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강증진개발원 제작 교육영상 파문
10대들 야유 “황당하다” “외모지상주의”
개발원 “불편한 내용 있다면 확인해 삭제하겠다”
12일 현재 교육 영상 비공개 처리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만든 청소년 자살예방교육 영상 ‘나, 너, 우리 함께!’의 한 장면. 자살하고 싶다는 친구에게 여학생이 “물에 빠져 죽으면 시체가 퉁퉁 불어 진짜 안 예쁘대”라고 말한다. ⓒ영상 캡처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만든 청소년 자살예방교육 영상의 한 장면. 자살하고 싶다는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물에 빠져 죽으면 시체가 퉁퉁 불어 진짜 안 예쁘대”라고 말한다. ⓒ영상 캡처

학생 1 : “나, 죽고 싶어.”

학생 2: “물속 추워. 너 추운 거 싫어하잖아. 그리고 물에 빠져 죽으면 시체가 퉁퉁 불어 진짜 안 예쁘대.

요즘 중·고등학교에서 널리 활용 중인 청소년 자살예방교육 영상 ‘나, 너, 우리 함께!’의 한 대목. 주변 친구의 상태를 살피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일이 자살 예방에 중요하다며, 예시로 보여준 애니메이션 속 여학생들의 대화 내용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제작한 청소년 자살예방교육 영상에 대해 정작 10대들은 야유를 보내고 있다. “여기서도 외모지상주의냐”라는 비판, “죽을 만큼 괴로워하는 사람을 외모 얘기로 설득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경북 안동시 P고교 2학년 김모씨는 학교 과제 작성을 위해 이 영상을 보다가 해당 대목에서 “황당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여자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외모를 신경써야 한다는 건가요? 그렇지 않아도 여성의 외모 관리 압박이 심한 곳이 한국 사회인데... 만약 외모 스트레스로 자살을 고민하는 여학생에게 저런 말을 한다면 더 괴로워하지 않을까요? 너무 불편했어요.”

해당 영상이 게시된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유튜브 채널에도 비판 댓글들이 눈에 띈다. “제정신이야? 내가 왜 죽어서까지 용모를 신경써야하는데”(ID ‘L ee’) “자살 예방 영상에서 진심으로 할 수 있는 말인가 싶어 당황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왜 죽고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저, 죽고 난 이후의 용모를 신경 써야 하는 것인지요. 물에 빠져 죽으면 안 예쁘니 다른 예쁘게 죽는 방법을 찾아라, 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한마디 꼬투리 잡는다는 것은 알지만 이 고작 한마디가 얼마나 무거운 말인지 알고 제작하셨는지요.” (ID ‘새벽구름’)

유튜브의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청소년 자살예방교육 영상 페이지. 12일 오후 현재 비공개 처리됐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유튜브 계정에 게시된 청소년 자살예방교육 영상 페이지. 12일 오후 현재 비공개 처리됐다. 사진=유튜브 채널 캡쳐
해당 영상에 달린 댓글 일부
해당 영상에 달린 댓글 일부. 사진=유튜브 채널 캡쳐

영상을 제작한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은 뒤늦게 여론을 파악하고 조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현정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음주폐해예방팀장은 “전문가 자문과 감수를 거쳐 제작한 영상이다. 요즘 10대들이 미에 신경을 쓰니까, 그런 흐름으로 (해당 대목을) 넣은 듯하다. 하지만 저희가 다시 확인해보고 불편하거나 (정신건강에) 위해를 끼치는 부분이 있다면 삭제하겠다”고 말했다. 12일 오후 현재 이 영상은 비공개 처리됐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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