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하교하고 있다. ⓒ여성신문

 

“민호가 목 졸랐어.”

뭐야! 내 이 놈을 당장! 한 손아귀에 들어오는 예루의 목이 떠올랐다.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

고백하건대 나도 초등학교 때는 여자애들을 못살게 구는 데 열중했었다. 볼살이 통통하게 오른 친구에게는 빵을 선물해 주고, 피부가 까무잡잡한 친구에게는 ‘짜장면’이라는 별명을 붙여 놀렸다. 탄산 음료 캔을 한껏 흔들어 터뜨려 온몸을 설탕물 범벅으로 만든 적도 있다. 볼펜 대롱에 휴지를 말아 넣어 만든 바람총은 수도 없이 쐈다. 종국에는 핀으로 만든 다트를 던져 팔에서 피가 나게 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호감 가는 친구의 관심을 끌고자 일부러 못된 짓을 했던 것 같은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저질렀던 악행이 차례차례 떠올라 심란해졌다.

마음이 복잡해지면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예루가 앞으로 겪게 될 차별에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과연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반장 선거에서 남자 후보를 이기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예루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피아노를 잘 치는 것은 괜찮지만 시험 성적이 좋으면 남자애들의 시기를 받을 수도 있다. 지금은 그런 것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있지만 학년이 올라가면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압력이 가해 질 것이다. 남자애들보다 더 뛰어나면 자연스럽게 ‘튀게’ 될 것이고, 그래서 잘하기는 잘하되 적당히 잘해서 남자애들보다는 더 잘하지 않게 해야 탈이 안 생길 것이다. 이런 압력 속에서 예루가 상처받지 않고 무사히 자랄 수 있을까?

“그래서, 울었어?” “응. 쪼금 눈물 났어.”

이런 괘씸한. 

“그래서, 어떻게 했어?” “선생님이 진술서 쓰라고 해서 썼어. 민호는 반성문 쓰고.” 

다행이다. 글로 써서 남기는 것은 아주 중요하니까 어렸을 때부터 해 버릇해야 한다. 

“근데 쓰는 게 너무 힘들어서 후회했어. 선생님한테 말하지 말 걸 그랬어.”

이런! 큰일이다. 이런 걸 귀찮게 여기지 않도록 지금부터 확실하게 가르쳐 놓아야 한다. 앞으로 어른이 돼서도 비슷한 일을 많이 겪게 될 테니까.

“한꺼번에 쓰니까 힘든 거야. 무슨 일이 생기면 그때마다 바로 바로 한 줄씩 써 놔야 돼. ‘오늘 민호가 목 졸랐다’ 이렇게. 그리고 쓸 때 날짜랑 장소랑 시간이랑 꼭 쓰고. 옆에 누가 있었는지, 누가 봤는지도 꼭 써 놔. 알았지? 아, 그리고 그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도 꼭 써 놔야 돼. ‘무서웠다’, ‘아팠다’ 이렇게. 알았지?”

“응.” 

대답이 시원찮다.

“이거 아주 중요해. 바로 안 써 놓으면 다 까먹어서 나중에 쓰려고 하면 기억이 안 나. 알았지? 조금씩 써 놓으면 잊어버리지도 않고 한꺼번에 쓰지 않아도 돼. 그리고 다 쓰면 꼭 어른한테 말해야 돼.”

“응.”

 

예루가 귀찮아 하면 안 되니 설교는 이쯤에서 그만하고 어쩌다가 민호가 목을 조르게 되었는지 물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항상 장난을 걸어오는 남자애가 둘 있는데 민호는 조금 심하게 장난을 치는 편이라고 한다. 그 날은 급식실에서 일이 벌어졌는데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근데 나도 막 남자처럼 등에 올라타고 그래.”

장난을 걸어오면 예루도 가만히 있지 않고 맞받아치는 듯하다.

“자꾸 괴롭히면 삼촌이 가서 혼내줄까?”

줄곧 지루한듯 무표정이던 예루가 돌연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괜찮아.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일본에 사는 삼촌이 비행기 타고 와서 같은 반 친구를 혼내주고 갈 것이라고 믿는 초등학생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삼촌이 놓은 으름장은 삼촌의 '바른 말’보다 더 의미있게 다가온 듯하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은 편에 서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울 힘을 불어넣어 주는 말 역시 못지않게 중요하다. 싸우는 법은 대개 스스로 터득할 수 있지만, 싸울 힘을 불어넣어 주는 말은 혼자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이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결국에는 쓰러지지 않고 계속 싸우는 사람이 이길 테니 말이다. 

*필자 나일등 :&nbsp;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br>『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필자 나일등 :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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