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코로나 이기는 리더십 핵심은 ‘소통·신뢰·공감’
[만남] 코로나 이기는 리더십 핵심은 ‘소통·신뢰·공감’
  • 이하나 기자
  • 승인 2020.11.06 09:48
  • 수정 2020-11-06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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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김명자 (사)서울국제포럼 회장·전 환경부 장관
김대중 정부 시절 환경부 장관
헌정 최장수 여성 장관이자
한국과총 첫 여성 회장 역임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 ⓒ홍수형 기자
김명자 (사)서울국제포럼 회장 ⓒ홍수형 기자

 

36개. 김명자(76) (사)서울국제포럼 회장이 현재 맡고 있는 ‘직함’의 갯수다. 직함 숫자만 봐도 ‘워커홀릭’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름 뒤에 붙는 직함 대부분은 고문이나 자문위원 같은 봉사직이다. 김 회장은 스스로 “야심 찬 목표를 세우는 사람은 못 된다”고 했다. 원대한 포부보다는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성실하게 살아보자는 생각 뿐”이었다고 했다. 현재의 충실한 삶. 과학자, 교수, 장관, 국회의원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각 분야 유리천장을 깬 김 회장이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만든 원동력 가운데 하나다. ‘BMW’(Bus·Metro·Walk)로 건강을 관리하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늘 재능을 내어주는 김 회장은 왼쪽 팔목에 찬 스마트워치와 갤럭시Z폴드3로 쏟아지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달라는 요청에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어떤 일이든지 개인차가 있어요. 제가 그렇게 했다고 해서 꼭 모두가 그렇게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저의 경우에는 무슨 일이든지 즐기는 것이 중요해요. 싫은 일도 할 수 밖에 없는 게 세상이잖아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이 맞는 말 같아요. 살아보니까 경쟁하고 목표를 추구하는 삶보다 배려하면서 봉사하는 삶이 풍요롭고 보람 있어요.”

김 회장은 최근 ‘팬데믹과 문명’이라는 새 책을 펴냈다. 과학자로서 코로나19에 대한 책을 내야겠다는 책무감도 있었다. 책은 고대로부터의 인류 문명 중 역병(疫病)과의 투쟁사를 돌아보고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질서 구축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한다.

-‘팬데믹과 문명’에서 과거 병원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당하던 역병과의 투쟁을 돌아보고, 포스트코로나 시대 전망과 과제를 제시하셨습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인지요.

“팬데믹에 대한 사회적 불안과 패닉 현상을 보면서, 역병과 팬데믹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경제, 사회, 정치, 문화, 사고체계와 이즘(ism)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어떻게 찬란한 문명을 소멸시켰는지를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21세기 팬데믹은 산업혁명 이후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성장과 개발 위주의 발전관과 연관됩니다. 따라서 대증적, 미시적 분석을 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접근이 어렵다고 봅니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대한 예측이 분분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세상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 것인지를 함께 생각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요. 4차 산업혁명이 초연결, 초융합의 시대를 가속화시키는 시점에서 기술혁신은 현재 인류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글로벌 리스크, 즉 기후변화,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 자원위기, 보건안보, 빈부격차 등의 요인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때 신성장동력 창출의 기회의 창이 열릴 수 있다고 봅니다.”

-코로나에 대한 우리 정부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팬데믹 대응에 대한 해외 연구에서 우리나라는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경을 주로 국가 주도의 개입과 동원 능력, 국민의 순응적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서 간과되고 있는 사실은 한국의 성공적 방역은 데이터 국가로서의 역량과 민간, 공공, 의료기관 등의 협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투명하고 촘촘한 디지털 네트워크에 기반한 3T(tracing·testing·treatment) 방역 대책이 효과를 냈기 때문에 주목을 받을 수 있었지요. 이러한 디지털 역량은 이미 20여년 전 수립된 국가정보화 촉진 기본계획(1996~2000년)에 뿌리하고 있었던 결실이었습니다.

위기 국면에서 개인의 인권과 자유, 방역의 균형 등에 대한 공감대와 합의 형성을 위한 사회적 담론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감염자에 대한 냉담한 시선과 감염자 프라이버시 보호 미흡 등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여성 리더십이 돋보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정은경 청장까지. 위기 상황에서 보인 리더십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남성과 여성의 리더십으로 구분하기 보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운 시기에 그 정서에 공감하면서 진솔한 태도로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리더십이 위기 상황에서 주목을 받은 것으로 해석됩니다. 리스크로 가득 찬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공감과 통합을 이끌어내는 감성과 합리성의 리더십 같습니다.

동독 출신이자 물리학자 출신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번 팬데믹 사태에서 안정적 리더십으로 신뢰를 얻었습니다. 코로나 관련 정책 결정에서 과학적 근거와 판단에 의존하고, 의학계가 합의한 정보를 국민과 공유했고, 바이러스에 대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은 솔직히 인정하는 태도로 국민의 신뢰를 얻었어요. 과학자로서의 합리성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감성의 리더십으로 어려운 때 국정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 돋보이는 지도자입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팬데믹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우리가 사는 시대는 물질적으로는 기적 같은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기후위기, 자원위기, 생태계 파괴, 빈부격차, 보건안보 등 유례없는 글로벌 리스크로 인한 다중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 근원을 따져 보면 ‘끝없는 개발’과 ‘무조건적 성장’을 추구하는 듯한 이 시대의 세계관과 얽혀 있습니다.

팬데믹만 하더라도 초연결된 세상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과 과도한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야생동물이 인간 주거지역과 축산농장에 근접해서 병원체의 확산을 촉진하고 있는 것이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천인합일사상(天人合一思想)’을 되살려내어 현대 문명의 맥락에서 재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원초적인 유기성을 무시하는 단계로 치닫는다면 지구 생태계는 계속 파괴될 것이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라는 종 자체도 결국 파멸을 맞게 될 것입니다.

인류문명이 바이러스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려면 인간 자체가 지구라는 숙주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숙주가 죽으면 바이러스도 함께 죽습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마치 숙주의 생명이 끝남으로써 바이러스도 함께 사멸하게 되는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에서 근원적인 돌파구를 찾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한 국가나 특정 지도자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모두가 ‘공존’, ‘협력’, ‘조화’의 기치 아래 함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어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대멸종은 ‘오지 않은 미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책 추진도 어렵고, 너무 거대 담론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실천도 어렵습니다. 물질지상주의에 휩쓸려 이런 얘기 자체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한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6년 한국과총 5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회장으로 선출되셨고, 환경부 장관으로 ‘헌정 최장수 여성 장관’이란 기록도 가지고 계십니다. 새로운 길을 나아갈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은 무엇이었는지요.

“평생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어느 자리에서건 그 자리에서 제 몫을 하려고 애썼을 뿐입니다. 장관도 국회의원도 과총회장도 그 무엇도 꿈도 꾼 적이 없거든요. 리더십에서 여성과 남성의 리더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녀의 특질이 있는 건 맞지만, 리더십은 그 두 가지 특질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의 리더십 표어는 ‘합리성과 감성의 거버넌스 리더십’이었습니다. 한편에 논리성, 합리성, 과학성이 있고, 다른 편에 감성, 직관, 유연성, 관계성 등이 있다면 이들 덕목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의 요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성신문이 올해 창간 32주년을 맞았습니다.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양성평등을 위해 쉼 없이 달려 온 여성신문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날 팬데믹과 기후변화의 복합위기를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의 신성장동력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하는 대전환기에서 공감과 포용과 지혜로 여성신문의 역할이 더욱 돋보이고 빛나기를 기대합니다.”

*김명자 (사)서울국제포럼 회장

1966년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부터 25년간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했다.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환경부 장관에 발탁돼 3년9개월 동안 재임하며 최장수 여성 장관 기록을 세웠다. 이후 17대 국회의원,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를 지냈으며 여성 최초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 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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