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나 ‘뱃속이 무서워서 꺼내야 했어’
이나연 ‘못, 함께하는’
여소현, ‘소금강로168번길’
정빛아름, ‘기일’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 여성 서사를 담은 영화, 젠더이슈와 성평등 가치를 신선한 시각으로 담아낸 영화, 바로 '여성영화'입니다. [여성영화 사랑법]은 앞으로 여성영화 스트리밍 플랫폼 '퍼플레이(purplay.co.kr)'에서 만날 수 있는 여성영화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다채로운 매력이 넘치는 여성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뱃속이 무서워서 꺼내야 했어’ 스틸컷
‘뱃속이 무서워서 꺼내야 했어’ 스틸컷

 

온 힘을 다해 사랑할 수도, 마음 놓고 미워할 수도 없는 사람. 어떤 이에게는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장 멀게 느껴질 사람. 그렇다. 바로 엄마다. 지독한 애증 관계를 떠올릴 때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인물들 중 한 쌍을 택하라면 엄마와 딸을 꼽겠다. 알 수 없는 끈끈함, 때로는 남보다 못한 무심함으로 점철된 모녀 관계는 단순히 어떤 단어나 문장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테다. 

그렇다면, 이 복잡한 존재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쩌면 딸이 엄마를 이해하는 것은 죽을 때까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도 마찬가지일 터.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들은 그런 딸과 엄마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엄마를 마주하기 위해 묻어놨던 것을 꺼내놓는 딸들,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딸들이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먼저, 엄마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딸의 목소리를 들어볼까. 애니메이티드 다큐멘터리 ‘뱃속이 무서워서 꺼내야 했어’(조한나, 2019)는 제목 그대로 딸이 그동안 속으로만 삼켜왔던 것들을 엄마 앞에 내놓는 영화다. 엄마는 얼굴을 바라보는 것조차 무서운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딸은 용기 내어 묻는다. 

“왜 ‘네가 그러니까 왕따를 당하지’라고 했습니까?” 
“왜 ‘네가 정신병자냐?’라고 했습니까?” 
“왜 나를 낳았습니까?” 

어렸을 때 기억들을 되짚으며 질문을 던지는 딸에게 엄마는 허를 찔린 듯 당황한다. 그러면서도 입에선 눈물 섞인 항변이 이어지고, 나아가 딸은 알고 싶지 않았던 옛날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겠지만 어찌됐든 엄마와 딸의 ‘대면’은 이제 시작됐다. 

 

‘못, 함께하는’ 스틸컷
‘못, 함께하는’ 스틸컷

 

‘소금강로168번길’ 스틸컷
‘소금강로168번길’ 스틸컷

 

‘기일’ 스틸컷
‘기일’ 스틸컷

 

‘못, 함께하는’(2016)은 영화를 통해 가족 이야기를 꾸준히 풀어온 이나연 감독의 다큐멘터리다.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들 중에서도 잘 빠지지 않는 못처럼 감독의 마음에 남아 흔적이 지워지지 않는 존재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경희 씨, 엄마다.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엄마의 갑작스러운 재혼으로 가족들은 많은 일을 겪어야 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농담처럼 던진 말에는 뼈가 있었고, 아직 빼내지 못한 ‘못’은 자매들을 괴롭게 했다. 그렇게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엄마는 기억되고 소환된다. 감독이 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찍은 ‘가족사진’은 과연 그에게 잘 가닿았을까. 

엄마가 어떤 낯선 남자와 손을 잡은 채 로드뷰에 찍혀 있다. 그런데 엄마는 이미 죽고 없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을 수조차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텐가. ‘소금강로168번길’(여소현, 2018)의 소민(박소연)은 진실을 찾기 위해 본가로 내려간다. 그곳에는 엄마를 ‘재숙 씨’라 부르는 남자가 있었다. 그가 기억하는 엄마는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잘 부르고, 쓴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즐겁게 노래 부르는 엄마의 모습을 본 소민은 눈시울이 붉어진다.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재숙 씨에게도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나’로서의 삶이 있었음을.
 
정빛아름 감독의 ‘기일’(2019)은 엄마의 비밀을 넌지시 깨닫게 해주는 영화다. 은정(한해인)은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엄마 미금(김금순), 남편 동혁(주종혁)과 함께 아버지의 재가 뿌려진 산을 찾는다. 남들과 비교를 일삼고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는 엄마가 은정은 탐탁지 않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음에도 굳이 산을 오르려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날 밤, 은정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을 목격한다. 엄마도 성적 욕망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받게 되는 충격은 꽤나 크지만, 반대로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왜 그동안 엄마, 중년 여성의 욕망은 ‘없는 것’처럼 여겨져 온 것일까. <기일>이 주는 깨달음은 그래서 묵직하고 또 얼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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