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 21대 초선의원을 만나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당선인
무용수 활동하던 25살에 빗길 교통사고로 사지마비 척수장애 판정
독립한 후 대기업 전화 상담원 근무, 한국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설립
국내 척수장애인 최초 재활학 박사·사회복지행정학 교수 역임
장애인이 일하는 국회... 장애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가 극복할 문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홍수형 기자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국회 본청 앞에서 사진 촬영을 위해 자세를 취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당사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불편이 있다. 장애는 특히 그렇다. 장애 유형별로 장애 당사자들이 겪는 일상의 어려움은 다양하다. 멀리서 누군가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오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은 여느 사람들처럼 초록빛 풀이 무성한 국회 잔디밭을 가로지르지 못하고 먼 길을 돌아 국회 본청 앞에 있는 분수대 앞으로 다가왔다. 미관을 위해 울퉁불퉁 심어진 돌길은 그에게 휠체어에서 떨어질 위험의 순간을 제공하는 장벽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국회에서 4년간 꿈꾸는 변화는 더 많은 장애인이 일하는 국회, 사회로 복귀해 세금 내는 장애인이 많은 사회다.

“국회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국회를 돌아다니는 일이 힘들게 느껴진다. 국회부터 바뀌어야 한다. 사실 공공기관 등 건물을 설계할 때부터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이 참여해야 이런 어려움이 해소된다. 사람들이 흔히 ‘장애를 어떻게 극복했느냐’고 묻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난다. 장애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가 극복해야할 일이다. 국회에 들어가면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일부터 하려고 한다. 중도장애인의 사회복귀 시스템을 갖춰 세금 내는 장애인이 많은 사회, 장애에 대한 편견이 적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

최혜영 당선인은 교통사고로 척수장애 판정을 받기 전까지 무용수였다. 빗길에 차가 미끄러졌는데 친구들은 전혀 다치지 않았는데 자신만 목뼈가 부러져 척수 신경이 마비돼 평생 휠체어를 타게 됐다. 장애인의 대부분이 후천적 사고로 장애를 가지고 사는데 한국 사회는 여전히 장애인을 차별하고 배제한다.

“최근에 당선인 신분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목포 신항에 가면서 하룻밤을 잤다. 휠체어로 이동하기 편한 호텔을 예약했는데 들어가자마자 쫓겨났다. 새로 지은 호텔이라서 타일에 바퀴자국이 난다는 이유였다. 명백한 차별이었다. 캐리어를 끄는 손님들은 바퀴자국이 나든 말든 호텔에 들어갔다. 이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2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에서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은 "장애뿐만 아니라 사각지대 서에 계시는 분들을 위해서 최대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중간의 디딤돌 역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국회 소통관에서 가진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장애뿐만 아니라 사각지대 서에 계시는 분들을 위해서 최대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중간의 디딤돌 역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홍수형 기자

사회복귀한 장애인 롤모델 없어 스스로 길 만들어

그는 1979년 거제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중학교 수업시간에 무용을 하면서 소질을 발견했다. 무용을 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다. 그는 6살 터울의 언니에게 조심스럽게 꿈을 밝혔다. 언니는 자신이 벌어서 지원할테니 무용을 하라고 했다. 그는 부산에 있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다. 사고는 대학교 4학년 때 무용수로 활동할 때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차가 빗길에 미끄러졌다. 친구들은 다 멀쩡했는데 졸고 있던 저는 조수석 뒷자리에 앉았는데 목뼈가 부러져 몸 밑으로 척수 신경이 마비됐다. 병원에 있던 1년 동안은 제가 평생 휠체어를 타야할 줄 몰랐다. 하루는 병원 친구가 국립재활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고 예쁜 휠체어를 타고 돌아왔다. 몇 년 됐냐고 물으니 사고 난 지 2년 됐다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도 평생 휠체어를 탈 수 있겠구나.”

최 당선인은 스스로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했지만 평생 휠체어를 타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처음에는 사실을 부정했다. 한두 달 지나면 신경이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화가 나도 몸 밑으로 신경이 마비돼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물건을 던지고 부모님께 화도 냈다. 나중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왕 사는 거 열심히 살아야 겠다, 예쁜 휠체어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에 힘들었던 점은 사회에 복귀했을 때 어떻게 일을 하고 일상을 살아야 하는지 롤모델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나씩 부딪혀 가며 사회복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스스로 롤모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에서 재활치료를 받으면서 그는 독립을 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세입자로 들어가기 어렵기도 하고, 이사 갈 때 각종 수리비용을 요구하는 집주인도 많았지만 그는 장애를 가지고도 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력서를 넣고 운전도 하고 다니면서 다른 장애인 친구들을 집에 데려다주기도 했다.

“독립하니 형편이 빠듯해서 일을 해야 했다. 대기업 전화 상담원으로 원서를 넣었다. 서류는 합격했는데 면접을 보면 떨어졌다. 한 대기업에서는 장애인이 일할 환경이 안 된다는 이유로 불합격 통지를 받기도 했다. SK텔레콤에서는 합격했다. 장애 판정을 받고 처음 시작한 일이었는데 신체적 리듬이 바뀌다보니 몸에 무리가 갔다. 3개월 만에 응급실에 실려가 일을 그만뒀다. 가족들이 ‘일해서 버는 돈보다 병원비가 더 나오겠다’고 한 소리씩 했다. 그 뒤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공부를 하고 국립재활원에서 강의를 했다.”

누구나 언제든 장애를 가질 수 있다. 최 당선인은 재활하면서 20대 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한국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를 설립했다. 장애를 가지고도 경제활동과 사회참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 개선에 뜻을 가지고 삼삼오오 모였다.

“장애 판정 받아도 저는 살만한데 사람들은 휠체어를 탄다고 불행할 것이라고 본다. 장애는 사람이 극복해야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극복해야할 일이다. 장애인식 개선에 뜻이 있는 사람들, 특히 20대 젊은 척수 장애인을 주축으로 센터를 직접 만들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홍수형 기자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당선인. ⓒ홍수형 기자

“인식개선·사회복귀로 ‘세금 내는 장애인’ 늘리고 싶다”

장애와 관련돼 해결돼야할 일들이 국회에 산적해 있지만 최 당선인은 그 중에서도 사고 등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중도장애인의 사회복귀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에 애정이 많다. 그는 일하는 장애인, 세금 내는 장애인을 늘리기 위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또는 환경노동위원회에 배정받고 싶다.

“중도장애인의 사회복귀 시스템이 필요하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사회에 나가기 전에 휠체어를 타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는 사회복귀 시스템이 없어 병원에 2~5년씩 돌아다니며 재활난민으로 살 수밖에 없게 돼 있다. 한국은 5년째 시범사업 중이다. 국회에서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야 하는데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중도장애인이 직업인으로서 생활하고 사회에 복귀하면 장애인 당사자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지원하는 의료비 부담도 줄어든다. 세금 내는 장애인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국회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하고 싶은 공약은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65세 폐지’를 없애는 것이다.

“후보 시절 다양한 의제를 이야기했지만 우선 ‘활동보조서비스 65세 폐지’를 해결하고 싶다. 저처럼 젊을 때 다쳐서 활동보조서비스 받던 사람이 갑자기 65세 됐다고 활동보조를 받지 못하면 평소 해왔던 활동을 갑자기 단절해야 한다. 65세가 되면 장기요양보험 서비스로 전환되는데 활동지원이 적어 차이가 무척 크다. 또 70세에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면 요양보호서비스를 받는데 자신의 직업이나 모임 활동에 제약을 받게 된다.”

최 당선인은 성폭력, 가정폭력, 임금차별 등 장애여성의 인권에도 관심이 남다르다.

“장애여성은 이중차별을 받는다. 성폭력 상담소가 있지만 신고조차 되지 않은 숨어 있는 사례가 많다. 장애인 학대 신고 의무자도 만들어 놨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찰을 불러도 분리조치가 이행되지 않는 등 사후조치가 이뤄지지 않기도 한다. 장애여성은 가족들에게서 차별과 상처를 많이 받는다. 이런 점에 입각한 정책도 필요하다. 임금차별은 말할 것도 없다. 장애인이라서 받는 차별, 여성이라서 두 배로 받는 일도 많다.”

최 당선인은 병원에서조차 기본적인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건강검진 등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 2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하지 않나.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집 근처 병원에서 엑스레이조차 찍을 수 없다. 산부인과 진료대에도 눕지 못한다. 병원에서 ‘잠깐 일어나 앉을 수 있겠어요?’라는 말을 들을 땐 황당하기도 하다. 여성 장애인들이 검진을 받으려면 시설이 갖춰진 여성 병원을 가야하는데 일산에 있다. 처음에는 일산에 있는 줄도 몰랐다. 지방에 사는 여성 장애인에게는 더 난관일 것이다.”

최 당선인은 4년 뒤 임기를 마칠 즈음에 다양한 장애인이 불편함 없이 들어올 수 있는 국회를 만들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붙박이 의자, 좁은 통로, 장애인의 접근성을 방해하는 여러 장벽들을 없애고 싶다. 현재까지 장애인 의원은 재선된 적이 없는데, 장애인들의 보좌관, 국회의원 진출을 위한 정치 아카데미도 열 계획이다.

“국회에서 열린 당선인 교육 장소에 갔는데 휠체어석이 없고 붙박이 의자라서 맨 뒷자리에 의자 하나만 빼놓은 모습을 봤다. 친한 의원들과 옆자리에 앉아 담소도 나누고 싶은데 앉지도 못할 의자 등에 제 이름이 붙어 있었다. 뒷자리에 홀로 앉거나 통로에 멀뚱히 앉아 있어야 했다. 장애인이라고 배제된 것 같았고 국회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다양한 장애인이 편하게 접근하고 또 일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들 계획이다. 국회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도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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