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보다 세대 따라 반응 크게 달라
성폭력 사건에서 증거 공개는 신중해야
일본서는 ‘유사 포르노’ 기사 횡행
‘팩트 체크’ 운운, 2차 가해 되기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보가 전해진 지 45일. 현직 서울시장의 자살과 성추행 피소는 많은 사람을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다. 인권 향상과 시민 사회 성장에 오랫동안 기여해 온 그였다. 개인적으로도 박 전 시장의 저서를 읽으며 그가 그리는 비전에 공감한 적이 있는 터였다. 이 자리를 빌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그가 이룬, 계획하던 일들이 앞으로도 퇴색되거나 추진력을 잃지 않고 계속 발전해나가길 빌어 마지않는다.

새삼스럽지만, 이번 사건이 사람들에게 던진 충격파는 작지 않은 듯하다. 오랫동안 여성운동을 해온 한 지인은 이번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 한 지인은 정부가 나서서 꼭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열을 올리기도 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대개 이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전자에 속하는 분들은 박 전 시장과 비슷한 세대이거나 조금 아래가 많은 것 같고 후자는 젊은 층이 주인 것 같다. 성별에 따른 차이는 없는 듯하다. 세대 간 화두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일까?

솔직히 말해, ‘뭘 우울증에 걸릴 것까지야…’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아는 분들이 그만큼 순수하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성폭력(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은 주위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직업이 무엇이든,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더 배웠든 덜 배웠든, 품위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 일일이 밝히지는 않겠지만 내가 보고 들은 것만 세도 수십여 건, 민주화운동이나 시민운동계에서(심지어 여성운동계에서도) 일어난 경우도 적지 않다. 널리 알려진 사례로 ‘시민의 신문’ 사건도 있지 않은가.

7월 22일에 열린 피해자 측의 2차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는 편지를 통해 “본질이 아닌 문제에 대해 논점을 흐리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그녀가 말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서 해석이 필요하긴 하지만(예를 들어, ‘정쟁화하지 말고 오로지 범죄 사건으로서만 다루어 달라’와 같은), 나는 이 호소를 ‘내가 하는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여 달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성급하게 재단하지 말고 일단 내 얘기부터 잘 들어달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럴 분이 아니다”라며 묵살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나온 요구로 이해했다.

이렇게 ‘피해자의 주장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할 때면 반드시 나오는 말이 있다. “피해자의 말을 무조건 믿으라는 것이냐”, “불순한 동기로 거짓말을 하는 건 어떻게 걸러내냐”는 반문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거짓 호소는 피해자의 말을 정성스럽게 듣기만 하면 많은 경우 자연스럽게 거를 수 있다. 거짓말을 찾아내는 효과적인 방법은 말을 많이 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만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자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피해자에게 증거 제시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증거 확보는 중요한 것이지만 증거 공개는 다른 문제이다. 특히 성폭력 사건에서 증거 공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1999년에 일어난 요코야마 노크(横山ノック) 성추행 사건이다. 1932년생의 유명 코미디언 요코야마 노크는 1968년 참의원 선거에 당선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95년 오사카부(府) 지사 선거에서 승리해 지사가 되었고 1999년 선거에서 과반의 득표수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런데 재선 선거 기간 중, 선거 운동원 여대생을 유세 차량 안에서 강제 추행하는 일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곧 그를 고소했고 요코야마는 사실무근을 주장하면서 일대 스캔들이 일어났다. 이후 맞고소와 진실 게임 논란, 정치적 음모론, 피해자 신상털기와 중상 등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전개가 이어졌다. 다만 이 사건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추행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하여 보도하는 이른바 ‘유사 포르노’ 기사가 횡행했다는 점이다.

요코야마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사건 발생 직후 법적 행동을 취하면서 증거 확보에도 유리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확보한 증거와 진술 내용이 재판 과정에서 공개되면서 일반 대중에게도 범행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주간지들은 앞다투어 상세 내용을 극화해 기사를 내보냈다.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척하면서 이익을 좇는 파렴치한 미디어의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이 한국에서도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성적 금기가 줄어들고 자본주의가 심화되면 한국 사회도 같은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그래서 성폭력 사건에서 ‘팩트 체크’ 운운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아마추어들이 하는 ‘팩트 체크’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범죄 사실을 밝혀내고 단죄하는 건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여론은 전문가들이 그런 일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데에 만족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팩트 체크’에 매달리다 보니 등장한 것이 ‘펜스 룰’이라는 행동 지침(?)이다. 혹시 모를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아예 여성과의 만남을 차단하겠다는 것인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알 수 있다. 펜스 룰이 일반적으로 되면 여자와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성폭력 혐의를 받을 수 있고 간단하게 ‘억울한 가해자’가 될 수 있다. 팩트 체크를 피해 가려다가 오히려 가해자로 몰리게 되는 자충수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펜스 룰’이 아니라 피해자가 안심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일 것이다. 섣불리 판결을 내리려는 생각을 접어두고 증거에 집착하기보다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피해자(‘억울한 가해자’도 포함)가 더 쉽게, 더 신속하게, 더 깊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 나일등 :&nbsp;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br>『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필자 나일등 :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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