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라 칼럼] 조선인 엘리트 ‘기노시다 히데요’와 ‘강간문화’
[반하라 칼럼] 조선인 엘리트 ‘기노시다 히데요’와 ‘강간문화’
  • 반하라 인류학자·작가
  • 승인 2020.10.23 09:36
  • 수정 2020-10-23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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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을 찾아서: 경성, 쇼우와 62년』

 

『비명을 찾아서: 경성, 쇼우와 62년』
『비명을 찾아서: 경성, 쇼우와 62년』

 

코로나19 방역만으로도 힘든 해에 남성엘리트들이 야기하는 사회적 충격을 겪게되었다. 강간 범죄로 복역 중인 안희정의 모친 장례식은 언론사 기자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정부와 집권 정당의 실세들이 몰려 파원남성들간의 연대를 과시하는 장으로 연출되었다. 강간범이 정치인으로 복귀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을 심어줬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7월 8일 미투운동을 지지했던 서울시장이 성희롱 고소 하루 만에 스스로 세상을 떠나 충격을 안겼다. 그에 앞서 4월엔 서울시장의 의전담당이 강간 고소를 당하는 일도 있었고 그 재판은 9월 초 시작되었다. 숨가쁘게 반복되는 성폭력은 성범죄가 남성 엘리트사이에 중대범죄로 인식되지 못하고 힘있는 남성이 그정도는 ‘할 수 있는 행위’ 정도로 여기는 특정한 ‘강간문화’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습관화되어 문화같이 되어버린 위력있는 남성의 범죄적 성인지를 한

30여년 전 우리는 한 문학작품을 통해서 성찰해볼 기회가 있었지만 비판적 비평의 마비로 사회적 자각을 일깨우지 못했다.

1987년 출판된 복거일의 소설, 『비명을 찾아서: 경성, 쇼우와 62년』은 주인공 ‘기노시다 히데요’가 조선인 ‘박영세’로서 주체적 민족의 자아정체성을 찾게된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당시 쟁쟁한 남성문학평론가들은 ‘주체적 민족담론’에 포위되어 여성포식자와 같은 히데요의 문제엔 일관되게 침묵했다.

‘정신적 모험의 고귀함…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풍자적 날카로움… 완벽한 소설적 상상력… 고급하면서도 긴장된 재미… 역사에 대한 희망과 정직하게 살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완강함이 커다란 미덕… 의표를 찌른 기발한 착상에도 불구하고 매우 사실적이며 섬세하고 아름답고 튼튼한 소설의 출현은 앞으로 우리 장편 문학이 나아갈 길…’ 

당시 출판사 편집동인 문학평론가들은 더이상 환대할 수 없을 만큼 이 소설을 극찬했다.

소설은 쇼우와 62년(1987) 한 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87년의 조선반도는 일본제국에 통합되어 있고 조선어는 한 40년 전에 사라졌다. 히데요는 조선인이지만 조선어, 역사와 문화를 모를 수 밖에 없고 일본어를 모국어로 시를 쓴다. 39세의 히데요는 대기업 기획재정부 과장인데 영어에 능통하고 회계는 물론 국제무역 계약문서를 다루는데도 탁월해서 거대 미국회사와의 까다로운 합작을 성사시키는 실력파다. ‘경성제국대’(서울대) 출신으로 정치, 경제, 지정학과 문학 등 사회인문학적인 식견도 넓다.

소설적 긴장과 딜레마는 히데요가 넘보기 힘든, 23세 미모의 재원인 일본 여성, ‘시마즈 도끼에’에게 끓어오르는 사랑고백의 기회를 놓치는데 있다. 조선인 아내 ‘세쯔꼬’는 그의 생리적 욕구 처리를 위한 잠자리 파트너일 뿐이다. 도끼에를 뽑아서 유능한 직원으로 키우며 ‘관능적 감동’을 느낀다는 히데요는 회계에 정통한 그답게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도끼에를 공략하고 싶어하지만 조선인이라는 메울수 없는 ‘부채’ 때문에 미국 합작회사 중역인 앤더슨을 선택한 도끼에를 막지못한다.

‘내가 저 아이에게 홀린 것이 아닐까… 흰목덜미를 보고 자줏빛 충동이 그의 살속으로 짜릿하게 흘렀다…(그녀를 보면) 봄날의 촉촉한 땅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이… 거센 자줏빛 충동이… 짙은 수액이 그의 뿌리로부터 차오르지 시작했다…그녀(도끼에)의 검은머리 아래 드러난 하얀 덜미의 살이 아픔으로 히데요의 눈속으로 들어왔다… 아, 저 눈처럼 흰살에…그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버리고선…’ (『비명을 찾아서: 경성, 쇼우와 62년』 중)

도끼에만이 아니고 여성들을 보는 히데요의 관점은 일관적이다. 하지만 본인에 대해선 고귀한 품격을 느낀다. 도끼에의 후임으로 남성사원을 뽑자는 일본인 상사에 반대하면서 여성옹호입장의 도덕적 우위를 즐긴다. 현실에서 그는 여성옹호자가 아니라 여성포식자에 가깝다. 일본에서 구한 조선책들을 들여오다 체포 취조 고문당한 뒤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 전향 전문가와 함께 출소해서 한 카페에 갔을 때, 커피를 내오는 여성의 가슴에 흥분해 ‘여급의 허벅지를 쥐고…’강한 성행위충동을 어렵게 누르면서 여자와 자본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한다.

도끼에를 그리워하며 성매매로 대체만족을 하고 미국인 회사에 가선 차를 접대하는 일본 여비서의 젖꼭지를 엿보고는 그녀가 자신을 욕망하고 있다고 망상하며 성관계를 하지 못하고 떠나게된 것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매력적인 여성 앞에서 자동 발기하고 만약 상대여성들이 권력의 장에 들어와 있으며 강하게 밀쳐내는 부정적 모습만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을 욕망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곧바로 성행위에 나설 태세다. 30여년 전 문학비평가들이 복거일 소설과 ‘강간문화’에 대해 제대로 비평의 기능을 발휘했다면 서울시청의 비극과 사회적 충격을 막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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