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구수환 이태석 재단 이사장
이태석 신부는 행복 교과서
섬김의 리더십 실천
아이들을 위한 저널리즘 학교 운영

구수환 감독 ⓒ홍수형 기자
구수환 감독 ⓒ홍수형 기자

30여 년간 KBS에서 ‘추적60분’과 ‘KBS스페셜’ 시사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스타 PD 구수환 이태석 재단 이사장의 도전은 무궁무진하다. 2010년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변신해 영화 ‘울지마 톤즈’를 제작한데 이어 이태석 신부 10주기인 올해 영화 ‘부활’을 연출했다. 그의 무한도전은 평생을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헌신적으로 나눔의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남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의 생애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이태석 신부는 2001년부터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마을에 병원을 세우고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의료 봉사활동을 펼쳤다.

구 이사장은 이달부터 다시 저널리스트로서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가 청소년들에게 저널리즘 교육을 시작했다. 그는 저널리스트로서 진실의 현장을 찾아가며 꼭 이루고 싶었던 목표가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라며 “그런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일깨워 준 분이 바로 고 이태석 신부”라고 말했다.

올해 이태석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셨죠.

“재단은 2011년 이태석 신부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이사장으로서 ‘우리 재단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신부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가 걱정스러워 거의 반년 간 이사장 자리를 고심한 것이죠. 우리 재단은 단순히 신부의 삶을 추모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단 운영 덕목이 있다면, 첫째는 내 스스로를 내세우기 보다는 재단을 통해 어떤 일을 할 때는 신부님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에요. 둘째는 봉사고, 셋째는 절대 후원자들의 돈을 절대 허투루 쓰지 않는 것이에요.”

아이들을 위한 저널리즘 스쿨을 무료로 운영하십니다. 저널리즘으로 무엇을 가르치나요?

“KBS에서 일하면서 힘들지만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제가 받은 것을 사회에 어떻게 환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태석 신부를 알게 되고 언론인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경제 침체의 상징인 폐교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싶었고 영남, 호남 지역의 아이들을 함께 불렀어요. 그 아이들에게 선거 때만 되면 지역감정에 의해 갈라지는 어른들의 모습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아이들에게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끔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명칭도 ‘저널리즘 학교’이지만 가르치는 것은 행복한 삶이에요. 이상적인 이야기라 와 닿지 않을 수 있겠지만 제가 직접 기록한 이태석 신부와 종군기자의 삶을 보여주면 그 실체에 대해 믿을 수 있어요. 북유럽 교육 방식처럼 비판적 사고를 통해 정확히 판단하는 능력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교육 중이고요.”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부활’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요.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예요. 영화 ‘부활’의 의미는 단순히 ‘울지마 톤즈’의 후속편이 아니에요. 삶을 통해 바라본 결과물로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그 나눔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이 신부의 삶을 통해 관객들이 확인했으면 했어요. 그리고 그 삶이 우리의 삶에도 스며들도록 역할 하는 것이었어요.”

이사장님께 이태석 신부는 어떤 분이신가요.

“행복의 교과서, 행복의 삶을 전달자 같은 분이에요. 저는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현장을 많이 분석했기 때문에 비교적 이 신부의 삶을 빠르게 해석했어요. 그 분은 작위적이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그 누구도 제게 ‘왜 이태석 신부의 삶을 마음대로 분석하고 생각하는가’하고 문제제기를 한 사람이 없었어요. 모두가 그가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 이사장님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봉사죠. 이태석 신부가 그랬듯이 저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제 존재를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 20대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자기부정인 것 같아요. 철저히 기능적으로 공부만 했기 때문에 자기가 누구인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몰라요. 봉사는 결국 스스로를 위해 하는 것이에요. 봉사를 받고 기뻐하는 타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돼요. 그러면서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비로소 자신감도 생기고요. 그 자신감은 얼굴에서 드러나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얼굴이 되는 것이죠.”

학생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봉사는 무엇이 있을까요.

“봉사라고 하면 거창하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떠올려요. 하지만 왕따를 당하는 같은 반 친구에게 말 한마디 따뜻하게 건네는 것도 봉사라고 할 수 있죠. 생활 속 봉사가 시작돼야 해요. 개인적으로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고등학생들을 모집해 남수단에 함께 가고 싶어요. 아이들에게 이곳이 이태석 신부의 향기가 머문 곳이라는 것을 직접 체험하게 해주고 싶어요. 그 향기는 아이들 삶에 오래도록 남을 겁니다. 훌륭한 리더들의 공통점은 경청과 공감,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저널리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널리즘 교육은 아이들의 진로에도 많은 영향을 줄 거예요.”

이태석 신부가 남수단에서 여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지요?

“10년 전 영화 ‘울지마 톤즈’를 연출할 때까지 남수단의 여성 문제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그러다 이번에 영화 ‘부활’ 작업을 하며 이태석 신부가 쓴 글을 통해 알게 됐지요. 남수단에서는 여전히 매매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태석 신부는 매매혼으로 억압의 틀에 갇힌 여성들을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했어요. 이 신부는 이 여성들을 위해 여성 기숙사를 만들었는데 톤즈에서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에요. 특히 한 학생이 기억에 남아요. 16살 때 40대 남성에게 매매혼을 당했는데 우리 재단이 A 학생을 도와 파혼시키고 교육을 지원했어요. A 학생은 2013년 이화여대 신소재공학과에 입학해 지난해 졸업하고 남수단으로 돌아갔지요. 본인의 의지도 정말 대단했습니다. 우리는 A 학생이 남수단의 여성인권 운동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교육은 여성들에게는 탈출구와 같아요.

이태석 신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산부인과에서 출산 과정을 배우셨어요. 의료 환경이 척박한 남수단에서 아기를 낳다 사망하는 여성들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지요. 남수단에 돌아가 지역 여성들을 뽑아 조산원 교육을 시키고 초음파 기계도 직접 들여와 진료를 보셨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국내 교육 사업과 톤즈 장학사업을 함께 지원하는 것이에요. 신부님의 정신을 확산시켜 각 자리에서 올바른 리더로 자란 모습을 나중에 다큐로 기록하는 것이죠. 그리고 후원자 여러분의 선택이 옳았다고 확인시켜주고 싶어요.”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