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 21대 초선의원을 만나다] 정의당 이은주 당선인
1991년 88학번 동기 김귀정 열사 죽음 이후 시신 지키며 노동운동 결심
남성 95% 궤도교통산업에서 직장어린이집 만들고 노조 첫 여성 정책부장
공기업 최초 비정규직 정규직화·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통합 성공
“산업별 평등임금체계 등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뛰어넘는 노동 정치 실현”

이은주 정의당 당선인. ⓒ이은주 당선인 제공.
이은주 정의당 당선인. ⓒ이은주 당선인 제공.

평범한 중산층 집 딸이었던 이은주 정의당 당선인의 삶을 바꾼 것은 민주주의를 탄압한 시대였을까, 학생 운동을 하다 백골단에 압사한 대학 동기 김귀정 열사였을까.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했던 이은주 당선인은 졸업 후 1993년 9월 서울지하철에 역무원으로 입사해 이번 총선 전까지 서울지하철 노조에서 쭉 노동운동을 해왔다. 그는 21대 국회에서 노동과 정치를 연결해 시민들의 삶을 바꿀 계획이다.

“노동자 국회의원으로서 일하는 시민들의 명예와 자부심을 새기면서 당당하게 일하고 싶다. 21대 국회는 민주화 이후 가장 강력한 거대 여당 독점체제를 만들었다. 코로나19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닥쳐왔다.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일하는 시민들의 삶을 지키는 제 3정당의 의원으로서 노동과 정치를 연결하고 우리의 삶을 바꾸는 정치를 펼치겠다.”

중산층 집안 딸이 노동운동에 뛰어들기까지

이은주 당선인은 어릴 적부터 기자가 꿈이었다. 성균관대 88학번인 그는 대학에 다닐 때 언론협의회와 교지편집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취재를 하고 문제가 있는 부분을 고발하고 시민들에게 알릴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그를 ‘노동운동으로 사회를 바꾸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것은 성균관대 88학번 동기였던 고(故) 김귀정씨가 1991년에 학생 운동 중에 대한극장 골목에서 전투경찰인 백골단에 무차별 폭행으로 죽은 이후였다.

“대학 4학년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최루탄이 날리는 거리에서 살았던 우리는 명지대에 다니던 강경대 열사가 백골단에 사망했다는 소식에 규탄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풀무질이라는 서점 앞에서 만났다. 그때 귀정이와 ‘이따 다시 보자’고 헤어지고 시위를 나갔다. 그런데 그 이후로 귀정이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귀정이는 대한극장 골목에서 전투경찰인 백골단에 토끼몰이로 진압 당해 사망했다. 명백한 살인이었다.”

고(故) 김귀정 열사는 1991년 5월 25일 고(故) 강경대 열사 살인 만행 규탄 및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제 3차 범국민대회에서 시위 도중 서울 중구 퇴계로 4가 대한극장 맞은편 막다른 골목에서 몰려 최루탄이 날리는 가운데 무차별 구타 끝에 압박 질식사했다. 고작 26살의 나이였다. 이 당선인은 백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죽은 친구의 시신을 경찰에 뺏기지 않기 위해 아스팔트 바닥에서 열흘 이상을 신문지 깔고 농성했다. 경찰은 고(故) 김귀정 열사의 사망 이튿날 새벽에 시신 탈취를 시도했으나 유가족과 성균관대 학생들에 의해 저지됐다.

“사실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평범한 중산층 집안의 딸이었다. 구로동 닭장집에서 가난하게 사는 친구들과 달리 가난을 몸으로 겪은 적은 없다. 한겨레신문을 보면서 사회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런데 같이 학생 운동을 했던 귀정이가 그렇게 죽고 열사가 됐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럽고 아팠다. 풀무질 서점 앞에서 본 귀정이의 얼굴이 아직도 선명하다. 귀정이와 함께 꿈꾸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끄럽지 않게 살기로 결심했다.”

이 당선인은 학생 운동을 하면서 노동 운동에 대해 고민했다. 소련이 무너진 이후에 신분을 숨기고 현장으로 가서 노동 운동을 했던 선배들이 학교로 복학하던 시기였다. 그는 시민이자 노동자로서 자신의 일터에서 사회를 바꾸기로 했다. 당시 산업재해가 많은 궤도교통산업을 보고 이 당선인은 1993년 서울 지하철에 시험을 치르고 역무원으로 입사했다.

지하철 역무원으로서 성신여대역 플랫폼에서 일하고 있는 이은주 당선인. ⓒ이은주 당선인 제공.
지하철 역무원으로서 성신여대역 플랫폼에서 일하고 있는 이은주 당선인. ⓒ이은주 당선인 제공.

지하철역무원 노동자에서 21대 국회의원으로

그는 남성이 95% 정도로 압도적 다수인 궤도교통산업인 지하철노조에서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정책실장까지 올랐다. 그는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직장 어린이집을 설치했고, 철도노동자의 해고 투쟁뿐 아니라 구의역 참사 재발방지를 위해 노동이사제를 도입을 이뤄냈고 서울메트로와 서울시도시철도공사의 통합을 주도했다. 그런 그가 정치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이후 노숙 투쟁으로 해고 노동자가 복직되는 과정에서였다.

“지하철은 굉장히 열악한 사업장이다. 공기업이라서 노동3권 중 하나인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해고자가 생기면 해고자 복직 투쟁을 하고 그러면 또 해고자가 생기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런데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 이후에 해고 노동자가 복직됐다. 그때 정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정치는 시민의 삶을 직접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당선인은 노동계가 염원했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명제를 현장에서 이뤄낸 경험이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됐을 때 부딪힌 현실은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노조 내 청년 조합원들의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뛰어넘는 산업별 평등임금체계를 꿈꾼다. 노동자 의원으로서 노동과 정치를 연결하는 새로운 노동정책을 만드는 것이 21대 국회에서 자신의 과제라고 본다.

“서울지하철은 공기업 최초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이룬 사업장이다. 그러나 뜻밖의 갈등에 직면했다. 신규 입사한 2000년대 사번의 청년 노조원들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힘들게 공채 시험을 통과했는데 비정규직 입사한 사람들이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불공정하다’며 하나둘 조합을 탈퇴했다. 가슴이 아팠다. 노동운동의 명제같은 것을 현실로 이뤄냈는데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청년 조합원들의 이기주의로만 볼 일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노노갈등으로 비춰졌지만 이는 단시 개별 사업장이 직면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할 일이다. 노동 정책과 관련해 변화가 필요하다.”

그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해결되지 않는 임금 격차와 다양한 노동에 대해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뛰어넘어야 한다.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노동 형태가 존중 받으려면, 산업별 평등임금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같은 정규직이라고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차이는 심하다.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도 있다. 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로 해결할 수 없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노사정이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안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이 당선인이 노동 운동을 오래하면서 깨달은 것은 협상의 중요성이다. 그는 반정치주의의 역사를 끝내고 노동 정치가 필요한다고 말한다. 그는 노동조합이 주체가 돼 서울시와 함께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 통합안을 공동으로 만들어낸 경험을 통해 정치를 재발견했다.

“노동 운동을 쭉 하면서 협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노동운동의 기저에 깔려있던 반정치주의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박 시장 당선 이후에 노동조합이 참여해 서울지하철 해고자 복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와 노동이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시민들의 안전보다 경쟁논리로 접근해 분리해서 운영하던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를 하나로 통합시키면서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면 2년이 걸리더라도 통합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다. 정치를 재발견한 순간이었다.”

이은주 정의당 당선인. ⓒ이은주 당선인 제공.
이은주 정의당 당선인. ⓒ이은주 당선인 제공.

“시민 각자에게 삶의 변화 느끼게 하겠다”

이제 그는 21대 국회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위기, 경제 불황 등을 해결하는 주체로 노동자를 불러야 한다고 피력한다.

“경제 주체의 절반은 노동자이다. 경제적 주체로서 노동계가 대응한 입장으로 존중받고 인정받아야 코로나19 이후의 경제위기에 단기, 장기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그에게 국회의원이란 법을 만드는 일 못지않게 현장에서 제대로 집행되고 있는지, 시민들의 권리가 보호되고 있는지, 감시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21대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등에 배정받기를 희망한다.

“궤도교통산업 노동자 출신으로 노동의 문제뿐 아니라 교통의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교통의 문제는 기후위기랑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어떻게 기후위기 시대에 교통 문제를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또 서울지하철에서 일하면서 지방 자치에 대한 역할도 고민해왔다. 서울시와 노사정 협의를 통해 서울시 산하 기관 노동자들의 삶의 바꾼 경험을 토대로 이런 분야에서도 역할을 하고 싶다.”

4년 뒤, 임기를 마칠 즈음 그는 시민들 각자의 삶이 바뀐 것을 느끼게 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건강한 사회에 뿌리를 내린 정당이 좋은 정치를 만든다. 시민들에게 좋은 정당으로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시민들 각자의 삶이 변하는 것을 느끼게 하는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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