와있다. 개관전 <자연 하다 On Nature> 시리즈는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놓은 역설적 작품이다. 세계 곳곳에 길게는 2년, 짧게는 1년씩 흰 캔버스를 세워놓으면, 사막 한 가운데에서, 바다 속에서, 도시의 빌딩 숲에서, 햇빛과 바람과 눈과 비와 먼지가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이미지를 그려냈다. 흰 캔버스에 마치 단색화 같은 문양을 남긴 On Nature 시리즈가 회색과 갈색, 분홍 등 오묘하고 평화로운 자연의 그림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면, <블랙마운틴>의 주인공인 포사격 캔버스 파편들은 검정과 빨강으로 극렬한 색으로 표현된다.

‘인달라 시리즈’ 중 피카소 편. ©김아타
‘인달라 시리즈’ 중 피카소 편. 김아타 작가는 뉴욕, 로마, 파리, 델리 등 메트로폴리탄 도시 12개를 순례하며 도시마다 1만 컷을 사진 찍어 포갰다. ©김아타

 

- 2006년 미국 뉴욕에서 <On Air> 전시회를 3개월 하면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뉴욕타임스가 대서특필하고 빌 게이츠 컬렉션이 시리즈 작품을 구입하는 등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카메라를 놓고 <On Nature>로 선회한 이유가 무엇인가.

“세상에 알려진 작업을 하지 않고 새로운 작업을 하면 시장에서 도태되어 죽는다는 충고를 많이 들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나의 의식에 충직했다. <자연 하다>의 캔버스에는 분홍빛 곰팡이가 너무도 곱다. 내가 서있어야 할 자리에 나를 대신해 섰던 캔버스가 자연과 관계하는 과정을 보면, 나 또한 곰팡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연을 축내는 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자연 하다>는 죽음을 기억하는 일이며 나 또한 캔버스처럼 자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기 원한다.”

그에 쏟아졌던 충고대로, 예술가에게 시장은 엄혹했다. 미국 현대미술과 사진 시장에서 주목받았던 작업들을 놓고 세계 대도시의 만상(萬象)을 찍으러 다니면서, 또 곳곳에 캔버스를 세우면서, 포사격장의 목표물에 헝겊을 깔아 포사격의 흔적을 수집하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면서 그는 비판과 질시, 그리고 경제적 압박을 견뎌야 했다.

블랙마운틴 미술관 ©박선이
블랙마운틴 미술관에 전시된 레드마운틴 시리즈.
포탄으로 찢겨나간 캔버스 자투리에 붉은색 을 입혀 아크릴판에 담았다. ©박선이

 

-블랙마운틴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절망적인 시간을 견디며 이곳저곳을 다녔다. 사돈이 지원해 1200평(3967㎡)의 땅을 마련했고, 건물 하나 지으면 농협에서 담보 대출 받아 그걸로 또 전시 공간 하나 짓고, 그것 완성 되면 그걸로 또 담보 대출받아 또 하나 짓고, 그렇게 작품보관창고까지 4채를 지었다. 설계에서 시공까지 내가 직접 했다.”

전시공간은 노출콘크리트로 지은 박스형 건물과, 박공지붕을 지닌 검은색 강판 패널 건물 두 채. 둘 다 60평(198㎡) 정도로 아담한 규모로 야트막한 언덕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 딱 맞춤하게 들어섰다. 검은색 블랙마운틴 미술관은 포사격으로 갈갈이 찢어진 캔버스 파편 작업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으로 맞춰지었다. 전시장의 이중문을 통과해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텅 빈 공간이 펼쳐진다. 진혼곡 같은 어둠에 눈에 익을만하면 포탄에 찢겨진 흔적들이 사방 벽에서 침묵의 흐느낌을 전한다. 헝겊에 새겨진 어떤 상처들은 마치 비천상(飛天像)을 방불한다.

“2009년에 처음 포 사격장에 캔버스 천을 설치했다. 포탄에 찢겨나간 캔버스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처참했다. 그 상처를 정화시키는 데 여러 해가 필요했다. 어머니가 자투리 천을 모아 짜깁기해서 만든 상보가 자식들의 생명을 보듬었던 것처럼, 포탄 파편에 산산조각이 난 캔버스 천을 수습해서 패치워크를 하고 검은색을 입혔다.”

김아타는 블랙마운틴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절망하는 일”이라는 깨달음의 열매라고 말한다. 절망의 끝에서 색(色)을 버릴 수 있었다는 그는 찢어진 헝겊, 혹은 찢어진 삶에 검정과 하양과 빨강을 입혔다. 생생한 날것 그대로의 사람들을 보여준 <뮤지엄 프로젝트>부터 포탄에 찢긴 헝겊을 이어붙인 <블랙마운틴>까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삶과 죽음, 존재와 무(無)에 던지는 질문들이다.

 

작가 주요 약력
2002년 런던 파이돈 ‘세계100대 사진가선정
2006년 미국 뉴욕 국제사진센터(ICP) 개인전
2009년 제53회 베니스비엔날레 초청 ‘Atta Kim : ON-AIR특별전

블랙마운틴 미술관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덕실길 31-99
개관 화-일 오전 10시~오후5시
입장료 성인 1만5천원, 청소년 1만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