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법안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
아동, 성적 유인·권유 처벌
위장수사 특례규정도 포함
“디지털 성범죄 원천 차단”
여성아동인권포럼 대표 맡아
성폭력·노동 성격차 등 논의
상임위, 교육위·여가위 희망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수형 기자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평등 이슈를 아직도 젠더갈등 문제로 바라본다”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성평등 이슈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형 기자

 

피해자, 투사, 여성인권의 상징, 여성학자.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하나같이 무겁다. 그 무게를 오롯이 감당하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대중 앞에 서지 않던 그가 정치인으로 나섰다. “부담스럽지만 해야죠.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21대 국회에 입성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는 자신의 역할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듯 했다.

“성평등 이슈를 아직도 젠더갈등 문제로 바라봅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 저출산, 노동시장 성격차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는 성평등 이슈가 제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권 의원이 발의한 1호 법안인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은 그래서 더 의미심장하다. 이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은 온라인에서 아동·청소년을 성적으로 유인하거나 권유하는 행위인 ‘온라인 그루밍’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동·청소년 대상 온라인 그루밍 처벌 법안이 발의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개정안은 정보통신망을 통해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기 위해서 유인하거나 성을 팔도록 권유하는 행위를 한 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이밖에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해선 사법경찰관이 신분을 위장해 증거를 확보하는 위장수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수사 특례 규정도 포함했다.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제까지 원하기만하면 마음껏 놀 수 있었던 몇몇의 남성 문화 속에 깊게 들어와 있던 문제들을 조심하고 두려워하게하는 영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홍수형 기자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수형 기자

 

‘온라인 그루밍 처벌법’ 발의는
국회 차원의 최소한의 답변

권 의원은 1호 법안에 대해 “N번방 등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여성들이 느끼는 분노와 불안감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라고 했다.

“디지털 성범죄 문제는 어마어마한 숙제에요. 선도적으로 대처하기도 어렵지만, 대응한다고 해도 피해자 보호와 회복이 매우 어려운 영역입니다. 뒤늦게 국가가 답을 했지만 여전히 젊은 여성들이 갖는 분노와 불안감에 대해 충분한 고민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반성을 했어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 시절 현장에서 만난 10대, 20대 여성들은 일상에서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여성들이 갖는 불안감에 대해 무조건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가 커지면서 이미 해외 63개국에서 시행하는데 한국에서는 피해자 보호조치가 전혀 없어요. 금융사기를 막기 위해 인터넷 뱅킹이나 경고창이 뜨는 것처럼, 온라인 그루밍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보호조치가 필요해요.”

온라인 상에서 청소년들은 쉽게 그루밍 범죄에 노출되고 있다. 예방과 처벌에 대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난 것이 텔레그램 ‘n번방’이다. 실제로 중·고생 10명 가운데 1명은 온라인에서 성적 의도가 담긴 대화나 노출 사진 등을 전송해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여성가족부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그러나 현행법은 성범죄 유인·권유 행위는 처벌하지 않고 있다. 이미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해 10월 한국 정부에 온라인 그루밍 관련 개념을 법제화하고 처벌법을 만들라고 권고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수형 기자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홍수형 기자

 

“성평등 이슈, 젠더갈등 문제 아냐
성평등, 정책 결정의 기준으로”

강단에서는 이론가, 현장에서는 실천가로 살아온 권 의원에게 여성계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 현장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국회의원이자 ‘50대 남성’의 얼굴을 한 국회를 변화시킬 적임자라는 것이다. 그는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 대표를 맡아 기대에 부응할 계획이다. 포럼은 성평등 정책을 비롯해 아동·여성의 인권 증진을 위한 방안 마련에 집중한다.

21대 국회 첫 포럼의 주제는 디지털 성범죄다. 권 의원은 “페미니즘이 여성들 사이에서 상식이 되고 있지만 그만큼 백래시(Backlash·반발)도 세다”면서 “그래서 총선 당시 더불어시민당 비례 선정 과정이 없었다면 여성 이슈를 우선 과제로 생각하는 의원이 국회 내에 들어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의사 결정 위치에 있는 분들은 디지털 성범죄의 현실을 잘 몰랐어요. 그들의 삶에서 디지털 성범죄를 겪을 일도, 들어볼 일도 없잖아요. 백래시가 늘어나자 오히려 반발이 주목을 받기도 했고요. 여전히 성평등 의제를 젠더갈등으로만 바라보고 있어요. 사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직장 내 성 격차 문제를 얘기할 때는 최저임금과 비정규직의 저임금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는 그 문제를 설명할 수 없어요. 저출산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면서 권 의원은 “성인지 관점이 자리잡지 않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제 의정활동의 포커스는 성평등의 제자리 찾기”라며 “성평등을 국정과제의 주요 현안으로 안착시키고 정책 결정 과정의 주요 기준으로 자리잡는데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권 의원은 국회 상임위원회로 교육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또래 문화가 정착되기 전인 초등학교 저학년에 젠더 관점의 성교육이 필요하다”며 “아이들이 폭력문화에 휘둘리지 않으며 ‘자기다움’이 만들어질 수 있고 반폭력적인 가치기준이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의원은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재판에서 “작은 권리라도 찾지 않으면 아니되고, 외치지 않으면 아니되는, 쟁취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우리의 현실을 다시한 번 인식하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불안감을 호소하는 여성을 비롯해 교육 문제로 골몰하는 부모와 가부장적 군대문화에 피해를 보는 이들의 목소리의 ‘대변자’로서 권 의원은 앞으로 4년간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