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운동의 대모’였던 이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지난 4일 별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이며,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에도 지대한 역할을 하셨습니다. 어두웠기에 더욱 별이 빛나던 시절, 큰 별 중 한 분이셨습니다”라는 추모 글을 올렸다.

고인의 최대 업적은 대표적인 여성 차별 제도로 지목됐던 호주제(戶主制) 폐지에 앞장서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호주제는 가족 관계를 호주(戶主)와 그의 가족으로 구성된 가(家)를 기준으로 하는 호적 제도이다. 그런데 이런 가(家)는 원칙적으로 남계 혈통(아들, 손자)에게 대대로 승계, 유지하도록 했다. 따라서 어머니와 딸은 비록 같은 가족 구성원이지만 어떤 경우에도 가(家)를 이루지 못하고 여전히 호주인 아버지 가의 가족으로 남아야 한다. 이러 호주제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가족 관계를 이룩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호주제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 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 이후 2005년 3월 국회는 민법 안에서 호주제 관련 규정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호주제는 2008년 1월 1일 폐지되었다.

개인의 가족관계는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되어 가(家)가 아닌 개인을 기준으로 작성되고 있다. 여성신문이 창간 30주년(2018년)을 맞아 기획한 ‘여성의 삶을 바꾼 30대 사건’에서 호주제 폐지가 첫 번째로 뽑혔다. 분명, 호주제 폐지는 한국 여성운동의 최대 성과다. 그렇다면 성차별적 사회를 바꾸기 위한 투쟁과 노력의 결실로 이룩한 호주제 폐지이후 한국 사회는 성평등한 민주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가? 무엇보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남성과 여성간의 격차가 줄어들고 공정한 사회로 가고 있는가?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 2006년부터 매년 각 국의 경제 참여 기회, 교육, 건강과 생존, 정치적 권한 등 4개 분야의 통계를 이용해 ‘성 격차 지수’(GGI·Gender Gap Index)를 발표한다. GGI는 1에 가까울수록 남녀가 평등하고 0이면 완전 불평등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6년 한국의 GGI는 .649점으로 116위였다. 문재인 정부 첫 해인 2017년엔 118위(.650점), 2018년엔 115위(.657점), 2019년엔 108위(.672점)를 기록했다. 2019년에 WEF가 꼽은 성 격차가 적은 국가는 아이슬란드(1위, 0.877점), 노르웨이(2위, 0.842점), 핀란드(3위, 0.832점), 스웨덴(4위, 0.820점) 등 북유럽 국가들이 차지했다. 여하튼 문재인 정부나 박근혜 정부나 성 격차 순위가 100위권 밖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은 실망스러운 것이다. GGI는 성별에 따른 상대적인 격차를 측정하도록 만들어진 지표이다. 투입된 자원이나 도입된 정책 등이 아니라 실제로 드러난 성과, 즉 ‘남녀 사이 권한의 차이’ 만을 기준으로 측정한다. 따라서 성평등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여성의 역량을 측정하는 다른 지수들보다 더 주목해야 한다.

이번 추석 연후 직전 KBS가 실시한 조사(9월 26~29일) 결과, 문재인 정부가 ’공정해졌다’는 비율이 36.7%에 불과했다. 국민 10명중 6명(60.7%) 정도는 ‘차이가 없다’(28.6%) 또는 ’불공해졌다‘(32.1%)고 응답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남성(35.7%)과 여성(37.7%)간에 ’공정해졌다‘는 비율에서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 ‘페미니스트 대통령‘과 같은 정치 수사만으론 차별 없는 공정한 성평등 사회가 구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남녀 간에 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 정책의 탓도 있지만 50여년의 투쟁 끝에 이룩한 호주제 폐지이후 한국 여성 운동이 표류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 이유는 최근 여성운동이 진영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면서 합의된 목표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념의 차이를 넘어 모두가 합의하는 되돌릴 수 없는 투쟁 목표를 토대로 새로운 여성운동을 펼쳐야 할 때다. 그 목표는 남성과 여성 간의 불균형적 권력관계를 해소하는 것이다. 

©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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