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연 9단 "스토킹 처벌법 필요" 촉구

살인까지 이어지는 스토킹이 단순 경범죄로 취급되면서 처벌은커녕 제대로 신고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살인까지 이어지는 스토킹이 단순 경범죄로 취급되면서 처벌은커녕 제대로 신고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여성신문

프로 바둑기사 조혜연 9단을 스토킹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가 대부분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고 실형을 선고한 것이다.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허경호)는 23일 재물손괴 등 혐의를 받는 정모(47)씨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는 심리적 충격을 받고 경찰에 신고하는 등 조치를 취했음에도 형사 사법절차를 통해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는 불안감에 사설 경호원을 고용할 정도로 정신 충격이 심해 보인다”며 “업무방해 혐의와 관련, 학원 규모 등을 볼 때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상당해 보인다.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범행 대부분을 부인하며 반성하지 않는다. 피해자와 합의를 못했고 피해 회복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고도 지적했다.

정씨는 지난해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조씨가 운영하는 바둑학원 1층 출입문 건물 외벽에 조씨를 비난하는 내용의 낙서를 한 혐의 등을 받는다. 조씨가 경찰에 자신을 신고하자 보복 목적으로 찾아가 협박한 혐의도 있다.

정씨는 지난 4월 여러 차례 조씨가 운영하는 바둑학원 안에 들어가거나, 건물 밖에서 조씨를 협박하고 소란을 피운 혐의도 받는다. 그는 또 같은 달 조씨가 바둑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을 알리는 기사에 협박성 댓글을 남긴 것으로 나타났다.

정씨는 지난해 4월 말부터 올해 4월 사이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조씨가 운영하는 바둑학원 1층 출입문 외벽에 ‘나는 너가 보고 싶다’, ‘사랑한다. 나는 널 원한다. 너는 내 여자’ 등의 문구를 적고, 수강생들이 있는 학원에 침입해 “조혜연은 나와 결혼한 사이다. 여기서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 등의 허위사실을 적시하며 조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또한 그는 올해 4월8일 바둑학원 건너편 인도에서 조씨에게 “가만두지 않겠다. 내가 널 사랑한다”고 소리치는 등 약 1시간30분 동안 소란을 피우며 바둑학원 운영 업무를 방해하고 조씨에게 겁을 주는 등 협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날 저녁에는 바둑학원 1층 외벽에 ‘두고보자, 더러운 여자’, ‘음란한 여자, 재수 없는 여자’ 등의 문구를 적는 등 조씨를 모욕하는 동시에 공사비가 들도록 재물을 손괴한 혐의도 받는다.

다음 날인 4월9일 오후에는 바둑학원 건물 밖에서 조씨와 함께 학원을 운영하는 A씨에게 “조혜연 어디에 숨겼느냐. 당장 내놔라”라고 소리를 지르고, 근처에 숨어있던 조씨에게 “숨지 말고 당장 나와라”라며 큰소리로 욕설을 한 혐의도 있다.

4월11일에는 조씨가 바둑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인터넷 기사에 접속해 조씨를 모욕하고 협박하는 취지의 댓글을 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씨는 지난 4월7일 오후 바둑학원 밖에서 조씨에게 “죽여버리겠다. 나오지 않으면 학원을 싸그리 불태워버리겠다” 등의 욕설을 하며 소란을 피운 혐의도 받았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일관되게 부인을 해왔는데, 피해자의 진술이 법정에서 변경됐다”며 “‘(피고인으로부터) 협박을 많이 받아 살짝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진술한 것 같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판단했다.

여성 프로 바둑기사 조혜연 9단이 공개한 스토킹 남성의 체포 현장. 페이스북 영상 캡처.
여성 프로 바둑기사 조혜연 9단이 공개한 스토킹 남성의 체포 현장. 페이스북 영상 캡처.

지난 5월 정씨를 구속기소한 검찰은 그에게 협박,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보복협박 등), 재물손괴, 건조물 침입, 명예훼손 등 혐의를 적용했다.

한편 지난 8월 진행된 첫 재판에서 정씨는 자신에 대한 혐의를 일부 부인하며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앞서 6월 열린 첫 공판준비기일에서도 정씨는 국민참여재판으로 받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재판부는 정씨의 요청을 불허했다.

당시 재판부는 “범행 경위 등에 비춰볼 때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의한 법률 배제 사유가 있다”고 판시했다.

지난 4월 바둑기사 조혜연 9단이 올린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며 청와대 국민청원 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지난 4월 바둑기사 조혜연 9단이 올린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며 청와대 국민청원 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쳐

이 사건은 조씨가 지난 4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흉악한 스토커를 두려워하는 대한민국 삼십대 미혼여성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알려졌다.

청원 글에는 조씨는 정씨에 대해 “1년 전부터 저의 사업장에 나타나 갖은 욕설과 고함을 치고 있다”며 “교습소에는 초등학생도 다수인데 스토커를 보고 놀라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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