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라고 묻는 것은 ‘알 필요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다. “왜요?”, “무슨 뜻이에요?”라는 질문은 내가 다 알지 못함을 인정하되, 여전히 알아야 함을 인지하는 환대의 자세이다.

 

연구를 위한 인터뷰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다음 질문을 생각해 내는 것도, 상대방의 말에 적절한 리액션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추측’을 멈추는 일이 어려웠다. 상대방의 말속에서 구체적인 맥락과 고유한 이유를 알려면, 거듭 물어야 한다. 하지만 추측은 질문을 쉽게 건너뛴다. 때로는 질문거리 자체를 삭제한다. 이야기는 그렇게 짜맞추어진다. 대답을 짐작하기는 참 쉽다. 하지만 짐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어렵다.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당연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당연할 때
“왜요?”라는 질문은 사라진다

빈곤을 겪고 있는 대학생을 인터뷰할 때도 그랬다. “어학연수는 아무래도 생각하기 힘들죠”라고 그가 말했을 때,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금전적 비용과 외국어 실력 등 문화 자본이 문제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우연히 이유를 다시 묻게 되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예상외였다. 어학연수를 갔다 오면 자칫 졸업이 한 학기 밀릴 수 있는데, 하루라도 빨리 취업해야 하는 상황 상 그럴 여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을 짧게 소요하는 단기연수라고 만만한 것도 아니었다. 돌아온 다음, 지금 같은 조건(집에서 가깝고, 시급도 괜찮고, 사장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의 알바를 구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며, 그걸 포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빈곤은 ‘지금’에만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음’도 그 영향권 아래에 있다. 어학연수에서 돌아온 다음의 삶은 나의 짐작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당연할 때, “왜요?”라는 질문은 사라진다. 청소년들은 10대의 연구공간을 “왜요?”라고 묻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왜요?’는 잘 써야 하는 도구다. 때로 ‘왜요?’는 주고받는 의사소통을 위한 질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추궁하고 심문하는 것일 수도 있고, 때로는 ‘나를 설득시켜보라’는 일종의 시험일 수도 있으며, 준비된 반론을 퍼붓기 위한 밑밥일 수도 있다. 사실 이건 ‘왜요?’라는 질문 형태 때문만은 아니다. 추궁, 심문, 시험, 질책, 경고는 단어와 문장의 형태를 가리지 않고 대화 속에 등장할 수 있다.

“왜요?”라고 묻는 것은
‘알 필요 있음’ 나타내는 신호

청소년들은 정확하게 물어보고 궁금해 하는 “왜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청소년들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나누는 대화는 많은 경우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와 “알아듣게 말해”를 오간다. 이미 다 알겠다는 말과 전혀 이해 못 하겠다는 반응은 모순적이지만 닮아있다. 이는 여성들이 오랫동안 들어온 말이기도 하다. 소수자의 언어는 이미 다 알아서 지긋지긋한 ‘징징거림'이거나,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다. 무엇을 ‘안다’ 그리고 ‘알 필요 있다’를 결정하는 것이 권력이기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의 쓰임이 대상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는 것을 지적한다. 어떤 ‘모른다’는 무지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알 필요 없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다.

“왜요?”라고 묻는 것은 ‘알 필요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다. “왜요?”, “무슨 뜻이에요?”라는 질문은 내가 다 알지 못함을 인정하되, 여전히 알아야 함을 인지하는 환대의 자세이다. 아일랜드의 시인 브랜든 커넬리는 “지옥이란 경이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지옥을 만드는 연료가 있다면, 추측과 짐작일 것이다. 이는 단순히 답을 미리 정하여 모든 것을 익숙하게 만들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자로 자신을 위치 지을 때, 호혜적 관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들은 서로 주고받을 것이 없다. 주고받으려면, 지옥에서 벗어나려면, 거듭 궁금해 해야 한다. 정보는 넘쳐나고 알고 싶은 마음은 희미한 시대, 궁금해 하는 것이 환대다.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함세정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판돌·덕성여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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