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투’ 상징 이토 시오리
2차 가해 글 ‘좋아요’ 누른 국회의원·
비방 그림 그린 만화가에 손배소

지난해 12월 8일 이토 시오리가 성폭행 가해자를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긴 뒤 ‘승소’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날 도쿄지방재판소는 이토가 아베 신조 총리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야마구치 노리유키 전 TBS 기자 야마구치 노리유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내렸다. Ⓒ도쿄=AP/뉴시스
지난해 12월 8일 이토 시오리가 성폭행 가해자를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긴 뒤 ‘승소’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이날 도쿄지방재판소는 이토가 아베 신조 총리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야마구치 노리유키 전 TBS 기자 야마구치 노리유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내렸다. Ⓒ도쿄=AP/뉴시스

 

지난 8월 20일. 이토 시오리(伊藤詩織)씨가 자유민주당 소속 스기타 미오(杉田水脈) 중의원의원에 대해 220만엔(약 2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했다. 이토를 비방하는 트위터 게시물에 스기타가 거듭해서 ‘좋아요’를 누른 것이 ‘명예감정’을 침해하는 모욕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토는 지난 6월에도 그녀를 비방하는 일러스트를 그려 트위터에 공개한 만화가 하스미 도시코(はすみとしこ)씨에 대해 손해배상금 550만엔(약 6150만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두 건 모두 인터넷상에서 일어난 2차 가해에 대한 소송이다.

이토가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며 성폭행 사건을 고발한 것이 2017년,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것이 2018년 즈음이다. 당시 한국 언론에서도 이 사건에 주목해 크게 보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해 말, 이토의 피해 사실을 인정하는 도쿄지방재판소의 1심 판결이 나왔을 때도 국내 언론은 많은 기사를 내보냈다. 그런데 앞서 말한 2차 가해 소송에 대한 기사는 아무리 눈을 씻고 ‘클릭’해 봐도 검색 건수가 거의 없다. 역시 대중에게 인기가 있는 건 진실게임인 걸까. 사실, 진실을 둘러싼 법정 공방에서 일반 대중이 할 일은 별로 없다. 그곳은 법률 전문가의 활동 무대. 오히려 대중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대중이 가해 당사자가 되는 2차 가해 소송이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이번 재판도 여러모로 의미가 있으므로 계속 지켜볼 필요가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을 ‘좋아요’를 누르는 것만으로도 모욕죄가 성립하는가, 라는 기술적인 문제로 그 의의를 축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이전보다 더 쉽게 ‘뭇매질’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기술이라는 양날의 검을 더욱 안전하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고민할 기회, 시민 의식을 끌어올리는 기회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문제가 된 스기타의 ‘좋아요’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보도에 따르면, 문제의 발단은 2018년 6월에 BBC가 특집 방송한 프로그램 ‘Japan’s Secret Shame’(일본의 감춰진 수치)이다. 이토의 성폭행 피해 사건을 다룬 이 프로그램에는 스기타 본인도 출연해 코멘트했다. 방송이 나간 후 스기타의 코멘트가 2차 가해에 해당한다는 비판이 일었고, 곧 스기타는 트위터에 일련의 게시물을 올렸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만약 내가 ‘일자리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처자식 있는 남자와 단둘이 식사하러 나가 의식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그리고 뒤치다꺼리를 해준 남자의 침대에 반나체로 기어들어 가는 짓을 하는 여자’의 어머니였다면 따끔하게 혼내줬을 겁니다. “나는 너를 그렇게 키운 적이 없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한심하다. 너 자신을 더 소중히 여겨라.”라고.>

‘문단속을 더 철저히 했어야지’라며 피해자에게 강도 사건의 책임을 묻는 이런 언설이 2차 가해에 해당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온 사실이다. 스기타가 평소에도 실언을 자주 한다는 것을 참작해도 이런 진부한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든다. 뭐, 스기타가 진심으로 어머니의 마음으로 딸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며 한 말일 수 있으니 적당히 넘어갈 수도 있다. 이토의 변호인단이 문제 삼은 것은 스기타의 게시물에 달린 답글들이다.

‘애초 강간이라는 사실관계 자체가 매우 의심스럽다’, ‘나도 딸이 있지만, 얼굴을 공개하고 고발하는 시점에서 이미 수상쩍은 냄새가 난다’, ‘꽃뱀 작전이 실패한 것’ 등의 답글, 그리고 스기타를 비판하는 게시물에 달린 ‘미친놈’, ‘이 녀석은 진짜로 시오리가 피해자라고 여기는 거야? 바보 아니야?’ 등의 답글에 스기타가 ‘좋아요’를 눌렀다고 한다(소송에서는 각각 13건, 12건을 문제 삼고 있다). 국회의원이면서 트위터 팔로워 수가 10만명이 넘는 인물이 ‘좋아요’를 눌러 뭇매질에 가담하는 행위는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좋게 넘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트위터 팔로워 면에서 스기타보다 영향력이 낮지만 하스미의 일러스트는 더 적나라하다. ‘야마구치(‘야마로’라고 읽을 수도 있다)’라고 쓰인 흰 티셔츠를 입은 젊은 여성(사건 발생 후, 이토는 야마구치 피고의 티셔츠를 입고 호텔을 빠져나왔다)의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미국에서는 호스티스. 하지만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어! 유명 기자와 한번 자 봤지. 그런데 이후로 연락이 없어. 먹튀 당했어. 이거 강간 맞지?’

하스미가 ‘오시리 시리즈’라고 부르는 일련의 일러스트는 전부 5장이다. 내용은 모두 꽃뱀 작전에 실패한 여성을 그리고 있다. 그중 2장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건드리는 내용도 담겨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6세 시리아 난민 소녀 사진을 소재로 난민을 싸잡아 비난하는 일러스트를 공개해 국제적으로 빈축을 샀던 그녀답게 ‘오시리 시리즈’에서도 거침이 없다.

이토의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스미는 마이니치 신문과의 서면 인터뷰 내용을 8월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했다.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저의 풍자화는 예를 들어, “이것은 아베 총리대신을 야유하는 풍자화다”와 같이 등장인물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이 픽션입니다. 따라서 이번 풍자화도 픽션이며, 이토 시오리 씨가 자의식에 의해 ‘틀림없이 나일 거야’, ‘상처받았어’라고 주장해도 ‘아닙니다’,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생략) 이토씨는 ‘사실과 다른 내용을 유포했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본작은 픽션이며 이토씨가 체험한, 이토씨가 믿고 있는 사실 및 진실과 다른 것이 당연합니다.>

하스미의 말을 따라 나는 모든 것이 허구라 상상하며 이토를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며 그림을 봤다. 그러나 이토의 저서 ‘블랙박스’와 표지 디자인이 흡사한 책을 들고 있는 그림에서 두 손을 들었다. 하스미 소송 건의 기자회견에서 변호사가 한 말에 따르면, 인물을 지명하지 않은 작품의 경우에도 여러 요소를 고려해 본인을 특정하는 절차가 이미 판례를 통해 확립되어 있다고 하니 하스미의 픽션 주장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인터뷰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토씨를 지원하는 변호사, 저널리스트, 활동가의 면면을 보면 그녀의 사상이 얼마나 편향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우리나라의 국체이신 천황 폐하의 어진을 음모 누드 포르노와 콜라주하고 그것을 버너로 태우는 행위를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저널리스트, 활동가들이 본 재판 및 야마구치씨 재판에서 이토씨를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이토씨의 본성과 그녀의 비뚤어진 사상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사상, 천황, 국체…. 이런 이런. 재판에서 이기고 싶다면 이런 단어는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필자 나일등 :&nbsp;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br>『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필자 나일등 : 일본 도쿄대학 사회학 박사로 센슈대학 사회학과 겸임 강사로 강단에 서고 있다. 『사회 조사의 데이터 클리닝』(2019)을 펴냈으며, 역서로는 『워킹 푸어』(2009),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2012)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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