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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5년 5월29일 미국의 워싱턴 타임스지가 92년 한국의 대통령선

거와 관련한 충격적인 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다. 내용은 한국의 여당

인 민자당의 고위층이 92년말 김영삼후보를 당선시키기위해 “한국군

특수부대원들에게 북한군복을 입혀 비무장지대에서 사건을 도발하려고

계획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설은 계획이었을뿐 실행은 되지 않았다.

이 신문이 폭로한 시점은 6월27일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바로

앞둔 때였다.

이때도 판문점에서는 북한군의 월경사건이 잦고 북풍이 솔솔 피어나

는 낌새가 돌고 있었다. 이 신문은 김영삼정권이 성수대교 붕괴, 대구

지하철가스폭발사건등 대형사건으로 지지율이 낮아져 지방선거에서 패

배할 것으로 분석했다.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은 한국군 지도자들에

게 북한군의 월경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다.

럭장군은 북미핵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시점에서 비무장지대에서

의 긴장증대는 총격사건을 유발, 전면전을 초래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물론 워싱턴의 한국대사관과 한국국방부는 펄쩍 뛰었다. “전혀 사실

무근”이라는 강한 부인성명을 냈다. 그러나 위싱턴 타임스지는 미국

의 한 비밀정보보고서를 인용해 “92년 김영삼후보는 컴퓨터계산으로

패배가 예상된다면 이 북한군위장계획을 실행에 옮길 예정이었다”고

후속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이 내용이 나올때만해도 ‘설마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번 대선에서 벌어진 ‘북풍만들기’의 일부분만 밝혀졌

는데도 이런 계획의 실제가능성에 수긍이 가기까지 한다. 아직 진상이

다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가안전기획부는 국가안전이 아니라 ‘정권의

안전’이나 ‘여당후보의 당선’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그 무서운 국가보안법이 있는데도 안기부요원은

물론 각당은 북한인사들과의 접촉은 물론 협상까지 할 수 있는 ‘비

선’(秘線)을 갖고 있었다는 데 놀랍다. 개인은 해외에서 북한인들과

조우하는 것조차 법에 저촉될까봐 두려워 조심하는데 말이다. 이중간

첩 ‘흑금성’이야기는 007시리즈에나 나올법한 스토리다. 남북한을

자기집처럼 드나들며 공작을 벌였다니 그에게는 남북한이 대치상태에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활동무대가 된 것이다. 안기부가 선거 바로 직

전 북한측에 김대중후보와 관련한 ‘보다 화끈한 사진’을 요구했다는

것이 압권이다. 더구나 김대중후보측과 이인제후보측을 북한과 연결시

켜 이를 ‘덫’으로 이용하려고 했다는 대목에서는 ‘가능한 모든 수

법’을 다 동원하려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오히려 북한측에서

“내정간섭이 될 수 있다”며 자료제공을 거부했다니 어느쪽이 더 도

덕적인가 헷갈릴 정도다.

안기부의 이런 비밀공작문서가 공개되면서 ‘음지’의 공작상이 양지

로 드러나고 있다. 이를 비추어보면 95년 워싱턴 타임스의 92년 김영

삼후보를 위한 ‘비무장지대에서의 위장도발설’까지 사실이 아니었나

의심이 간다. 더 나아가 선거때마다 불었던 ‘북풍’의 실체는 안기부

가 공작차원에서 행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가까이는 96

년 4월총선 전 판문점에서 북한군이 무력시위를 했던 것도 이상하다.

북한으로서는 특별한 이익이 없는데도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이때는

한국언론이 더 위기의식을 조장했다. 수도권과 경기 강원북부지방등에

서는 라면사재기등 혼란이 일었다. 결국 북풍은 서울에서 처음으로 여

당이 승리하는 선에서 승리를 안겨주었다. 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에서도 앞에서 본 것처럼 여권이 북풍계획을 세웠다 한다.

더 올라가면 87년 김현희에 의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까지도 의심이

간다. 끔찍한 상상이다. 83년 미얀마 양곤사건때는 북한이 전두환대통

령을 암살하려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87년은 무고한

국민을 희생시켜야 할만한 이유가 없었다. 사실이라면 우리나라의 정

통성 자체가 흔들릴 위험도 있다. 어쨌든 국민의 위기의식을 볼모로

정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은 국가위해사범임이 분명하다. 정말이지 민족

문제는 정권유지를 위한 공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통일을 저해

하는 반역사적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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