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다시 발의된 ‘예술인권리보장법’
여성 문화예술인들 “최근 미술계 Y 성희롱 사건
성희롱·성폭력 대책 사각지대 드러내”
“문화예술인 권리 보장이 문제 해결의 시작”

여성문화예술연합 회원들이 7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카페 담 앞에서 예술계 성폭력 정부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문화예술연합 회원들이 2018년 3월 7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카페 담 앞에서 예술계 성폭력 정부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은, 김기덕, 이윤택... 한국 사회를 뒤흔든 문화예술계 성폭력 고발은 ‘문화예술인들이 안전하게 활동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 운동으로 이어졌다. 20대 국회에선 좌절됐지만, 최근 다시 발의된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이번에야말로 꼭 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미술계 내 성희롱 사건을 계기로 ‘예술인 권리 보호 기반을 어서 마련하라’는 여론이 다시 일고 있다. 지난달 서울문화재단 사업 기획·운영 감독이 사업 과정에 참여한 20대 예술인을 성희롱했다는 고발이 나왔다. 그러나 진상을 조사하고 피해자를 지원해야 할 서울문화재단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은 “권한이 없다”며 별 조처를 하지 않았고,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됐다. 현행 예술인복지법에는 이들 기관이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조사하고, 가해자의 예술 활동을 제재하거나 정부 지원 취소 등 조처를 할 근거 조항이 없다. 기존 성폭력 방지정책은 공공기관·학교 등 조직 위주라서, 프리랜서·계약직 문화예술계 노동자들까지 보호하지 못한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은 지난달 22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 사건은 문화예술계의 예비예술인이나 여성 작가들의 성희롱 피해를 구제하는 제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1일 대표발의한 ‘예술인권리보장법’ ⓒ원문 캡처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1일 대표발의한 ‘예술인권리보장법’ ⓒ원문 캡처

이런 가운데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던 ‘예술인권리보장법(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 보장을 위한 법률)’이 지난달 다시 발의됐다. 이 법은 취약한 처지의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불린다. ‘예술인은 예술 활동에 있어 성별에 따른 차별 등이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성희롱·성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고, 문체부 장관이 성희롱·성폭력 사건 관련 직접 수사를 의뢰하고, 행정 처분·징계 요구 등을 할 수 있는 근거 조항도 있다. 정부 차원의 ‘예술인 성희롱·성폭력 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2년마다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를 하고 결과를 발표’할 책무도 부과한다. 

주무 부처인 문체부도 일단 입법 공백에 대비해 여러 대책을 내놨다. 우선 산하 문화예술공정위원회에 성희롱‧성폭력 전문가들을 추가 선임하기로 했다. 7~8월 내로 변호사, 여성단체 인사 등 전문가 4명을 선임해, “성희롱으로 인한 불공정행위 조사와 시정조치”를 위한 도움을 받을 계획이다. 이달 중순부터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과 함께 산하기관 32곳의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절차와 운영 실태를 2개월에 걸쳐 일제 점검한다. 

하지만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문체부 성희롱·성폭력 예방대책위원회가 2018~2019년 세 차례에 걸쳐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 이전에 예술인의 성희롱을 불공정행위로 규정하고 사건처리 시스템을 만들라”고 문체부 장관에 권고했다. 인권위도 지난 2월 문체부 장관에게 ‘문화예술 성희롱·성폭력 심의위원회’ 신설 등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문체부는 이를 따르지 않았다. 여성문화예술연합은 지난달 22일 성명에서 “문체부는 법이 제정되지 않았다는 핑계만 계속했다. 진작 예방대책위와 인권위의 권고를 이행했다면 양 작가 성희롱 사건은 제도적 해결 절차를 밟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9년 11월22일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문화예술노동연대·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여성문화예술연합 등 문화예술인단체들이 국회 앞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화예술노동연대
2019년 11월22일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문화예술노동연대·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여성문화예술연합 등 문화예술인단체들이 국회 앞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화예술노동연대

예술인권리보장법은 문재인 정부 대선 공약과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 100대 과제’에도 포함됐으나, 아직도 국회에 머물러 있다. 2016년 ‘#OO_내_성폭력’ 운동부터 미투(#MeToo) 운동까지, 문화예술계 성폭력 고발이 나올 때마다 제기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라도 국회가 응답해야 한다고 여성 예술인들은 입을 모았다. 오경미 문화예술노동연대 사무국장은 “그동안 어떤 법으로도 보호받지 못했던 예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시작이다. 이어 현장의 세세한 목소리를 반영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성미 여성문화예술연합 대표도 “양철모 작가 성희롱 사건은 여전히 성희롱·성폭력 사각지대에 서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줬다”며 예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촉구했다. 

(더 자세히 보기▶ 문화예술계 성폭력 고발 4년...21대 국회는 응답하라 www.womennews.co.kr/news/200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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